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추억의 경주 수학여행’, 새 인생의 시작이다!

여계봉 대기자

 

고등학교 졸업 50주년을 기념하여 친구들과 1박 2일로 ‘추억의 경주 수학여행’을 떠난다. 칠순의 나이에 맞이하는 졸업 50주년이라 ‘70’과 ‘50’이라는 숫자가 동시에 오버 랩 된다. 경주로 가는 KTX 열차 안에서 설렘 반 기대 반의 심경으로 잠시 후 만나게 될 그리운 친구들 모습을 떠올려보려고 애를 쓰지만 기억이 그리 녹녹하지 않다.

 

집결 장소인 경주 포석정에 도착하니 고향 마산과 전국 각지에서 온 100명이 넘는 친구들로 포석정 넓은 주차장은 마치 시골 장터처럼 시끌벅적하다. 반백이 다 된 친구들의 이마와 얼굴에 파인 깊은 주름 때문에 친구의 목에 걸려 있는 이름표를 일일이 들여다봐야 얼굴을 알아볼 정도여서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경주 남산 숲길을 유유자적 함께 걷는 친구들

 

서로 인사를 나누는 반가운 시간이 지나고 삼삼오오 남산의 부흥사 오층 석탑까지 부드러운 산길을 따라 걷는다. 조금 전까지 내린 봄비로 남산의 연둣빛 숲은 그 색감이 절정이라 그 길을 걷는 이들의 기분도 덩달아 고조된다. 보고 싶었던 친구들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유려한 숲길을 따라 걸으니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져 칠순의 나이에도 발걸음은 마냥 춤을 춘다. 

 

부흥사 오층 석탑에 올라 경주 시내를 조망하고 남산을 내려와 보문단지에 있는 숙소인 더 케이 호텔로 향한다. 숙소 연회장에 들어서니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지면서 무대 스크린에 젊은 날의 초상들이 비추어진다. 영상 속 앳된 얼굴에 교복과 교련복을 단정하게 입은 소년들 모습을 보니 지나간 추억들이 생생하게 살아나면서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오늘은 돌아가신 선생님들도 AI의 도움으로 환생하여 제자들과 연회장에서 자리를 함께하고 계신다.

 

김종덕 동기의 색소폰 연주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회를 자청해서 맡아온 이흥복 동기의 능숙한 진행으로 본격적인 여흥이 시작된다. 매혹적인 목소리를 지닌 여자가수가 춤선이 이쁜 남녀 댄서 2명과 함께 화끈하고 거침없는 율동으로 무대를 한바탕 뒤집어 놓는다. 이어서 우리 동기들의 숨겨진 재능이 빛을 발하는 순서가 찾아온다. 대학교수로 평소에 음악 재능기부를 해오면서 탄탄한 연주 실력을 갖춘 김종덕 동기의 매력 넘치는 색소폰 소리가 경주의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이어서 학교 현장에서 풍물 동아리를 오랫동안 지도해온 국악인 고인석 동기와 서울 대학로에서 생활밀착형 국악 공연을 펼치고 있는 여성 풍물패 ‘신명나눔’이 어깨춤 절로 나는 신명나는 공연을 펼치자 흥에 겨운 친구들이 무대로 뛰어나와 풍물패와 어울려 얼씨구! 절씨구! 추임새를 넣으며 분위기를 끌어 올린다. 

 

고인석 동기와 풍물패 ‘신명나눔’의 국악 공연 

 

이어서 IMF 때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국민가요 '아빠 힘내세요'의 작곡가이자, 지금은 노익장 가수로 젊은이 못지않게 맹활약 중인 한수성 동기가 나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공연장을 뜨겁게 달구니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친구가 교사 시절에 작곡한 동요가 150여 곡이 넘는데, 그 중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네 곡이나 수록 되어있어 정상급의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퇴직 후에도 음악 활동을 꾸준히 해왔는데, 근래에 광안리와 해운대 해수욕장의 버스킹 공연 장면이 유튜브와 틱톡,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조회수가 삼 천만을 돌파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담아 감동적인 노래를 친구들에게 선사하니 계속해서 앵콜이 터져 나온다. 

