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 기 드 모파상의 '비곗덩어리'와 위선의 세상

민병식


모파상의 '비곗덩어리'보불전쟁이라고 하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71)을 그린 작품들을 모은 단편집 '메당의 밤(1880)'에 수록되어 있다. 식욕과 성욕을 바탕으로 당시 프랑스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인물들의 심리변화와 상황 전개의 객관적인 묘사로 프랑스 단편소설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겨울 새벽, 안개 속으로 마차 한 대가 출발한다.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의 북부 도시 루앙에서 점령군 장교들의 환심을 사 여행 허가증을 얻어낸 주민들이 대형 마차를 타고 루앙을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그 지역의 명문 귀족 부부, 방직공장을 여러 개 가진 지방의회 의원 부부, 포도주 도매상인 부부를 비롯해 두 명의 수녀, 정계 진출의 기회를 노리는 공화주의자 한 명, 볼 드 쉬프(비곗덩어리)’라는 별명을 가진 성적 매력이 넘쳐나는 매춘부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회적 신분 차이와 정치적 입장대립 이전에 귀부인이나 수녀와 함께 한 볼 드 쉬프(비곗덩어리)’ 존재가 아이러니하다.


중간 기착지 토르에 이르렀으나 이튿날이 되고 또 다음날이 되어도 마차는 출발할 줄을 모른다. 그 지역을 담당하는 프러시아 장교가 출발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요구는 `비곗덩어리'와의 잠자리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자유를 찾아 탈주를 감행한 프랑스인 모두는 적군 장교의 파렴치한 요구에 분노하고, 이 프랑스 여인의 단호한 거부 의사에 절대적인 지지를 표명한다.

 

그러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자신들이 붙잡혀 있는 곳에서 곧 대대적인 교전이 있으리란 소문에 상황은 돌변, 루앙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점령자에게 거역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고, 위기에 처한 이들은 자신들의 수치인 매춘부를 설득하는데 있어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멋진 몸매를 지닌 프러시아 장교가 적군인 게 유감이라는 귀부인의 발언을 필두로 모두 희생의 미덕을 이야기하지만 당사자의 저항은 완강하다. 결국 매춘부가 자신의 신분을 잊고 상대할 남자를 가린다는 비난을 퍼붓고 신은 순수한 목적에서 행한 죄악을 용서하리라는 수녀들의 감언이설에 떠밀린 비곗덩어리는 프러시아 장교를 찾아가고 다음날 아침 마차는 출발한다


그러나 마차에 올라탄 이 희생양을 맞은 것은 감사의 인사도 프러시아 장교에 대한 비판도 아닌 불결한 존재와의 접촉을 피하려는 철저한 외면이었다. 음식을 꺼내 먹으면서도 누구 하나 이 여인에게 음식을 권하는 사람은 없었다. 수녀들에게는 음욕의 화신, 귀부인들에는 여성의 수치, 프랑스 국가를 부르는 공화주의자에게는 적군의 위안부가 되어버린 비곗덩어리는 허기와 수치와 분노로 눈물을 흘릴 따름이었다

개인주의로 위장된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 비곗덩어리의 다양한 인물 무리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타인을 위한 나의 희생은 꿈도 꾸고 있지 않은지 뒤돌아봐야 할 것이다. 매춘부 덕택에 목숨을 부지한 귀부인, 수녀, 공화주의자 같은 인간들의 비열한 위선이 오늘날의 국가와 사회지도층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묻고 깊이 성찰하라고 권하는 작품이었다. [글 문경구]


[민병식]

인향문단 수석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문학산책 공모전 시 부문 최우수상

강건 문화뉴스 최고 작가상

詩詩한 남자 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2020 코스미안상 우수상

 

전명희 기자




전명희 기자
작성 2020.10.19 11:02 수정 2020.10.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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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