[69프로젝트] 객토客土

김태식



논이나 밭을 오래 사용하면 흙이 산성화된다. 산성화가 되면 농작물의 수확이 줄어들고 좋은 결실을 맺기가 어렵다. 따라서 다른 곳에서 흙을 가져와서 섞으면 중성화가 되어 다시 좋은 흙으로 태어난다. 이러한 작업을 다른 흙을 빌려 쓴다는 뜻으로 객토客土라고 한다.


사람들에게도 객토와 같은 일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이공계 일을 하는 사람에게 문과적인 접목을 하는 것이다. 배를 만드는 조선소는 늘 쇳덩이와 더불어 해가 뜨고 해가 진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치수가 얼마이며 두께가 어느 정도이고 공사기간은 언제까지라는 딱딱한 얘기만 오간다.


이들에게 잠시 쉬는 시간에 역사 얘기도 좋고 문학적인 사고를 해도 좋을 것이다. 문학이라고 해서 거창할 것은 없다. 장마철에 쇳덩이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보고 잠시 쉬어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네 살아가는 삶의 얘기가 곧 문학이 될 수 있다.


틈나는 시간에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흥선대원군의 본명이 이하응이며 그의 아들(고종)이 왕이 되기 전에는 너무나 가난했으며 술값이 없어 술을 파는 여인네의 치마폭에 난을 그려주고 술값으로 대신했다는 얘기 또한 좋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아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간혹 새로울 때도 있다.


김삿갓 시인이 삿갓을 쓰고 다니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본명이 김병연이라는 사실까지도 알지만 정확하지는 않아 얘기를 했다. 그 분이 과거시험장이 아니라 마을의 백일장대회에 참가를 했다. 그리고 그 대회의 제목이 김익순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었고 그 때 그분을 호되게 질책하는 글을 써서 장원에 당선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어머니와 형님에게 얘기를 하니 그 분이 바로 친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삿갓을 쓰고 방랑길을 나섰던 것이다. 홍경래의 난으로 인해 폐족廢族된 집안의 자녀였기에 과거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없었다고 하니 잘못 알고 있는 새로운 사실에 재미있어 한다.

 

오늘은 품질검사항목이 무엇 무엇이며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 실시하겠다는 품질관리팀의 일정보고다. 경직된 딱딱함을 풀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축구경기 얘기를 풀어본다.


어제 열렸던 한일전 축구경기는 너무 멋졌어!”

. 맞아요. 속이 후련했어요


2차 세계대전, 일명 태평양전쟁의 주범인 일본이 그 당시 전 세계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기 위한 야욕이 어떠했는가를 애기하니 젊은이들도 새삼스러운 모양이다. 이렇게 주고받는 말 한 마디로 기분이 전환 될 수 있다. 어느 정도 객토가 될 수 있으리라. 어제 검사를 받으려 했으나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아 오늘 다시 검사를 받겠다는 담당자의 인상은 그다지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자네가 알고 있는 우리선조의 옛 시조 아무것이라도 괜찮으니 암송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읊어 보게나. 제대로 외우면 오늘 검사를 수월하게 해 줄 테니.”하면서 농담을 던져 보았다. 더듬거리며 제대로 외우는 시가 없단다. 머리를 긁적이며 하는 말

고등학교 때는 몇 수 외웠는데.”


그렇다. 고교 때에는 대학입시가 있었고, 국어선생님이 무서워서라도 무조건 외웠을 것이지만 학교를 졸업한 지가 10여 년이 지났을 테니 지금은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내가 황진이의 시 한 수를 읊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지 못할지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이쯤에 이르니 그래요. 맞습니다. 생각이 납니다.”라고 했다. 젊은이는 그동안 자신이 심하게 산성화가 된지도 모른 채 업무공정과 공사기간에만 얽매였고 출근과 퇴근만 반복했던 것이다.


조선소의 젊은 직원들에게 한 달에 몇 권 정도의 책을 읽느냐고 물어 보았다. 나의 질문대상이었던 사람들은 장르에 상관없이 일반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이 없었다. 회사 일에 쫓기다보니 책을 읽을 시간도 없겠지만 요즈음 우리나라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러다보니 서점에 갈 일이 없으니 최근 돈을 주고 책을 샀던 일조차도 더욱 없다고 했다.


우리회원들이 쓴 책을 주겠다고 하니 받지 않겠다더니 공짜로 주겠다고 하니 받겠단다. 꼭 읽어야 한다고 약속을 받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얘기해 주는 사람은 두 사람 정도뿐이다.


내가 검사를 할 때 수행하는 젊은이들 대부분은 대한민국에서 첫째가는 대기업 조선소에 입사를 할 실력이니 어느 정도 수준은 갖추고 있다. 이를테면 명문대학출신에다 영어성적도 아주 뛰어나다. 하지만 그들의 얘기는 영어단어가 하나라도 틀리면 난리가 나는데 만약 우리말이 틀리면 나무랄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자재 없슴은 틀렸다고 하니 의아해 한다. 대부분의 젊은 직원들이 없슴으로 알고 있다. 발음은 으로 읽지만, 쓸 때는 으로 표현한다고 하니 우리말인 한글에 대한 지식의 짧음에 부끄러워한다. 덧붙여 우리말에서 으로 끝나는 명사는 사슴’ ‘머슴’ ‘가슴밖에 없다고 하니 새삼스러운 듯 머쓱해 한다. 그래도 잠시 객토를 한 것 같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새로운 신진대사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직업 활동 속에서 가볍고 부드러운 문과적인 상식을 보탠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의 양념이 될 것이고 마음속의 객토가 될 것이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9.05 10:02 수정 2020.09.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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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