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으로 가다


서역의 관문 돈황


혜초가 걸어서 천축국으로 갔던 머나먼 비단길을 비행기를 타고 가려니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한밤중에 서역의 우루무치 땅에 내려 광활한 황무지 속의 오아시스 도시에 첫발을 내디뎠다. 중국의 변방에 위치한 위구르족 자치구인 신강성에서 잠시 눈을 붙인 후 아침 일찍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고 감숙성에 있는 돈황으로 향했다.  

 

돈황! 한나라 때부터 인도나 로마로 가는 관문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부터 2000년 전인 한 무제 때부터 장건이 개척한 길을 따라 수많은 대상들이 비단을 싣고 이곳을 지나 서역으로 나아갔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가에는 하얗게 핀 목화를 따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왠지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우리와 뭔가 통하는 알타이어족일 것이다.


목화 따는 사람들



돈황은 인구가 17만 명 밖에 되지 않지만 전성기 때는 100만의 인구가 이곳에 살면서 동서교역의 요충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돈황에서 서역으로 진출하는 관문이었던 양관을 찾아 가는데 주변엔 온통 푸른 하늘과  모래 지평선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폭양의 계절이 지나고 겨울로 접어드는 지금 사막의 아침 기온은 거의 0도를 기록하지만 낮에는 20도 까지 올라간다. 옥문관이 천산남로로 진출하는 관문이라면 양관은 서역남로로 가는 관문이다. 그 옛날 출입국관리를 하면서 비자업무를 보던 곳이다. 


양관고지



모래바람과 하늘과 지평선만 있는 양관 옛터에 섰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구도자들이 이 길을 지나갔을까. 일확천금을 꿈꾸는 장사꾼들도 저 황량한 사막 위로 낙타 떼를 몰고 오갔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고 없지만 끝없는 지평선과 그 위에 내리쬐는 태양은 지금도 변함없으니 유한한 인생이 대자연 앞에서 더욱 작아 보일 뿐이다.


돈황은 걸어서도 한 바퀴 돌며 구경할 수 있는 작은 도시다. 비파를 든 여인상이 있는 중심가에서 걸어 다니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재래시장인 사주시장에 들렀다. 곳곳에 마작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순박한 모습의 무슬림 여인들이 포도, 멜론 등 싱싱한 과일을 팔고 있다. 


과일을 파는 여인



돈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겉모습은 꾀죄죄하지만 순박한 눈망울과 맑은 영혼을 간직하고 있어 한없이 정겨워 보인다. 그 옛날 혜초도 이런 천진한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인도까지 갈 수 있었으리라. 양관을 넘어 끝없는 사막을 건너 서역 땅으로 향하는 단꿈을 꾸며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명사산과 월아천

 

아침 일찍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명사산으로 향했다. 모래바람이 불면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렸을 것이 분명하다. 울부짖는 모래산 가운데 자리한 초생달처럼 생긴 오아시스인 월아천月牙川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목마른 나그네들에게 생명수 역할을 하고 있다. 


월아천



명사산에 오르기 위해 낙타를 탔다. 키가 장대같이 큰 낙타는 참 순한 짐승이다. 낙타의 질긴 생명력은 이 척박한 땅에 사람들을 살 수 있게 만들었다. 사막 가운데 듬성듬성 난 낙타풀은 가시로 뒤덮인 풀이지만 낙타는 생존을 위해 혀를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저 풀을 뜯어먹는다.  


명사산의 낙타



낙타에서 내려 명사산 중간 봉우리쯤에 올라섰다. 천지는 곱게 다림질한 모래산의 음영으로 가득한데, 그 속에 한 점 모래가 되어버린 나는 저 모래처럼 아득한 우주와 그 너머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따라 바람도 자고 산도 울지 않는데 끝없는 모래산 앞에서 괜히 숙연해지는 연유가 무엇일까.


막고굴에서 만난 혜초


오후에는 월아천 입구에서 사막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막고굴까지 달렸다. 낙타를 타고가면 4시간이 걸린다는데 사막오토바이로는 40분이면 막고굴까지 갈 수 있다. 뽀오얀 흙먼지 꼬리를 달고 광활한 모래밭을 질주하는 이 기분을 나는 감히 낭만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 


 

사막 오토바이


사막 초입을 지나는데 수많은 인걸들이 살다간 흔적인 묘지들이 즐비하다. 모래바람이 한번만 세차게 불면 흔적도 없어질 봉분들 앞에 인간 욕심의 결정체인 비석까지 세워진 것이 많이 보인다. 도대체 인간의 욕망은 어디에 그 끝이 있을까.  


