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보호자는 거의 예외 없이 자책한다. 좀 더 일찍 데려올걸. 그때 수술을 했어야 했나. 그런 보호자에게 나는 같은 말을 건넨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셨다고. 그러니 자책하지 마시라고. 이 한마디가 사람을 얼마나 살리는지 알기 때문에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그 말을 나에게 건넨 기억은 잘 없다.
지난 5월 이 지면에 죽음을 생각하면 하루가 달라진다고 썼다. 오늘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아는 사람이 오늘을 가장 단단하게 산다고. 오늘을 산다는 건 대단한 걸 해낸다는 뜻이 아니었다. 지나간 일과 오지 않은 일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지금 여기에 있자는 뜻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다만 그 문장을 쓴 사람이 그대로 사는 건 아니다. 나는 미래를 사느라 오늘을 살지 못하는 때가 많다.
옳은 말이 사람을 찌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에 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혜신의 말을 빌려, 바른말이 의외로 폭력적이라고 썼다. 그때는 말이 밖으로 나가는 경우만 봤다. 안으로 향할 때는 살피지 못했다.
남에게 옳은 말을 계속하면 상대의 표정이 알려준다. 눈이 흐려지고 대답이 짧아지면 나는 입을 다문다. 나에게 하는 말에는 그 표정이 없다. 그만하라고 말려줄 사람도 대개는 없다. 신호가 없으면 한번 시작된 말은 안에서 오래 간다.
게다가 나는 나의 전과를 전부 알고 있다. 미룬 날, 흘려보낸 저녁, 시작만 하고 그만둔 일. 남을 몰아붙이려면 자료가 부족한데 나를 몰아붙일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오늘을 살자'는 아침의 결심이 저녁에는 '오늘도 못 살았다'는 판정으로 돌아온다. 판정을 내리려면 하루를 되감아야 한다. 되감기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되감는 목적이 채점일 때다.
미시간대 심리학자 이선 크로스 연구팀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힘든 기억을 떠올릴 때 속으로 '나는'이라고 부른 사람과 자기 이름을 부른 사람을 비교한 것이다. 이름을 부른 쪽이 감정을 더 잘 다스렸다. 자신을 남처럼 부르는 것만으로 거리가 생긴 셈이다. 나를 대하는 방식은 마음가짐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수피의 가르침으로 널리 알려진 말이 있다. 말을 하기 전에 세 개의 문을 통과시키라는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인가, 필요한가, 따뜻한가. 나는 이 문을 남들 앞에서만 썼다. 요즘은 나에게 말을 걸기 전에도 한 번 멈춰 세워 본다.
보통 세 번째에서 거의 다 걸린다. 남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테니까.
예전에 적은 글귀다. "오늘 하루 대단한 일을 꼭 했어야만 수고한 게 아니다. 잘 버텼다면 그것도 충분히 수고한 거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렇게 적어 놓고도 정작 나에게 건네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오늘 당신이 당신에게 건넨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나. 그 말을 곁의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했을까.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독저팅, 필북, 필레터, 필라이프 코칭 운영
부산 시청 특강 외 다수 출강
이메일 : tothemoon_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