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사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요”
어느 시인의 시처럼 그냥 웃는 사람이 위너다. 왜 사냐고 묻지 않아도 명예 때문에 산다고 스스로에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명예가 있으면 돈이 오고 돈이 오면 외롭지 않고 외롭지 않으면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걸 부정하면 바보다. 명예를 얻기 위해 누군가는 불나방처럼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고 또 누군가는 교묘하게 거짓으로 세상을 속인다. 타인은 지옥이라는데 우리는 기꺼이 그 지옥 속으로 걸어들어가 명예를 획득한다.
명성을 얻으면 그 명성이 단단해져서 명예가 된다. 근데 인간의 마음은 이기적이고 이율배반적이다. 명예를 얻게 되면 그 명예 자체에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은 명예를 언제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발현된다. 위정자들의 위선이 그렇고 학자들의 아집이 그렇고 연예인들의 인기에 대한 집착이 그렇다. 그것뿐이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개미 똥구멍만 한 명예에 목숨 거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 ‘윙스 오브 페임’을 보면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어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66년 유럽의 어느 도시, 이곳은 국제영화제를 앞두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무명작가 브라이언 스미스가 도착한다. 스미스는 유명 배우 발렌틴의 자서전을 챙긴 후 숙소 밖으로 나간다. 임페리얼호텔 앞에는 유명 배우 발렌틴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고 스미스는 사람들 속에 끼여 발렌틴을 만나려고 했지만, 발렌틴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가버리고 만다.
영화제 개막식이 시작되고 발렌틴이 도착하자 스미스는 그를 만나기 위해 애썼지만, 도저히 만날 수 없게 되자 앞에 있던 경찰의 총을 훔쳐 발렌틴을 쏘고 만다. 발렌틴은 그 자리에서 죽고 스미스는 건물로 도망치지만, 촬영 장비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 촬영 장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발렌틴과 스미스는 같은 날 동시에 죽게 되고 두 사람은 어느 안개 낀 강을 건너 가게 된다. 어둡고 공허한 강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명성이 있는 두 사람은 지옥도 아니고 천국도 아닌 어느 섬에 도착하게 된다.
그 섬에는 죽기 전에 명성을 얻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 섬은 영원한 안식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순간, 그들은 그곳에서도 다시 사라지게 된다. 공연 도중 갑작스럽게 죽은 세계적인 록스타도 있고 아인슈타인도 있고, 유명한 예술가와 정치가, 과학자와 영웅 등 이름만으로도 인류의 기억에 남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 와 있던 에리카 프리쉬 박사 스미스에게 묻는다.
“스미스 씨는 뭘 해서 유명해지셨나요?”
“우리 시대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을 죽였죠”
발렌틴과 스미스는 같은 공간에서 쉼 없이 부딪히고 갈등한다. 살아 있을 때는 성공을 위해 달렸고, 죽은 뒤에는 기억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삶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발렌틴은 여전히 과거의 명성에 취해 있었고 스미스가 왜 자신을 죽였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자서전에 스미스의 글을 표절해 쓴 것을 알게 되어 스미스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명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발렌틴과 스미스는 지하로 내려가게 된다. 발렌틴은 영원한 명성을 꿈꾸지만, 인간의 기억은 생각보다 짧고 변덕스럽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포트라이트 속의 내 인생, 빛 너머엔 추잡함 뿐, 얼굴들, 그 많은 얼굴들, 끝없는 얼굴들, 가짜 미소, 질투로 번뜩이는 눈, 독 뭍은 키스, 꿀 발린 목소리, 아첨 섞인 가십, 죽을 것 같은 바람, 작은 거짓말, 지켜지지 않을 것 같은 약속들, 박수, 찬사, 숭배.... 난 그게 사랑인 줄 알았어, 그게 그리워”
‘윙스 오브 페임’은 섬이라는 공간 속에서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명예와 허무를 우화처럼 풀어낸다. 결국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말하지만 결국 그 잊힘이 공허함이 아니라 삶의 일부라는 걸 말하고 있다. 명성이나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삶이란 얼마나 허무한지 죽음으로 사라지는 박수 소리도 존재의 가치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이며 존재란 무엇인지 이 영화감독은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꽃이 지는 것이 꽃의 실패가 아니듯, 우리의 죽음 역시 실패가 아니다.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