막고굴



온통 황토를 뒤집어쓴 채 눈만 반짝거리면서 막고굴 앞에 당도했다. 무슨 비적匪賊이라도 만난 듯 관광객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막고굴! 혜초와 현장법사의 발길이 머물렀던 곳이다. 천축국에서 불교가 들어올 때 여기를 거쳐 중국과 한국으로 왔다. 한때 3000명 이상의 수도승들이 여기 굴 속에서 수행을 했다고 한다. 사막 가운데 퇴적층을 뚫어 굴을 만들고 그 안에 수많은 불상을 봉안하고 경전을 넣어두었던 곳이 신비스럽기만 하다. 신라의 고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나왔다는 제17번 굴인 장경동 앞에 섰다. 머나먼 신라에서 걸어서 여기 돈황의 막고굴 까지 와서는 거룩한 흔적을 남기고 간 구도자가 오늘따라 한없이 그리워진다. 붉은 해는 서역으로 뉘엿뉘엿 기우는데...


고창국이 있었던 투루판


저녁에 천산북로로 가는 투루판으로 향하기 위해 돈황역에서 기차를 탔다. 약 1000킬로미터를 밤새 달려야 하는 야간열차다. 이러한 여정은 체력이 뒷받침 되고 마음의 여유까지 있어야 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오지여행을 서바이벌게임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진정한 즐거움이요 기쁨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투루판, 토로번


 


그러나 여기 실크로드 여행에서는 공부하고 사색하는 것만큼 보인다고 해야 더욱 옳다. 밤새 어두운 차창에는 나그네의 우수가 까맣게 몰려드는데 기차는 서늘한 사막의 밤을 가로지른다. 꼬박 열두 시간을 달려 동이 틀 무렵 황량한 불모지 가운데 나그네를 내려놓았다. 위구르족의 세상인 투루판이다.


투루판!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 내려오다가 사막 이래로 스며들었지만 칼징이라는 지하 인공수로를 파서 관개를 하여 포도농사를 짓는다. 지하수로의 총 연장이 5000킬로미터가 넘는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만리장성보다 더한 불가사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달콤한 포도가 이곳 투루판에서 난다. 


투루판의 건포도



만년설이 녹은 물과 강열한 햇볕 그리고 천산산맥을 타고 넘는 티 없이 맑은 공기가 세계에서 가장 당도가 높은 포도를 만들어냈다. 포도를 맛보는 것은 투루판 여행의 백미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행장을 챙겨 칼징과 포도농장을 둘러본 후 위구르족 민가에 들러 건포도와 함께 수박과 멜론을 실컷 먹었다. 민속의상을 하고 춤추는 위구르족 처녀의 푸른 눈동자 속에는 동양과 서양의 아름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서역의 달콤한 과일과 페르시아풍의 춤을 구경하면서 여독을 풀고는 교하고성으로 향했다. 


투루판의 전통악기



천산북로의 요충 교하고성


교하고성! 전한시대 기원전 2세기 경에 차사왕의 왕국이 있었고 이후 고창국에 흡수되었던 고성으로 당나라 때는 안서도호부가 있었던 곳이다. 두개의 강이 만나는 곳에 세워진 천연의 요새는 몽고족에게 함락되고 역사 속에 묻혔지만 세계 최대의 생토건축군이 남아있는 이 고성을 유네스코가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교하고성



교하고성은 흙을 쌓아서 만든 건축물이 아니고 음각과 양각으로 깎아내고 지하 동굴을 파서 이룩한 건축물들의 집합체다. 성 안에서 흙을 쌓아올린 유일한 건축물은 당나라 때 지은 절인 대불사 유허지가 있을 뿐이다. 황토집이나 흙집을 지을 사람들은 여기 교하고성에 와서 한 수 배워야 한다. 교하고성은 천산산맥을 넘어 우루무치를 지나 중앙아시아의 카쟈흐스탄으로 가는 천산북로의 요충이었기에 항시 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비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성 안의 우물에서 발굴된 여인의 유골은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에 상처가 있었다고 하며, 200여 구의 아기 무덤이 집단으로 발굴되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화염산과 천불동


순박한 불모의 땅에도 이제 자본주의가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다. 돈 앞에 당할 자 누가 있으랴. 서유기에 등장하는 화염산을 보기 위해 또다시 사막을 가로질러 달리는데 군데군데 보이는 유전에서는 꾸역꾸역 검은 노다지를 퍼 올리고 있다. 이제 해맑은 신강 땅도 자본주의로 시커멓게 오염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가니 온 산이 붉은 황토로 불타는 듯한 화염산이 나온다. 그런데 그 아래 계곡에는 거짓말처럼 물이 콸콸 흐른다. 


화염산 계곡


 


황토를 보려면 여기 화염산을 보아야 한다. 저 화염산은 여름에 47도 까지 올라가며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파초선으로 불을 끄고 지나갔다는 그 산이다. 저 멀리 북쪽에 가물거리는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여기까지 내려와 물줄기를 따라 사람이 살 수 있게 했다. 화염산 아래 위치한 천불동은 돈황의 막고굴처럼 석불과 경전을 모셔두었던 곳이다. 


