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열전 靑年 列傳] 휘몰아치는 세상에 자아를 녹여 크는 탁효정

스스로에게 멋있어지는 것이 삶의 목표

나는 이제 갓 6개월 차 신입사원이다. 전략기획실 소속의 막내로 활약하며 귀여움을 도맡는 중이며……. (ㅎㅎ) 지금은 모 브랜드의 다음 시즌 상품 수량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프로젝트의 팀원이다. 항상 숫자로 소통하고 숫자로 말하기 때문에, 평소 친하지 않았던 엑셀과 수많은 함수들과 씨름하며 업무를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내 학부 전공은 디자인이다. 자기 전공과는 무관한 직업으로 많이들 가긴 하지만, 의아할 수 있는 커리어패스다. 관련 전공 학부생으로서의 나날을 보낼 당시, 나는 디자인과니까……. 나중에 취직은 디자인부서로 해야 되나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대학 졸업하면 그래도 자기 몫은 하면서 살겠지하는, 더욱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아무리 청년이라고 용기만 가질 수는 없다지만, 그런 말로 변명하기에는 다소 무기력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나 자신에게 그나마 해줄 수 있는 변명은 전공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변명만은 아니었던 것이, 돌이켜봐도 디자인과 나와의 케미는 잘 맞지 않는 편이었던 것 같다. 공부를 하면서 그럭저럭 과제를 해내긴 해도, 엄청난 흥미를 느낀다거나 지적 욕구를 느끼는 적이 거의 없는 것이었다. 달리 생각해보면 내게 주어진 재능 중에 그나마 가장 큰 미적 감각(?)을 살려서 디자이너의 길로 가는 것이 나에게는 어찌 보면 더순리대로 가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왜 이 생소한 길로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보라하면,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아마 내 몹쓸 병 때문일 것이다. 그 병인 즉슨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좀처럼 엉덩이 붙이고 일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디자인공부를 할 때도 내 안에 있는 것을 외화外化해 낸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뿌듯함이 있기에 순간순간 재미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회사에서 하고 있고, 배우고 있는 일이 나에게는 훨씬 더 지적 욕구를 자극하고, 좀 더 지속적인 재미를 추구하기에 맞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좀 더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재미를 느끼는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에 대답할만한 합당한 근거가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꽤나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 보니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는 일에 대해서는 동기부여가 없어 내키지 않아하는 성향을 가졌고, 인과관계를 따져가며 일하는 방식이 주가 아닌 패션디자인은 나로서는 좀 하기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계속 나의 자아를 설득시키는 과정이 반복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자꾸 머뭇거리다가는 내 것이 축적되어서 속도를 내야 할 시점이 올 때도, 나는 신나게 달리고 있기는커녕 주저하며 멋없는 월급쟁이로 남을 것만 같았다. 경영에 관해서는 교양에서 배울 법한 개념조차 전혀 몰랐지만, ‘?’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방식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전략기획 쪽으로 진로를 잡는 게 맞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같은 과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취업준비를 했다. 그리고 지금, 꽤나 만족한다. 조금 고달프기는 하지만 ?’에 대한 답변이 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될 수 없는 부서에서 성장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많이 커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밑도 끝도 없는 취업성공스토리만 쓴 것 같아 좀 머쓱하다. 여하튼 이런 측면에서 보면, 나는 어쩌면 내 자아에 오롯이 충실했던 제법 용기 있는 젊은이일 수 있다. 자칫 흘러가는 대로 갈 수도 있었는데, 내가 좀 더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끌고 간, 아주 주체적인 삶의 모습을 취한 젊은이.

 

그런데 한편으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정말 이 이유만으로 전략기획실을 선택한 것일까. 물론 나는 항상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주의고, 명예욕이 거의 0에 수렴하는 편이기도 해서 어떤 사회적 지위나 명망 같은 것, 혹은 약간의 월급차이(?)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좀 더 최적화된 형태의 일을 고르는데 방해받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내 자아만의 순수한 목소리를 오롯이 따른 결정이라고 말하기는 좀 찝찝한 것이다.

 

나는 공부를 잘하면 대접받고 산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한국사회에서 길러진 어쩔 수 없는 메이드인코리아, 세기말생 청년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에 해야 하는 공부라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사실 창의력보다는, 여전히 논리력을 갖추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것이다. 논리력이라는 것은 주로 언어로 표현이 되기 때문에, 주 소통수단이 언어인 인간에게서 가장 빨리 확인되는 능력이다. 사고의 흐름에 따라 시공간을 헤매며 오감으로 느껴온 수많은 자극들, 그 속에서 나름대로 해석하며 쌓아온 경험들, 그것들이 시너지를 내어 머릿속에서 상호작용하다가 어느 순간 유레카를 외치게 만드는 그런 직관, 그것이 사실 미개척된 인간의 가장 고도화된 능력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최고의 가치라고 여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고, 그 시대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나 스스로에게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전략을 짜고 진두지휘를 하는 일, (모두가 보기에) 멋있어 보이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느 정도 안정적이면서, 또 어느 정도 멋있어 보이면서, 또 나 스스로에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좀 심어줄 수 있으면서, 그런 여러 가지, 순수한 자아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어딘가 굉장히 다듬어진, 날것의 자아라기엔 애매하게 때 묻은, 그런 여러 가지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직업. 명예욕이 별로 없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사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고 나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직업적인 영역에서 사실은 사회가 더 높게 가치를 매겨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어떻게 보면 세속적 판단의 끝단에 기반한 결정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렇게 꼬인 해석을 해본다 해도, 진로를 결정할 때 그 무엇보다도 내 자아의 의견을 가장 많이 따랐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그 자아는 일찍부터 세상과 꾸준히 소통해 온 나머지, 세상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세상 살기 편안한 자아일수도 있다. 태초의 난 사회로부터 학습된 자아가 요구하는 바에 맞추며 살아가기 위해 사실 부단히 발버둥을 쳤는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만족감이 드는 욕심쟁이 자아를 길러온 덕분에 자아와 세계와의 충돌이 일어날 틈조차 없었던 것일 수도.

 

결국 세상과 타협하는 것과 자아에 충실 하는 것이 동전 뒤집기처럼 반대측면에서밖에 볼 수 없는, 아예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라는 사람이 혼자서만 쌓은 세계가 있는 것인가,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건 차라리 자폐다. 나라는 존재의 현재 모습은 나의 내적 동기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상호작용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걸 싫어할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세상의 요구에 부딪혀가며 취할 건 취하고, 내게 맞지 않는 가치는 포기해가는 자세가 차라리 내 내면에만 충실하겠다며 변화를 거부하는 것보다는 더 멋있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자신을 진정한 자유인으로 만드는 방법은 아닐까.

 


전명희 기자
작성 2018.10.02 09:28 수정 2018.10.2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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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