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랑에르 피오르를 건너 달스나바로
헬레쉴트에서 게이랑에르까지
크루즈를 타고 가는 시간은
대자연이 펼치는 한 편의 서사시
대형 유람선 선상에 오르면
아이맥스 영화의 압도적인 장면이 다가온다

250만 년 전
빙하가 깊숙이 긁어낸 협곡에
바닷물이 스며들어 만들어진
깊고도 긴 거대한 피오르
오늘은
협만의 빙하가
우르르 쾅쾅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녹아 눈물처럼 흐른다
코발트색 하늘이
피오르 바닷물에 투영된
지고지순한 물색은
빙하의 울음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협곡 300m 절벽
일곱 줄기 실타래로 떨어지는 폭포에는
일곱 자매가 춤을 추면서
일으킨 하얀 물보라가
햇빛을 만나 영롱한 무지개를 수놓는다

산허리를 감싼 구름 사이로
이름 모를 폭포들이 쉼 없이 흘러내리고
경사진 계곡과 평탄한 초원
가파른 절벽의 파노라마가
시도 때도 없이 모습을 바꾸니
숨이 멎을 듯한 감동이 밀려온다

뱃고동 소리에 놀라
뱃머리를 바라보니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험한 산에 둘러싸여
싱그러운 초록으로 물든
그림 같은 마을이 나타난다

게이랑에르 마을 뒤
빙하가 흘러내리는 저 산 너머에는
어떤 풍경이 있을까
마을 뒤에는
꼬불꼬불 산허리를
끝도 없이 감아 도는
요정만이 오를 수 있다는
‘요정의 길’이 있다

가파른 비탈을 넘는 자동차는
엔진 소리마저 숨이 차지만
하늘과 맞닿은
빙하 호수 듀프호에 비친
설산의 무채색 반영은
잔인하리만큼 아름답다

1,500m 고지 달스니바 정상에
바람이 사락사락 구름을 쓰니
비로소 시야가 열리면서
익숙했던 풍경은 사라지고
낯선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정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크고 허연 바위들
그 바위에 붙어사는
연녹색 이끼무리들

흑백으로만 덧칠되어 있던
황량한 풍경화에
이끼가 내는
초록의 색깔만이 더해졌을 뿐인데
낯선 감각 때문인지 울림은 더 깊어진다

달스나바 전망대에 오르니
실 같은 ‘요정의 길’을 따라
지나온 마을들이 아련하게 보인다
목가적인 게이랑에르 마을
푸른 눈의 거대한 빙하
코발트 빛 맑은 바다
파란 물감을 뿌린 아름다운 하늘

석양이 피오르를 둘러싼 설산들을 비추니
죽은 듯 누워있던 겹겹의 능선들은
비로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림 같은 이 모든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은
달스나바 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백척간두에 앉아
붉은 태양이 피오르 깊은 곳으로 내려앉을 때까지
저 장중한 자연의 침묵하는 교향악을 숙연히 바라본다
더 이상의 풍경은 세상에 없으리라.

*게이랑에르 피오르 & 달스나마 전망대
영화 ‘미션 임파서블-데드 레코딩’의 촬영지로 유명하기도 한 노르웨이의 헬레쉴트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오르인 ‘게이랑에르 피오르’ 유람선을 탑승하는 작은 마을이다. 피오르(fiord)는 빙하의 침식 작용으로 만들어진 좁고 깊은 U자형 협곡에 바닷물이 들어와 생성된 지형이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는 마법 같은 풍경 때문에 200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노르웨이를 찾는 여행자 대부분이 버킷 리스트 1순위로 손꼽는 곳이다. 유람선은 헬레쉴트를 출발하여 1시간 10분 정도 대자연이 펼치는 환상적인 풍경들을 승객들에게 보여주고 종착지인 게이랑에르 마을에 도착한다. 마을 뒤로 난 ‘요정의 길’은 ‘달스나바 전망대’로 가는 S자형 산길인데, 너무 험해서 눈이 안 오는 6월부터 9월 사이에만 길이 열린다. 해발 1,500m인 달스나바 전망대에 오르면 무채색의 주변 설산들 풍경이 마치 황량한 우주를 연상시키고, 발아래로 거대한 피오르의 협곡과 게이랑에르 마을, 그리고 지나온 ‘요정의 길’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매년 이곳에서는 ‘게이랑에르 프럼 피오르 투 서밋(Geiranger From Fjord to Summit)’이라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인기 높은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는데, 게이랑에르 마을에서 시작해 달스니바 전망대 정상에 이르는 21km 구간에서 하프 마라톤 대회, 자전거 대회, 경보 대회 등이 개최된다.

[여계봉 대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