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보내는 영혼의 편지] 김소월
안녕하세요. 마음의 쉼이 필요한 그대에게 빛처럼 살다 간 영혼들의 편지를 전하는 영혼지기 ‘자인’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대의 마음이 잠시 비어 있다면 그 틈으로 영혼의 편지를 함께 열어보려 합니다.
오늘은 ‘진달래꽃’을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라는 말까지 있는 서정시의 원류, 김소월 시인이 우리에게 보내온 편지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사람들은 나를 소월이라 부르고, 지금은 내 이름보다도 「진달래꽃」을 먼저 기억합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내 시가 오늘처럼 많은 사람의 가슴에 오래 남으리라고는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190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내 삶에는 남들이 쉽게 알 수 없는 그늘이 있었습니다. 내가 두 살 무렵 아버지가 일본인 노동자들에게 폭행당한 뒤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고, 나는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보호 아래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결핍과 상처가 훗날 내 시의 정조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온 때가 있었습니다. 오산학교에서 김억 선생을 만난 것입니다. 선생은 내 시재를 알아보았고, 나는 그에게서 시를 배웠습니다. 훗날 내가 민요의 가락과 우리말의 숨결을 시 속에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김억의 영향이 컸습니다. 나도향과 같은 문단의 벗들과 교유하며 젊은 시절의 문학적 꿈을 키워갔습니다.
그대여. 사람의 인생에는 반드시 한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내게는 김억이 그러했습니다. 재능은 혼자 피는 꽃이 아닙니다. 누군가 먼저 알아봐 주고, 길을 알려주고, 때로는 등을 밀어주어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내가 처음 시를 세상에 내놓은 것은 1920년이었습니다. 「낭인의 봄」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이름을 알렸고, 이후 「먼 후일」,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등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진달래꽃」은 1922년 『개벽』에 처음 발표되었고, 1925년 시집 『진달래꽃』에 다시 실렸습니다. 그 시집은 내가 살아 있을 때 낸 유일한 시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내 시에서 ‘한’을 읽었습니다. 맞습니다. 내 시에는 이별이 있고, 그리움이 있고,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 시가 단순히 슬픔만 노래했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나는 우리 민족의 말과 가락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을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민요처럼 흘러가는 말,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노래,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질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음을 시로 옮겼습니다.
그대여. 나는 약했고, 흔들렸으며, 끝내 삶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죽은 뒤에 받는 박수는 살아 있을 때의 밥 한 끼보다 따뜻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 살아 있는 사람을 너무 늦게 사랑하지 마십시오. 살아 있을 때 그의 손을 잡아주십시오. 살아 있을 때 그의 시를 읽어주십시오. 살아 있을 때 그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 물어봐 주십시오. 나는 떠난 뒤에야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조금 쓸쓸합니다.
그러니 그대여, 혹시 지금 삶이 힘들다면 혼자 견디지 마십시오. 내가 그 말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서 시가 될 수 있지만,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합니다. 오늘 그대 곁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십시오. 그리고 아직 쓰지 않은 자신의 시를 끝까지 써 내려가십시오. 나는 서른두 해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내가 남긴 몇 줄의 노래는 백 년을 건너 그대에게 왔습니다.
그러니 삶의 길이가 너무 짧다고 낙담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남겼느냐이니까요. 평안북도 들녘의 꽃과 바람을 가슴에 품고 우리말의 가장 여린 가락을 노래했던 시인, 김소월이 그대에게 이 편지를 보냅니다.
이 편지가 그대에게 잘 전달되었겠지요. 이 편지를 덮는 순간에도 그대의 마음 한켠에 남은 작은 울림은 그대의 하루를 따뜻하게 해줄 것입니다. 저는 영혼지기 ‘자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