 

국민가요 '아빠 힘내세요'의 작곡가이자 인기가수 한수성 동기

 

이제 행사가 마무리될 시간인데 사회자가 예정에 없던 출연자를 갑자기 소개하니 객석은 놀라움에 잠시 술렁거리지만 곧이어 모든 친구들이 뜨거운 환호를 외치기 시작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졸업 50주년 기념 선물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에는 '마산의 사이먼과 가펑클'로 불리던 친구들이 있었다. 둘 다 기타 연주와 팝송 실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외모도 사이먼과 가펑클처럼 한 친구는 아담하고 한 친구는 키가 컸는데, 두 친구의 인기는 교내는 물론 마산 시내에서도 유명세가 대단했다. 당시 자타가 인정하는 명문고등학교에 다니다 보니 학업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힘든 시기에, 이 친구들이 점심시간에 방송실에서 라이브로 불러주는 팝송들은 그동안 쌓인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주는 청량제이기도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세월이 흘러 타향에서 살다 보니 '마산의 사이먼과 가펑클' 소식을 제대로 접할 수 없었는데, 친구 중 한 명은 작고하고 나머지 한 명은 중병으로 장기간 치료 중이라는 슬픈 소식을 듣고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오늘 공연 일정에 없던 친구가 갑자기 마지막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오랜 투병 끝에 건강을 회복하고 친구들 앞에 선 홀로 남은 '마산의 사이먼과 가펑클' 김정헌 동기가 그때 그 시절의 감성으로 '사운드 오브 사이런스'와 '더 복서'를 불러주니 잠시 학창 시절의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오늘 이 자리에 50년 전처럼 두 친구가 함께 노래를 불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서 부르는 친구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울컥 감정이 복받치다가 간신히 추스르니 잔잔하지만 진한 감동이 끝없이 밀려온다.

 

'마산의 사이먼과 가펑클' 김정헌 동기

 

행사 마무리에 서로 주름진 손으로 옆 친구의 손을 잡고 교가를 열창한다. 교가를 부르는 모두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힘이 넘쳐흐른다. 공식 행사가 끝난 뒤 야외에 있는 카페에서 생맥주 파티가 이어진다. 이슬비 온 뒤라 약간은 서늘한 경주의 밤공기를 생맥주에 담아서 함께 마신다. 술잔이 오가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담소를 나누다가 자정이 가까워서야 첫날 일정이 끝이 난다. 서운한 표정으로 서로의 숙소로 돌아가는 친구들 뒷모습이 정겹고 애틋하기만 하다.

 

다음 날 아침, 비가 조금 내리는 가운데 불국사와 석굴암, 대릉원을 둘러보는 둘째 날 일정이 시작된다. 관광버스에 오르기 전, 어떤 친구가 허리를 굽혀 신발 끈을 열심히 묶고 있는 모습이 오늘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아 한참을 쳐다본다. 친구의 신발 끈 묶는 장면이 마치 인생 후반전의 레이스를 준비하는 우리 모습처럼 느껴지는 심경은 나만의 생각일까. 열정으로 가득했던 청춘들이 반세기를 쉼 없이 달려와 이제 칠순의 노인으로 변했지만,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는 여전히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와 열정이 가득하지 않을까.

 

50년 만에 떠난 ‘추억의 경주 수학여행’ 

 

1박 2일 동안의 일정이 성황리에 모두 끝나고 이제 친구들과 작별할 시간이다. 이틀 동안 행사를 총괄한 친구의 작별을 고하는 인사말이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번 행사는 우리 인생의 졸업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입학식입니다. 10년 후, 60주년 행사 때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

 

고교졸업 50주년 기념행사이자 인생 반세기의 ‘추억의 경주 수학여행’은 끝났지만, 우리의 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부터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여계봉 대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6.05.24 10:43 수정 2026.05.2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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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