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아버지의 서재

박윤정



우리 집은 박물관 같아!”

경이 건조한 톤으로 내뱉는다.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 오후. 소파에 온 몸을 풀어헤치고 드러누운 열여섯 살 경이. 허공을 떠돌던 시선이 거실 한 켠 벽면을 차지한 책장에 머물렀던 가 보았다. 경이 외할아버지 책들. 서재 전체에서 그 책들이 차지하는 공간은 삼분의 일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늘따라 유난히 경이 눈에 가득 차 보였나보다. 어릴 적 우리 집 방 안에는 온통 아버지 책들로 가득했는데. 그러고 보니 이제 정말 몇 권 남지 않았다.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도 낡은 책들을 버리지 않고 움켜쥐고 다니는 나를 아이들은 이해 안 된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책 한 권을 어쩌다 꺼내기라도 하면 오래되고 낡은 책을 둘러싸고 있는 겉표지가 조금만 잘못해도 바스라 버릴 것처럼 삭아있었다. 그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오랜 세월 참 장하게 견뎌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오곤 했다.


경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낸다. 먼지가 뿌연 겉표지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아 천천히 속에 든 책을 끄집어낸다. 마치 고대 유물 발굴하듯 아주 진지한 표정이다. 책을 감싸고 있는 겉표지는 체온이 닿자마자 부스럭거리며 누런 종이 가루가 마루 위로 떨어진다. 경이는 미간을 잔뜩 모으고 더 긴장된 표정이다. 속에 든 책은 질감 있는 반투명 비닐이 표지를 입히고 있다. 책 두께는 보통 5센티미터가 넘는다. 두께만큼 누렇게 바래져 있다. 경이는 오른쪽 표지를 한 장 펼친다.

외할아버지 책은 오른쪽부터 시작이라는 것 정도는 안 지 오래다. 작가 두 세 명의 오래된 흑백 사진들이 펼쳐진다. 요사이 찾을 수도 없는 편집이다. 유고 작가들 전집류에나 가끔 삽입될까. 경이는 그 사진들에 눈이 간다. 자기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시대 작가들의 평범한 일상을 찍은 사진들. 시상식장에서 상을 받는 모습, 지인들과 술자리를 하며 노래 부르는 사진, 서재에 앉아 긴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 롱코트 차림으로 전차가 다니는 길에 서서 몇 몇 친구들과 찍은 사진, 일제 강점기에 교복 입은 단체사진 등. 마치 제 집 식구들 사진첩을 보듯 경이는 마냥 신기한 눈빛으로 한 장 한 장 넘긴다. 나는 그런 경이를 소파에 기대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 전 나를 보는 것처럼.


아버지는 시인이 꿈이었다. 그래서 책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가장 먼저 나오는 전집류나 신간이 있으면 월급을 다 털어서라도 반드시 사고야 말았다. 덕분에 어머니 잔소리를 그칠 날이 없었다. 아버지는 늦은 결혼을 했다. 그래서 마흔이 넘어서야 자식을 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오랜 벗들은 모두 우리를 손자처럼 대했다. 아버지 고향 친구 가운데 사업으로 성공해서 부유하게 사는 친구가 있었다. 그 분은 외동딸 옷을 모두 서울 고급 양장점에서 맞춰 입히곤 했다. 그 물림은 모두 내 차지였다.

그래서 내 유년기는 평범한 옷이 없었다.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허리끈으로 매는 녹색 체크 코트, 온통 손자수가 가득한 상의, 순모로 만든 붉은 치마, 바짓가랑이에 꽃 자수가 가득한 나팔바지 등 많이 거북하고 불편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 자체가 거북했고 아이 옷 같지 않은 고급스러움에 거북했다. 물려 입은 옷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사람 마음을 더 잘 헤아리는 사람이었다. 늘 말이 없었지만 가끔 옷 투정을 부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물려 입어 투정을 부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느 겨울, 아버지는 잠이 덜 깬 어린 나를 깨워 손을 잡고 새벽시장에 갔다. 해가 뜨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분주하게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새벽 경매 소리, 짐꾼 소리, 장사꾼 외치는 소리! 아버지는 장 한편에 파는 만화 캐릭터가 새겨진 녹색 트레이닝복 한 벌을 사 주었다. 내 기억에 그 옷을 무릎이 닳도록 입고 다녔던 것 같다. 같은 반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시장에서 파는 바로 그런 옷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좋았다.


아버지처럼 나도 유난히 책을 좋아했다. 어쩌면 젖먹이 때부터 책 냄새를 맡고 자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무 뜻도 모르면서 틈만 나면 아버지 책을 꺼내 방 한가운데 놓고 엎드려 읽었다. 그러다 잠이 들곤 했다. 코끝을 감도는 누릿한 책 냄새.