천불동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돈다. 석굴의 주인이 마니교에서 불교로 바뀌고 또다시 이슬람으로 바뀌면서 찬란한 불상과 벽화는 대부분 훼손되고 없어졌다. 서구와 일본 도굴꾼들이 벽화를 통째로 오려서 가져갔고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도 가세하여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파괴해버렸다. 도굴꾼들의 얄팍한 욕심, 종교와 이념의 어설픈 확신이 부른 야만이 여기 천불동 굴속에 후대의 교훈으로 남아있다.


고창고성 


천불동 계곡을 빠져나와 현장법사가 인도로 갈 때 머물렀던 고창고성으로 향했다. 사막 가운데 기찻길처럼 나무가 늘어서고 주변에 포도농원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물길이 지나가는 곳이다. 고창국에는 한때 3만 명의 인구가 살았고 그 중 3000명이 승려였다고 한다. 고창왕과 현장법사가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고창국은 불교의 나라였다. 


고창고성



고창고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귀여운 위구르족 소녀들이 기념품을 팔고 있고 소년은 마차를 몰면서 동방에서 온 손님들을 향하여 수줍은 미소를 머금는다. 뒤편에서 돈을 챙기는 욕심쟁이 어른들이 보이긴 해도 깊은 연민이 배어있는 아이들의 시선 앞에 1달러짜리 지폐를 내놓고 말았다. 성 안으로 들어가  현장법사가 서역으로 떠나기 전 법문을 했다는 장소에 들어서니 그 분의 육성이 들리는 듯하다.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새벽에 우루무치로 가야한다.

 


우루무치로 가는 길

 

투루판에서 우루무치로 가는 길에 날이 샌다. 가없는 사막에서는 날이 어디서부터 밝아오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일시에 환해지고 만다. 아침 일찍 천산산맥의 협곡을 타고 넘는데 풀 한 포기 없는 산 사이로 계곡은 뻗어내려 생명의 물줄기는 흐른다. 저 물줄기의 시원은 어디일까 하고 생각에 잠기는 순간,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설산이 나타났다. 한 때 흉노족이 할거했던 이 길이 바로 실크로드의 천산북로다. 달판성이라는 고장을 지나는데 하얀 소금호수가 보인다. 사막 오지에서 거대한 소금밭을 보았다. 잠시 쉬고 가는 달판성 휴게소에서는 진짜 중국을 보고 말았다. 측간厠間이라고 써놓은 화장실에 들어서니 칸막이도 없이 확 트인 곳에서 방울을 달랑거리며 천연덕스럽게 일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서역의 측간 풍경 앞에서 나는 아침부터 키득거리며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버렸다. 


세계 최대의 풍력발전소 단지



우루무치로 넘어가는 이 길은 바람의 길이다. 세계에서 가장 바람이 센 허허벌판이기에 겨울철에 가끔 기차가 탈선할 정도로 센 바람이 분다. 그래서 여기에 세계 최대의 풍력발전소가 있고 고속도로 주변에는 ‘주의광풍注意廣風’이라는 표지판이 간혹 보인다. 천산산맥을 넘어서니 풀이 자라고 가문비나무가 제법 군락을 이루고 있다. 천산산맥의 북쪽 산록에서는 카쟈흐족이 목축과 농경을 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엉뚱한 생각을 했다. 지하에 석유나 광맥이 있는 땅에는 그 지자기파의 영향으로 지표면에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석유는 대부분 사막에서 나지 않는가.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곳에서는 건조한 바람만 불고 비가 많이 올 수가 없어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우루무치 땅으로 접어들었다. 


남산목장의 카자흐족


 


우루무치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천산산맥의 북쪽 사면에 위치한 카쟈흐족이 사는 수세구라는 마을을 방문했다. 일명 남산목장이라고 하는 곳이다. 카쟈흐족은 겉모습이 우리와 많이 닮았다. 이들을 보자 나는 스키토시베리안 계통의 유목민이었다는 공통분모를 기억 속에서 어슴푸레 찾아낼 수 있었다. 말을 타고 초지를 한 바퀴 돈 후 저들의 이동식 집인 파오에 들어가 끓인 양젖을 한 잔 하니 추위가 녹아내린다. 여기서 서쪽으로 더 가면 카쟈흐족의 본고장인 카쟈흐스탄이고 북쪽으로 가면 러시아와 접한 알타이가 나온다.


끝없는 서역 하늘을 돌아보면서 마음은 천산북로의 비단길을 따라 서쪽으로 내달리는데, 이제 또 다른 우랄알타이어족이 사는 동방의 등불 우리나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이봉수  논설주간


이봉수 기자
작성 2018.09.28 17:22 수정 2018.10.2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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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