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줄다리기 끝에 신학대학에 진학 했고 동시에 집이 망했다. 도망가듯 부모님은 고향을 떠나셨고 동생과 나의 사글세 독립생활이 시작되었다. 겨우 입학은 했지만 두 번째 학기 등록이 어려워 휴학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교차로’ 신문을 뒤지는 것이 내 일상이 되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동생이 무너진 환경으로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어설픈 다짐이 나를 더 무겁게 한다. 고등학생의 참고서는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 분명 얼마 전에 산 것 같은데... 그닥 성적이 좋지 못한 동생의 참고서 구매 속도에 의심이 든다. 그리고 너무 부담스럽다. 갑자기 시작된 가난이 너무 힘겹지만 원망은 없다. 신학대학 진학에도 후회는 없다. 그렇지만 짜증은 난다. 집이 망해서인지, 고단하고 서글퍼서인지 이유는 모르겠다.
새벽 3시 30분 기상. 신문보급소 출근.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중학교 때 경험으로 신문 배달을 먼저 시작하게 되었다. 눈 뜨기가 싫고, 몸 일으키기가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정신줄 꼭 붙잡고 일어나 옷을 단단히 입고 밖에 나선다. 큰돈은 아니지만 이렇게 움직여야 안정된 수입이 생기는 것을 알기에 해야만 했다. 출근하면 가끔 듣는 배달 사고 소식이 유쾌하지 않다. 잘 던져 넣었는데 신문이 오지 않았다는 말이 믿어지지도 않는다. 특이사항은 없는지 확인 후 신문을 챙겨 뒷자리에 싣는다. 적당한 수량을 둥글게 말아 잘 묶어두면 달리며 던지기 좋은 셋팅이 된다. 내가 볼 스포츠 신문 한 부를 여유 있게 챙기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이른 새벽이라 사람도, 차도 없다. 내 오토바이 소리만 경쾌하게 울린다. 어느 집은 대문 아래로 깔아서 던지고, 어느 집은 2층 계단으로 던지며 집집마다 원하는 곳으로 던져둔다. 앗차! 잘못 던져 한 집은 지붕 위로 올라가 버렸다. 분명 저 집 보급소로 연락이 오겠지? ‘모르겠다.’ 아직 남은 집도 많고 오토바이에서 내리기 싫어 그냥 달린다. 소장님께 한 소리 듣고 말지모.
그렇게 속도를 내던 내가 한 집 앞에 멈춘다. 대문에 걸려 있는 우유 가방. 그곳에 신문을 넣으면 된다. 그런데 오늘은 우유 아주머니가 먼저 오셨나 보다. 가방에 흰 우유가 들어 있다. 배가 고픈데 왜 머리가 복잡할까? 오토바이에서 내려 우유 주머니 앞에서 잠시 더 고민 하다 신문과 양심은 넣어 두고 우유는 급히 뺀다. ‘과연 손은 눈보다 빠를까?’ 누군가 보지 않을까 싶어 급히 마셔버린다. ‘도둑놈!’ 배고파서 우유 하나 먹은 정도는 무죄라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훔친 것은 사실 아닌가. 누가 본 것도 아닌데 얼른 오토바이에 올라타 급하게 이동한다. 새벽 골목은 조용하다.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놀라게 한 콩나물, 두부 배달차도 보이지 않는데 내 가슴은 왜 이리 뛰는 걸까. 보급소에서 한 소리 들을 우유배달 아주머니가 맘에 쓰이면서도 입속에 우유는 고소하기만 하다.
새벽 5시 30분이면 집에 도착한다. 아직 동생은 자고 있다. 조용히 전기밥솥에 쌀을 올리고 집 근처 교회로 가 새벽기도에 참여한다. 눈을 감으면 우유가 자꾸 떠오른다. 신학생이 우유를 훔쳐 먹었다는 생각에 괴로움이 깊어진다. 집이 망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경건과는 거리가 먼 스무 살 신학생의 새벽기도는 그렇게 깊어졌다. 집에 돌아오면 밥은 되어 있고 할 수 있는 반찬을 만들어 본다. 오징어 볶음, 소시지 부침, 콩나물국. 그리고 얻어온 밑반찬을 더해서 아침상을 차리며 도시락을 싼다. 오늘은 잘 참아내던 동생이 도시락 반찬 투정을 한다. 형이 할 수 있는 반찬 가지 수가 얼마 없으니 동생도 많이 참다가 저러는 것이리라. 이해는 하지만 또 속상하고 서글프다. 대학 친구들은 멋지게 비전을 이야기하며 학교생활을 하는데 나는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모양이 초라하다. 망해버린 집이 내 삶이 되지 않을까 겁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