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고성군 동해면 용정리 매정마을 앞바다가 대규모 해양특구 조성사업으로 빠르게 매립되고 있다. 수십 년 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 바다가 한때 당항포해전 당시 이순신 연합함대가 정박하여 하룻밤 자고 간 역사적 현장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최근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이 발간한 『동방학지』에 게재된 이순신전략연구소의 논문은 이순신 장군의 장계 「당포파왜병장」에 등장하는 미상 지명 '멀우장(亇乙于塲)'이 현재의 고성군 동해면 용정리 매정마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역사의 비밀이 밝혀진 그 바다는 지금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이 오가며 육지가 되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곳 뿐만이 아니다. 남해안 곳곳의 임진왜란 전적지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부산대첩지와 웅포해전지, 합포해전지, 사천해전지, 순천왜성 앞바다의 장도해전지 등은 이미 매립으로 해안선이 크게 달라졌다. 최신 지도를 들고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읽어 보면 임진왜란 당시의 지형을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토는 시대에 따라 이용 목적이 달라질 수 있고, 항만과 산업단지, 해양관광시설도 필요하다. 그러나 개발이 역사를 지워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개발'이 아니라 '망각'이다. 공사가 끝나면 그곳이 원래 바다였는지, 어떤 전투가 벌어졌는지,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한 세대만 지나도 "원래부터 육지였던 곳"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문화재보호구역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적 장소를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채 매립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아니다. 최소한 사업 시행자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안내 표지석이나 기념 조형물 정도는 설치해야 한다. "이곳은 1592년 음력 6월 5일 당항포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 함대가 하룻밤 자고 간 멀우장 앞바다이다"는 한 줄의 설명만 있어도 후손들은 그 의미를 기억할 수 있다. 이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개발비에 비하면 극히 적은 비용으로 역사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더 나아가 이제는 환경영향평가와 함께 '역사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규모 개발사업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도록 법제화 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문화 환경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검토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으면 역사적 가치가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현장도 있고, 학술연구를 통해 새롭게 규명되는 장소도 있다. 멀우장이 바로 그런 사례다.
앞으로는 일정 규모 이상의 해안 매립이나 항만 개발사업을 추진할 때 역사학자와 고고학자, 향토사 연구자 등이 참여하는 역사영향평가를 함께 실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안내시설 설치, 기록 보존, 디지털 복원 등 필요한 조치를 의무화한다면 개발과 역사 보존은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이순신 장군이 지킨 그 바다에 남아 있는 역사를 지켜야 한다.
[이봉수 논설주간]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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