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순수함, 바보 같지만 아름다운

박영대


누군가 내게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 언제인지 묻는다면 아침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내게 와 안기는 아이들의 달콤한 향기를 맡는 순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이들의 그 작고 예쁜 팔과 다리로 나를 끌어안고 살을 부대끼는 그 잠깐의 순간이 내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특히나 평일엔 이른 시간 집을 나서야 하는 이유로 아이들과 아침을 함께 할 기회가 많지 않으니 주말에나 경험 할 수 있는 그 순간이 내겐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지난 주말에도 아이들과 침대에서 장난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평소와 달리 3살짜리 딸아이가 자꾸만 거실로 나가려 한다. ‘이 녀석이 어젯밤 늦게 잔다고 혼을 내서 그런가?’란 생각에 거실로 나가려는 딸아이는 그냥 내버려 두고 아들과 침대에서 신나게 장난을 쳤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들의 아침밥을 준비하기 위해 방을 나왔는데, 딸아이의 이상한 행동에 자꾸만 눈이 간다.


거북이 두 마리가 살고 있는 작은 어항 앞에 휴대용 선풍기를 가져다 놓고 혼자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거북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런 모습을 본 것이 아닌 처음은 아닌 듯하다. 2주전, 아이들을 위해 구매한 휴대용 선풍기가 집에 도착한 즈음부터 가끔씩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를 닮아 몸에 열이 많은 편이다. 아침에 아이들 방의 문을 열어보면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자로 누워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나 딸아이는 채워놓은 기저귀까지 벗어 던지고 말 그대로 알몸으로 자고 있으니, 아빠인 내가 보기에도 민망한 경우가 있을 정도다. 겨울철에도 보일러를 켜면 똑같은 모습이 연출되니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되면 나를 제외하곤 온 가족이 옷을 벗어 던지고 산다.


이런 아이들에게 더위가 시작되고 사준 휴대용 아이언맨 선풍기, 그 시원한 바람을 알아버린 딸아이는 한여름 작은 어항에 갇혀 지내는 거북이 두 마리가 덥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어항 앞에 선풍기를 켜고 거북이들과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어항 유리벽에 막힌 선풍기 바람이 어찌 거북이들에게 시원함을 주겠냐만은 신기하게도 거북이들은 딸아이가 밥 먹으러 간 순간에도 선풍기 앞에서 목을 쭉 빼고 떠날 줄을 모른다. 딸아이의 순수한 마음과 거북이들의 미련한 모습이 묘하게 어울리며 아침 햇살처럼 포근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딸 키우는 재미라 말하는 것들이 이런 것일까? 오로지 자기 밖에 모르던, 철없던 큰아들의 3살 때와는 너무 많은 것이 다른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들 녀석에게만 순수하고 따뜻한 감성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그렇다.


남을 위할 줄 모르고 자기 자신만, 내 것만 중요하다 생각하는 각박한 세상이 된 것 또한 많은 어른들에게서 딸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사라져 버린 탓은 아닐까? 어른이 되어서도 때론 아이의 바보 같은 순수함이 아름다워 보임은 우리 가슴 속 깊은 곳에도 그런 순수함이 잠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손가락이 오므라들면 어떠한가? 누군가 옆에서 바보라 놀리며 손가락질 하면, 그 또한 어떠한가? 한여름 지갑 속에 갇혀 더위에 신음하는 소중한 이들의 사진을 꺼내어 부채질 한 번씩 해봄이.


바보 같은 그 모습 속에서 누군가 순수함을 찾아 그들 마음 속 깊은 곳에 행복한 울림을 줄 수 있다면 오늘 보단 더 좋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 모든 사람이 내게 가르쳐 줄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말처럼 3살 딸아이의 순수함마저도 어른들의 세상에 가르침을 주는, 아이의 순수함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글=박영대


정명 기자 

 

 

 


정명 기자
작성 2020.09.22 10:33 수정 2020.09.22 10:5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정명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