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청춘을 돌려다오

신행일의 <청춘을 돌려다오>

1967년 월견초 작사 신세영 작곡 신행일 노래

 

 

청춘노래를 절창(絶唱)하면 청춘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까. 이런 노래를 목청에 달고 살아가는 사람은 삶을 예술로 이어가려는 가인(歌人)이다. 100세 시대, 지난 1세기와 대중가요를 돌이켜 보면 감동적인 노래 한 소절은 지난날의 나를 반추(反芻)하게 하였지만, 저자거리에 넘쳐나는 치인(治人)들의 입술발림식의 구호는 민초들의 가슴속을 관통하지 못했다.  

 

이 노래는 100세 시대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이던 1967년 대중가요다. 작사가 월견초(본명 서정권)는  이러한 사실을 미리 간파하고 세기를 이어갈 만한 노랫말을 지었다. 당시 그는 인현동과 명보극장 골목길을 오가며 노랫말을 지어서 작곡가 신세영의 손끝에 멜로디를 의뢰했다. 노래를 부른 가수는 신행일. 노래는 그 해 방영된 영화 <이 밤에 잠들게 하라>OST로 쓰여 처음 인기는 잠잠했지만 세월을 거듭하면서 대중들의 가슴을 부풀리게 하고 인기를 더했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 황혼길 인생에 애원이란다 / 신문마다 방송마다 약은 많아도 / 돈 주고 못사는 게 청춘이드냐 /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 /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 낙엽 진 인생의 고백이란다 / 님 좋고 입도 좋은 야류 많아도 / 사랑엔 청춘만이 전부 아니냐 /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전문)


▶ https://youtu.be/RvfuVSaGTmE

 

 

명보극장(明寶劇場)1957년 서울 중구 초동에 개관한 대중예술극장으로서, 1977년 영화배우 신영균이 인수한 이후 프란시스 코폴라(Francis Coppola)감독의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프랭클린 샤프너(Franklin Schaffner) 감독의 <빠삐용>(Papillon) 등 외화(外畫)를 상영하였다. 우리영화는 하길종 감독의 <, 별들의 고향>, 변장호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상영하였다. 이후 19945개 상영관을 갖추고 재출발하였지만, 2008년 폐관되고 2009년 명보아트홀이 들어섰다.  

 

이 노래를 접하면 78세에 청춘(Youth)이라는 시를 발표한 유태계 사업가 시인 사무엘 울만(1840~1924)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미국 극동군사령관 맥아더(1880~1964)는 이 시를 사무실 벽에 걸어두고 날마다 낭송했다. 필리핀 주둔군 사령관 때나 태평양전쟁 종전 후 일본 주둔군사령관 시절에도 마찬가지. 그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411일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해임을 당하여 뉴욕으로 떠나갔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라는 말을 남기고. 그때 맥아더는 71세였다.  

  

월견초(1935~1974)는 밀양 출신. 38세로 요절한 그의 유작은 갈매기 사랑·살아 있는 가로수·이정표. 그는 1960년대 원통해서 못 살겠네로 데뷔했다. 월견초(月見草)는 달맞이꽃·야래향·산지마·향대소초로 불린다. 꽃말은 기다림·말없는 사랑. 그는 파주 신천지 공원묘원에서 영면하고 있다.  

 

방랑시인(放浪詩人)이 김삿갓(김병연 1807~1863)이라면 월견초는 방랑가인(放浪歌人)이다. 그는 밤마다 스카라계곡을 누볐다. 명보극장과 인현동 일대를 일컫는 그곳은 음악저작권협회·작가동지회·창작분과위원회·레코드사·영화사·인쇄소·극장·다방·술집이 아우러진 풍류가객들의 계곡이었다. 그는 박시춘·정풍송·은방울자매의 큰 방울 박애경·작은 방울 김향미와 동향, 밀양 태생이다.  

 

이 곡은 현철과 나훈아 노래로 더 알려져 있다. 개사된 노랫말은 아세아레코드설립자 최치수의 산물. 1984년에 나훈아, 이듬 해 현철이 리메이크를 한 가사는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 흐르는 내 인생의 애원이란다’. 개사 노래는 인기 날개를 달았다. 작곡 18년 만이다.  

 

신세영은 부산 출생 가수 정정수. 1926년 광산업과 포목점을 하던 부잣집 외아들. 대구에서 성장했고, 1947년 대구 오리엔트레코드 콩쿨에서 입상한 뒤 가수가 된다. 예명 신세영은, 신카나리아·장세정·이난영 이름을 한 획씩 딴 것. 대표곡은 병원선·추억의 40계단·비에 젖은 로맨스등이다. 그는 1981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2004년 영구 귀국하여 2010년 향년 84세로 타계했다. 그는 가수 태일(정태진)의 아버지다


유차영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8.10.02 09:56 수정 2018.11.1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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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