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본 근현대사] 사랑의 거리

사계절 모두 봄봄봄 웃음꽃이 피는 곳

정은이·남국인·문희옥

 

여기저기 붉고 노오란 단풍이파리가 갈바람에 팔락거리는 계절이 왔다. 인생이라는 붓을 들고 붉음과 노오람이 겹쳐지는 가슴팍에 마음그림을 그려야할 시절이다. 요즈음은 TV를 켜면 온통 대중가요, 유행가 트로트 물결이다. 유행가가 오선지 박으로 튀어나와 울긋불긋한 단풍처럼 팔팔거린다. ~ 그리운 이여, 그대는 어디메서 내 생각 하시느뇨? 아마도 어디선가 나처럼 익어 가시리. 가을은 사랑의 계절, 낭만(浪漫, 흩어져가는 물결)처럼 가슴팍이 졸랑거린다. 이런 절기에 딱 어울리는 노래가 1989년 문희옥이 절창한 <사랑의 거리>이다.

 

<사랑의 거리>는 정통 트로트 노래다. 문희옥은 이미자·김연자·주현미의 뒤를 잇는 트로트 계승자다. 자기 자신의 융합된 뽕짝성 끼를 고유의 트렌드화 한 브랜드를 지향하는 가수다. 그녀 스스로 정통 트로트의 경계선을 벗어난 적이 없이 올곧은 길을 고집해 왔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스스로도 변화의 물결 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요즈음은 샐러드음악처럼 퓨전화 된 K(K-POP)이 대세인 상황에다가 세미트로트, 댄스트로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는 가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이웨이트로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장본인, 22세에 <사랑의 거리>로 대중들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사계절 모두 봄봄봄 웃음꽃이 피니까/ 외롭거나 쓸쓸할 때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찾아오세요/ ~ 여기는 사랑을 꽃피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여기는 남서울 영동 연인의 거리/ 사계절 모두 뜨거운 바람이 있으니까/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 누구라도 한 번쯤은 걸어오세요/ ~ 여기는 사랑을 꽃피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가사 전문)

https://youtu.be/XE_AINd79iM    

 

문희옥은 19676.25 전쟁 때 월남한 아버지 아래서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로 올라와 은광여고에 진학했다. 그녀는 2학년 때 소풍을 가서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꺾기 창법으로 불러 선생과 학생들을 쓰러뜨렸다. 이후 작곡가 이호섭과 안치행이 운영하던 안타프로덕션에서 노래연습을 하며, 1년 뒤 은광여고 측의 특별배려로 학교 강당에서 트로트 노래 발표회를 가졌었다. ‘워째 그라요, 워째 그라요 시방 날 울려놓고~’로 시작으로 하는 <팔도 디스코메들리>를 간드러지게 꺾어 불렀다. 이때 발표한 노래를 담은 메들리앨범은 360만 장이나 팔렸다. 이 노래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운전자들이 휴게소에 들르면 저절로 눈길이 끌리도록 하였고, 하이웨이트로트라는 말도 생겨났다. 문희옥은 이어서 1987년 전라도·경상도·함경도사투리를 엮은 <사투리 메들리>로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그녀는 1988년 서울예술대학에 진학하며 대학생 가수로 활동하였으며, 트로트 150여 곡을 발표하였다.

 

그녀의 정통 트로트 리듬을 경쾌하게 폭스트롯 화한 <사랑의 거리>는 인기 바람에 바람개비를 더했고, 1990<강남 멋쟁이>, <항구 메들리>, <디스코 메들리>, <해금가요 메들리> 등을 발표하면서 김연자·주현미의 뒤를 이어 여자 메들리 가수의 자리를 굳혔다. 1991<성은 김이요>를 발표하여 당시 13대 국회의원 선거 때 김 씨 후보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노래 가사에 나오는 DS가 누구인지 긍금증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1990년대 초반 락·발라드 음악이 주류를 이루던 정서 속에서 정통트로트를 고수하던 그녀는 점차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으며, 1995년 회사원 김 씨와 결혼한 후 약 3년간 공백기를 가지다가 1998<정 때문에>로 재개에 성공하였다. 그녀는 정통 트로트에서 벗어난 세미트로트 장르를 시도했으며, 그중 2002<하늘 땅 만큼>으로 기존에 그녀가 다루었던 트로트 음악과 비교되는 색다른 요소로 시도하였고, 2005년에는 <미스터 박>이라는 정통 트로트를 부르며 대중들 속으로 다가왔다.

 

<사랑의 거리> 노래는 한강·명동·남산·삼각지 등을 중심으로 했던 서울지역 대중가요의 소재지를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전시킨 곡이다. 서울을 테마로 한 곡은 해방광복 이전 <서울마치>, <종로행진곡> 등이 있으며, 1952년 심연옥의 <한강>, 1967년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 1968년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 1988년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등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트렌드에서 1982년 윤수일이 <아파트>를 히트하면서 노래 배경지는 별빛이 흐르는 다리(3한강교, 한남대교)를 건너 강남으로 이전하는데 펌프질을 했다. 1980년대 초반은 강남개발 바람이 태풍처럼 몰아친 시기다.

 

그렇다. 대중가요는 시대의 변화를 함의한다. 특히 노랫말은 시대 상황을 직유와 은유로 풀어내지 못하면 대중의 감성 공감을 살 수가 없다. 멜로디는 피아노 건반과 키타와 하모니카 같은 악기 속에 숨어 있지만, 노랫말은 작사가가 새하얀 백지 위에 적어 내려가야 하는 곡식의 낱알들이다. 이런 면에서 작사가는 이웃집 아저씨가 아니라 선생님으로 통칭 되는 작곡가와 마주 앉은 예술가로 인식되어야 한다.

 

1989년 정은이는 이러한 시류를 노랫말로 엮었고, 그녀의 남편 남국인은 당시 전통가요 부활 정책에 부합되는 선율을 엮어서 문희옥의 간들거리는 목청에 실었다. 당시 문희옥은 서울예술전문대학 2학년이었고, 폭스트로트 형식의 이 노래는 한 방의 화살로 인기 과녁의 중앙에 신사(神射, 화살을 명중시키는 신기어린 사람)처럼 적중되었다. 이 노래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하는 트로트 신·구세대 간극기(間隙期)의 징검다리다. 설운도·현철·송대관·태진아를 중심으로 하는 기성세대와 문희옥·장윤정·박상철·양양·홍진영으로 이어지는 신세대를 이어주는 오솔길이기도 하다. 이러한 양극화되던 트로트 시류는 다시 2천 년대를 경유 하면서 조화와 융합을 이룬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영동(永東)은 영등포의 동쪽 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역 이름이다. 옛날에는 경기도 광주군 일대였다. 1973년 성동구에 영동출장소가 신설되어 현재 강남구 일대를 관할했었다. 1975년 이 영동출장소가 폐지되고 강남구가 신설되자, 이후부터 강남구 일대를 영동이라고 부르게 된다. 문희옥이 졸업한 은광여고 졸업생 연예인 동문은 방송인은 브라운 아이드 걸스·문희옥·백지영·이진 등이며, 배우는 송혜교·한혜진 등이고 미스코리아 궁선영, 아나운서 임수민 등이 있다.


[유차영]

문화예술교육사

트로트스토리연구원 원장



전명희 기자




전명희 기자
작성 2020.10.19 10:22 수정 2020.10.1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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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