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와 함께 두 도둑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지.
마지막 순간, 한 사람은 회개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러지 않았어.
사람들은 회개한 도둑을 칭송하지만,
나는 오히려 다른 도둑이 더 마음에 들어.
그는 마지막 순간에 가서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았어.
살기 위해 자신의 길을 버리지도 않았고,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배반하지도 않았지.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끝까지 받아들였어.
그것이 그의 개성이었고, 그의 운명이었어.
초등학교 3학년 때, 아침에 학교에 가니 담임 선생님이 앞으로 불러내셨다. “왜 어제 아이들을 그냥 보냈느냐?”며 화를 내셨다. 나는 변명했다. “선생님이 청소 끝나면 아이들을 보내라고 하지 않으셨냐?”고. 선생님은 그런 적 없다며 내 손바닥을 매로 마구 때렸다.
손바닥이 발갛게 되었다. 나는 묵묵히 맞았다. 피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엄살을 부리면 덜 맞는데. 분단장으로서 당당하게 소임을 다한 나를 부정할 수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존경하는 예쁜 담임 선생님 앞에서 떳떳한 학생이고 싶어서였을까?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다는 것. 자신의 어떤 삶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가장 아름다운 자존감일 것이다.
물론 회개는 아름답다. 자신의 지난 삶을 온몸으로 뉘우치고 새로운 삶에 눈뜨는 순간은 얼마나 눈부신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지난날을 처절하게 참회했다.
“주님,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은 당신 품에 안겨 쉴 때까지 평안하지 않나이다.”
그의 회심은 지금도 가슴을 울린다. 하지만 십자가 위 도둑의 회개가 진심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누구라도 살고 싶은 나머지 마음에도 없는 회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내 회개하지 않은 다른 도둑의 모습이 오히려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두운 삶을 끝까지 껴안은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