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제갈공명(諸葛孔明)에게는 못생긴 아내가 있었다. 제갈량이 신붓감을 찾고 있을 때, 황승언은 "나에게 추한 딸이 있다. 노란 머리에 피부색은 검으나 재능(才能)은 당신과 배필(配匹)이 될 만 하다." 라고 권하였다.
이에 제갈량이 승낙(承諾)하자 황승언은 딸을 마차에 태워 데려다 주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웃음거리로 삼았고, "공명이 아내 고르는 일은 흉내 내지 마라." 는 말까지 돌았다고 한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이 결혼(結婚)을 하고 첫날밤 신방에 들어갔는데, 황씨 부인이 너무 못생겨서 차마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신부 황씨가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옷깃을 잡아 끄는 바람에 옷이 뜯어져 버렸다. 황씨 부인은 諸葛孔明의 옷을 받아 기워 주겠다고 했고, 그런데 바느질을 한답시고 돗바늘로 듬성듬성 꿰매는 것이었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은 그런 부인(副因)의 모습을 보고 더 미운 마음이 들어 바느질 한 옷을 받자마자 신방(新房)을 나가 버렸다.
그런데 그 집을 벗어나려고 아무리 헤매도 계속 집 마당 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결국 새벽녘이 되어서 마당에 나온 장인(丈人) 때문에 다시 신방(新房)으로 들어갔는데, 날이 밝아 다시 옷을 보았더니 듬성듬성 기운 줄 알았던 옷이 틀로 박아 놓은 것처럼 고왔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의 婦人은 알고 보니 바느질에만 솜씨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없었다. 諸葛孔明은 그런 婦人의 도움으로 더더욱 걸출해 질 수 있었다. 제갈량의 아내 황씨는 재능(才能)이 뛰어나고 됨됨이가 훌륭해 남편이 승상(丞相)의 자리에 오르는데 큰 받침이 될 수 있었다.
제갈량이 융중에 살 때, 손님의 방문이 있어 아내 황 씨에게 국수 준비를 부탁하니 바로 국수가 나왔다. 무후(제갈량)가 그 속도(速度)를 괴이 여겨 후에 몰래 식당(食堂)을 엿보았더니, 몇 개의 나무 인형들이 나는 듯이 보리를 자르고 맷돌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아내에게 이 재주들을 전수받아 제조방법을 이용하여 식량 운송용인 목우유마(木牛流馬)를 만들기도 했다. 제갈량은 늘 깃털 부채를 들고 다녔는데 이는 아내 황 씨의 부탁이었다. 그녀가 부채를 선물(膳物)한데는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다.
황 씨가 제갈량에게 말했다. "친정아버지와 대화(對話)하는 모습을 보고, 당신은 포부(抱負)가 크고 기개가 드높은 인물(人物)이라고 짐작했다. 유비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당신의 표정이 환했다. 하지만, 조조에 대해 말할 때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손권을 언급할 땐 고뇌에 잠긴 듯 보였다. 큰일을 도모하려면 안색(顔色)에 곧바로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침착해야 한다. 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세요."제갈량은 집을 떠나있는 동안 늘 학우선 부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부채질을 하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氣分)이 들었다고 한다.
아내 황 씨가 말한 "얼굴을 가리라." 라는 말은 "침착하라!" 는 의미(意味)였다. 그녀는 마음이 고요해야 태연함과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네 삶을 잠시 뒤돌아본다. "욱"하는 성질에 순간을 참지 못해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 그리고 때 늦은 통렬(痛烈)한 후회(後悔)들, 제갈량의 부인 황 씨의 지혜(智慧)를 거울삼아 나 자신(自身)의 얼굴을 고사의 거울에 비춰보는 여유(餘裕)를 갖기 바란다.
[경찰신문 김일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