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세설] 코피스족과 공유 오피스

기회에 대한 기대가 있는 관계지향적 공간

 


요즈음 젊은 친구들 중 툇마루를 아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툇마루란 방과 기둥 사이에 걸터앉을 수 있도록 만든 작은 마루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래된 집에는 툇마루가 있어 여름에는 모기향을 피우고 수박을 잘라먹기도 했고, 마을 어르신들이 지나가다 들러 1~2시간 씩 이야기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어릴 적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툇마루에서 건너편 나무로 된 사과박스로 만든 토끼 사육장을 바라보며 지냈던 기억이 난다.

내가 6살 때 툇마루는 나만의 카페였다.  지나가는 어르신에게 “커피 한 잔 하고 가이소~” “코코아 한 잔 하고 가이소~”라고 하면서 대문에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호객아닌 호객을 했었다. 길가던 어르신들은 툇마루에 앉아 할머니와 함께 1시간든 2시간이든 놀다 가셨다. 집안 며느리 흉에서 부터 옆집 아저씨가 누구와 눈이 맞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등 꽤 다양한 이야기가 툇마루에서 이어졌다. 

그때가 아마 1990년도 중반 쯤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1999년 이화여대에서 스타벅스 1호점이 생겼다. 시골보다는 아무래도 핵가족화, 도시화가 빨랐던 서울은 툇마루가 훨씬 빨리 사라졌을 것이다. 툇마루라는 공간은 카페가 그 위치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이전에 다방이 있었지만,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그리고 모던한 인테리어의 카페는 다방을 대신했다. 

그렇게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섰을 무렵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와이파이'가 대중화 되었다. 그러면서 2008년 경 부터 '코피스족'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 어플을 개발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우리 둘은 카페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며 친구는 어플 개발, 나는 작곡을 하며 콘센트 구멍 두개와 와이파이로 같이 밤을 지새기도 했다.  데스크탑이 메인 컴퓨터였던 시대에서 와이파이를 통해 메인 컴퓨터가 노트북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도 그랬고 친구도 그랬으며, 주변 사람들도 그랬다.

카페에서 인터넷 삼매경에 빠져 공부도 하고 음악도 듣고 할 일도 하는 '코피스족'이 언론에서도 다루어졌다. 어느 순간 커피전문점은 '초단기 임대사업'이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몇몇 기사에서는 코피스족과 카페 사장의 갈등을 다루는 기사도 종종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카페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많은 손님을 받는 것이 좋지만 코피스족 사람들은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적게는 2시간 많게는 5~6시간 동안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 이에 대한 불만과 수요가 지금의 공유오피스를 만든 것은 아닐까 싶다. 위워크, 마이 워크 스페이스, 패스트 파이브, 피치트리 등등…… 다양한 공유오피스가 있고 나름 각각의 개성이 있다.   단순히 업무공간을 임대하는 것에서 벗어나, 해당 공간에서 다양한 교육도 하고, 함께 일할 사람들도 찾는다. 물리적 공간이 '관계'를 지향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내가 있는 위워크만 하더라도 멤버십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소셜네트워크로 소통하듯 내 이야기를 올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위워크 내의 다양한 이벤트와 강좌들도 존재한다. 

이제 단순히 공유오피스는 공간만 임대하는 곳이 아니다. 위워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기회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 충족되는 공간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다양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옛날 툇마루에서 시작된 소통은 다방과 카페를 거쳐 공유 오피스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 공간이 사람을 불러들였고, 사람은 새로운 관계에 대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은 다시 공간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최근에 내가 재미있게 본 현상이 하나 있다. 직장인들을 위한 강의가 바로 그것이다. 직장인들을 위한 교양강좌나 직무 관련 강의들이 많이 늘어났다. 인문학부터 시작해서 코딩교육까지 그 범위도 매우 다양해졌다. 솔직히 집이나 카페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 편이 훨씬 편리하고 저렴한데 사람들은 굳이 그 시간에 그곳을 찾아간다. 그곳에 가면 자기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기회가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어떤 서비스든 공간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는 것이 아닐까.  '기회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쇠퇴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툇마루에서 공유오피스까지의 이야기에서 내가 느낀 것이 '더 나은 기회에 대한 기대를 주는 것' 바로 그것이다.

이의석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8.09.26 23:21 수정 2018.09.2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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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