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효란 작가가 펼쳐내는 ‘연결’의 미학, ‘생성의 화폭과 관계의 지층’

-멈추지 않는 생성의 붓질, 우리 모두는 아직 서로에게 ‘연결 중’이다

-고정된 ‘나’를 지우고 ‘되어감’을 그리다.. 들뢰즈의 사유로 엮어낸 존재의 무늬


◆나를 그리되, 멈춰 있는 나를 그리지 않는다

[더인사이트뉴스 박주환 기자] 예술가에게 자화상이란 단순히 거울에 비친 형상을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캔버스라는 거울 앞에 선 단독자가 겪는 치열한 자기 부정과 긍정의 반복이다. 염효란 작가에게 있어 회화는 나를 둘러싼 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존재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접속’과 ‘횡단’의 사유를 붓 끝으로 번역해내는 그는, 고정된 정체성의 틀을 깨고 매 순간 새롭게 생성되는 인간의 내면을 화폭에 담아낸다. 선과 색채가 위계 없이 뒤섞이며 거대한 관계의 지층을 만들어내는 염효란의 작업 세계는, 현대미술이 도달할 수 있는 존재론적 사유의 정점을 보여준다.


▲Relation 162 x 130.3cm Acrylic on canvas 2023 서로 등을 지거나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을 통해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 속의 유동적인 존재를 표상.

◆들뢰즈의 철학, 붓 끝에서 흐르는 ‘리좀’의 미학

염효란 작가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질 들뢰즈의 ‘접속’과 ‘횡단’이다. 들뢰즈는 존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모하는 ‘흐름’의 총체로 보았다. 염 작가는 이 난해한 철학적 사유를 회화라는 직관적이고도 감각적인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해낸다.


그의 캔버스 위에서 색채와 선은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채 서로를 가로지른다. 특정 중심점으로 수렴되지 않고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이 역동적인 붓질들은, 들뢰즈가 제안한 ‘리좀(Rhizome, 뿌리줄기)’적 사고와 맞닿아 있다. 이는 마치 우리 삶의 파편들이 정해진 정답 없이 매일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결합하고 해체되는 과정과 닮아 있다.


염 작가는 자신의 작업 철학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 깊이 매료되었다. 같은 나무를 봐도 빛과 바람, 보는 이의 심상에 따라 매일 그 느낌이 다르듯, 인간의 정체성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 순간 미세하게 변주된다. 나의 자화상은 그 변화의 결을 포착한 ‘움직이는 구조체’이며, 매 순간 탈바꿈하는 존재에 대한 기록이다”


▲Relation 130.3 x 80.3cm Mixed Media on Canvas 2023 흐르고 번지는 유기적 형태와 기하학적 수직선이 공존하며 나와 타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이중적으로 시각화.

◆신체적 한계라는 ‘감각의 문’을 통과하여

염효란 작가의 예술이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그 바탕에 벼려진 치열한 삶의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학문적 갈증을 채우기 위해 홍익대 석사와 단국대 조형예술학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그는 스스로에게 가혹할 만큼 엄격했다. 하루 3~4시간의 수면만을 허락하며 학문과 예술의 끈을 놓지 않았던 시간은 그를 예술적 깊이로 인도했지만, 동시에 육체적인 한계를 불러왔다.


백내장이라는 갑작스러운 시련은 시각 예술가인 그에게 절망과도 같았다. 색의 미묘한 변주를 읽어내야 하는 화가에게 안개가 낀 듯한 시야는 창작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붓을 꺾는 대신, 그 희미해진 시야 너머의 본질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 아픈 상태에서도 붓을 놓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상태였기에 그릴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장애라고 느껴질 만큼 힘겨운 제약이 찾아왔을 때, 역설적으로 육안의 시력을 넘어선 ‘영혼의 감각’이 생생하게 깨어났다. ‘해서 안 되는 건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고, 그 시기에 탄생한 작품들은 온전히 나라는 사람의 가장 솔직하고 처절한 증거물이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통과하며 얻어낸 이 ‘삶의 증거’들은 그의 회화를 더욱 직접적이고 두터운 질감으로 변모시켰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박제된 ‘완성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 위에서 요동치는 ‘살아있는 과정’을 목격하게 만든다.


▲Relation 116.8 x 91.0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녹색과 붉은 색의 선형들이 끊임없이 흔들리며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고 중첩되는 유동적인 관계의 본질을 탐색.

◆예술은 ‘연결’의 언어다

염효란 작가에게 예술은 결코 고고하게 고립된 행위가 아니다. 그는 강단에서 제자들에게 단순한 묘사 기법을 넘어,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법을 전수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에게 교육은 또 다른 방식의 ‘접속’이다.


“예술은 누구나 접속 가능한 언어다. 다만 그 가능성을 스스로 발견하고 세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가 필요할 뿐이다. 대학원 진학부터 새로운 예술적 경로 탐색까지, 제자들이 각자의 고유한 길을 열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작가로서 느끼는 기쁨과는 또 다른 숭고한 보람이다”


그는 이러한 소통을 통해 예술이 지닌 사회적 확장성을 실현하고자 한다. 예술가들이 경제적, 물리적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창작에 몰입하며 담론을 나눌 수 있는 ‘미술관 건립’은 그의 오랜 비전이다. “이미 마련해 둔 부지에 미술관을 세워 우리만의 ‘연결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곳은 작가와 대중, 철학과 예술이 자유롭게 교차하고 새로운 사유가 쉼 없이 생성되는 장이 될 것이다”


▲Relation 72.7 x 90.9cm Mixed Media on canvas 2022 배경의 규칙적인 세로 스트라이프 구조와 중심부의 유기적 형상들을 대비시켜 질서와 반복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를 강조.

◆사유의 건축가, 경계를 횡단하는 붓질

염효란 작가의 예술적 지도는 이제 또 다른 영토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과 타인, 자아와 외부 세계 사이의 인위적인 경계를 허물고, 그 경계를 가로지르는 선들을 더욱 촘촘히 엮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겉모습은 서로 달라도 우리 안에는 인간으로서 공유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나와 너를 나누고 벽을 세우기보다, 서로를 어떻게 예술적으로 접속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현대미술이 짊어진 숙제라고 생각한다”


화폭 위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 철학을 감각의 층위로 스며들게 하고 그 감각을 삶의 흉터이자 무늬로 남기는 작업. 염효란 작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예술적 영토를 횡단하고 있다.


자신을 직면하는 용기를 기록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해 나가는 그의 ‘생성의 회로’는 오늘날 우리에게 예술이 어떻게 개인의 치유를 넘어 사회적 연대의 증거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단절된 시대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는지를 묵직한 울림으로 증명하고 있다. 염효란 작가의 붓질이 멈추지 않는 한, 그의 캔버스는 우리 모두를 향해 열린 ‘접속의 통로’가 될 것이다.


▲connection 116.8 x 91.0cm Acrylic on canvas 2026 꽃과 사물의 이미지, 기하학적 구조물들이 뒤섞이며 자연과 인공, 유기적 형태와 구조적 질서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과정의 시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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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5.18 09:35 수정 2026.05.1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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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