동아백과사전. 초등학교 삼사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전집이 처음 나올 때 지방이라 구하기 어려워 그랬던지 아버지는 일주일마다 한두 권씩 나눠 들고 왔다. 커다란 가방에 그 무거운 백과사전을 불룩하게 넣어서 늦은 밤 몇 정거장을 걸어왔다. 버스비를 아껴 책을 샀기 때문이었다. 책을 가지고 오는 날은 술도 마시지 않았다. 처음에 어린 우리는 맛난 야식이라도 있나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방을 얼른 받아 꺼내보았다.

돌덩이처럼 무겁고 아주 두꺼운 책뿐이었다. 초 천연색 칼라 백과사전. 먹을거리는 아니어도 정말 신기했다. 그런 밤이면 아버지와 나는 의기투합이 되어 그 칼라 백과사전을 보느라 잠도 설쳤다. 둘이 나란히 매트 위에 엎드려 신이 나서 사진들을 정신없이 보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커다란 책이 아버지와 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그 때는 온 세상이 방 안에 다 들어찬 것처럼 부유했다. 정말 그랬다.


문득 책장 아래에 꽂힌 백과사전을 보면서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그 때 경이가 어느 새 천천히 책을 소리 내서 읽어 내리고 있었다. 두 단 세로 읽기가 어려운가 보았다. 마치 암호문 해독하듯이 더듬더듬 한 자씩 눈 새김을 한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경이는 알까? 할아버지 책들이 어떻게 모여 저기 저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월급을 쪼개고 밥값을 아끼고 차비를 아껴가며 외할아버지가 오랜 세월 한 권 한 권 모았던 서재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벌써 나는 마흔을 훌쩍 넘은 나이다. 아버지는 내 나이에 둘째를 낳았다. 그리고 마흔 후반에 또 막내를 낳았다. 어릴 때는 미처 몰랐다. 아버지가 왜 시인의 길을 포기했는지, 왜 아버지와 어울리지 않는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받으며 평생 살았는지, 왜 휴일이면 내 손을 꼭 잡고 시내 곳곳을 누비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는지. 아버지 단골 찻집에서 보았던 그림 그리는 사람들, 노트에 뭔가를 항상 적고 있던 사람들. 그리고 왜 아버지 습작 노트를 내게 물려주었는지를.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변변하게 내 이름 석 자 찍힌 책 한권 내지 못하는 나를, 당장 끼니를 위해 그 때의 아버지처럼 어울리지도 않는 장부를 눈알이 터지도록 하루 종일 쳐다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왜 하루에도 수 십 번 이 길을 포기해 버리고 싶어지는 지를. 이제는 정말 조금은 알 것 같다. 대학 시절, 처음 백일장에서 상을 받고 시상 장면이 뉴스에 잠깐 흘러 나왔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표정도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제일 기뻐할 줄 알았는데 제일 담담했다.


그 길을 가려고?”

그 한 마디 뿐. 그리고는 씁쓸하게 등을 돌리며 담배를 피웠다. 나는 그 때 참 많이 서운했다. 나는 그 때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단순히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대신 이루어 가는 데 대한 질투심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은 채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점점 지치고 외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외면했다.

 

아버지 임종을 지킨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 늦은 밤 급하게 지갑을 들고 슬리퍼를 신은 채 구급차에 동승한 단 한사람. 그 길이 마지막이 될 줄 아무도 몰랐다. 몇 번 위급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또 한 고비라고만 다들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길로 아버지는 영영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자정 가까운 그 시간에 응급실 구석에서 임종을 지키며 나는 혼자 벌벌 떨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숨 소리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었다.


마지막까지 삶의 평화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 밤에 아버지와 나는 영원히 화해를 하고 말았다. 나는 소리 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밤새 그치지 않았다. 참 이상했다. 내 몫으로 돌아온 유품은 습작 노트 한 권과 생전에 모았던 책들. 아버지가 학창 시절부터 썼던 시들이 가득 들어있는 습작 노트와 오래된 낡은 책들이었다. 유품을 집에 들고 온 후 결심했다. 아버지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 길을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기로


! 할아버지 사진이에요!”

경이가 밝은 톤으로 노래 부르듯 내지른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 아버지. 환하게 웃으며 철길 옆에 앉아 있다. 경이는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좋아했다. 그 전집류 속에 사진이 끼워져 있었나보다. 나는 사진 뒷면을 돌려보았다. 빛바랜 푸른 빛 만연필로 쓴 글씨체가 번져 있었다.

꿈을 위해! 1950415. 고향 기찻길에서 동생 현과 함께!’


! 나도 모르게 오래 숨겨두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흑백 사진 속 아버지 젊은 청년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아버지 서재는 내게 바로 꿈이며 희망이며 동경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현실이며 삶이며 유산이며 미래다. 사진을 바라보는 경이 눈빛도 유난히 반짝였다. 멀리 창 너머 노을이 구름 사이로 천천히 황홀한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글=박윤정]


이해산 기자  

 

 



이해산 기자
작성 2020.09.28 10:36 수정 2020.09.2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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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