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보내는 영혼의 편지] 이중섭
안녕하세요. 마음의 쉼이 필요한 그대에게 빛처럼 살다 간 영혼들의 편지를 전하는 영혼지기 ‘자인’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대의 마음이 잠시 비어 있다면 그 틈으로 영혼의 편지를 함께 열어보려 합니다.
오늘은 20세기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한 불행한 삶을 살다가 떠난 화가 이중섭이 보내온 편지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를 아는 그대에게.
사람들은 지금 내 그림 앞에 오래 머물러 섭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던 날에는 내 그림보다 하루 끼니가 더 절실했습니다.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방은 점점 좁아졌으며, 가난은 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예술은 나를 살게 했지만, 현실은 나를 조금씩 무너뜨렸습니다.
그대여. 세상은 살아 있는 예술가에게는 침묵하고, 떠난 뒤에야 박수를 보내는 일이 많습니다.
나 또한 생전에 그 박수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술은 박수를 받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영혼이 견딜 수 없어 토해 내는 고백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내 그림 속 소를 힘과 용기의 상징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내게 소는 그보다 훨씬 깊은 존재였습니다. 소는 말없이 모든 짐을 견디는 생명이었습니다. 매를 맞아도 밭을 갈고, 굶주려도 묵묵히 걸어가는 존재였습니다.
나는 그런 소에게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난에 짓눌리고, 시대에 상처 입고, 가족과 헤어져도 끝내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운명을 말입니다. 그래서 내 소의 눈은 슬픕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체념이 아닙니다. 아무리 상처를 입어도 생명의 불씨만은 꺼뜨리지 않겠다는 침묵의 의지입니다. 내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가난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수없이 그렸습니다. 해맑게 뛰노는 아이들, 손을 맞잡은 가족, 따뜻한 식탁…. 사람들은 그것을 행복한 그림이라 하지만, 사실은 너무도 그리워서 그린 그림들이었습니다. 가질 수 없었던 시간을 그림으로라도 붙잡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는 담배 은박지에도 그림을 새겼습니다. 좋은 화구를 살 돈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가난의 흔적이라 말하지만, 나는 예술은 재료가 아니라 절박함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그 은빛 조각들 위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그대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진실한 예술은 유행보다 오래 살고, 진실한 삶은 명성보다 깊이 남습니다. 꽃은 사람들이 바라본다고 피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스스로 피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끝내 가난 속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병든 몸과 외로움 속에서 눈을 감았고, 내가 그린 그림들이 훗날 세상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예술가의 운명이란 결국 인정받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의 진실을 배반하지 않는 데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그대여.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묵묵히 하십시오. 세상이 침묵해도 자신의 영혼만은 속이지 마십시오. 오늘의 외로움이 내일의 빛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 그림 속 소를 다시 바라보십시오. 그 소는 싸우기 위해 뿔을 세운 짐승이 아닙니다. 눈물 속에서도 묵묵히 삶을 끌고 가는 인간 자신입니다. 어쩌면 그 소는 바로 당신이고, 또한 나였습니다.
우주의 나그네가 된 나 ‘이중섭’이 그대들에게 이 편지를 띄웁니다.
이 편지가 그대에게 잘 전달되었겠지요. 이 편지를 덮는 순간에도 그대의 마음 한켠에 남은 작은 울림은 그대의 하루를 따뜻하게 해줄 것입니다. 저는 영혼지기 ‘자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