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존재의 가치

이태상

우리가 자연계를 구조, 구제하려면 무엇보다 제일 먼저 우리 각자 자기 자신의 집과 가정을 돌보듯 책임감을 갖고 자연을 대하는 것이 최 급선무라며 1992년에 출간된 ‘자연과 그 밖의 다른 어머니들: 일상생활에 미치는 여성의 미덕에 대한 감상’의 저자로 미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브렌다 피터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 각자 각자대로 제 영역을 주장한다. 전통 인습적으로 남자들은 숫기 수컷 냄새를 피워, 노래로 아니면 무기나 힘자랑으로 ‘이건 내 거다. 발 들여놓지 마라. 혼나고 싶지 않거든!’ 텃세를 부려왔다. 그런 반면 여자들은 집을 아름답게 가꾸고 집 주위의 나무들에 색색이 수건들을 매달아 바람에 나부끼게 함으로써 그들이 사는 공간을 소유 점유해 왔다. 

 

오늘날에도 각 대륙의 토착 원주민들이 집 가까이 제단을 쌓고 그들을 보호해 줄 신령들께 경배하듯이. 벌써 여러 해를 두고 우리 지구의 환경보호론자들은 전 세계 지구촌 전부가 우리 집이란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이 ‘집’을 떠날 수도, 벗어날 수도, 그 아무것도 이 집 밖으로 내버릴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여기 이곳에 있기를 배워야 한다. 여자들이 그들의 가정을 보살피듯 세계를 잘 건사하고 남자들이 세상을 주름잡듯 그들의 집안일에 열심과 열성을 낼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고 훌륭한 삶을 우리가 살 수 있을까!”

 

영국 종교철학자요 문화사가 크리스토퍼 헨리 도슨(1889-1970)은 1929년 그 당시 이미 중증에 걸린 서구식 기계문명의 병폐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미숙하고 거칠며 추악한 현대 유럽 서구의 생활방식에 따른 삶이란 자연환경과의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관계를 드러내는 징후로써 긴장과 헛된 수고 도로, 반란과 폭동, 곧 실패와 궁극적 자멸을 초래할 뿐이다. 기계적으로 작동 운용되는 서양의 생명 없는 물질, 공업 문명은 작업상 불필요한 인간의 노동을 제거해버리기 위해 노동자 직공을 기계의 한갓 보조도구 보충물로 전락 도태시킨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위대한 동양문화에서는 이 문화를 계승하고 그 아름다움과 혜택을 계속 창조하고 누리는 일에 모든 사람이 다 동참케 한다. 이것은 밭 갈고 씨 뿌리고 추수하는 일에서와 같이 가장 자연스럽고 전적으로 본능적인 인간의 역할이고 행위일뿐더러 이슬람교의 서기가 그의 온 심혼을 다 쏟은 서예 능서나 동양사회의 정교 절묘한 예의범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사회 전체의 복리와 이익을 추구 지향하는 공동 사회적 대동단결이다.”

 

어째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증권 중매인은 서력, 기원전 10세기경의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에 나오는 용사 또는 고대 이집트의 사제만큼 아름답지 못할까? 그 이유는 그가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수 필연적이 못 되고 우연 우발적, 거의 기생적 존재인 까닭이다. 어떤 한 문화가 그 존재의 참된 필요성과 가치를 입증할 수 있을 때 그 문화의 모든 분야와 그 분담 수행이 아름다워지리라. 

 

멕시코의 외교관으로 작가 평론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이 있는 칼로스 푸엔테스의 말대로 고립된 민족과 문화는 멸하나 다른 사람, 다른 문화와 다른 믿음,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어울릴 때 우리는 태어나고 다시 태어난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 자신에게서도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없으리라.

 

근시안적이고 소아병적인 서양의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인류사회는 물론 전 지구 생태계를 파괴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 두말할 나위 없다면 우리 단학의 “인간은 소천지이며 천지는 대인간(一身~小天地 天地~大人)이다”라는 천인합일론적 세계관 아니 우주관으로 자구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으리라. 

 

우리말에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한다’느니 ‘양반은 얼어 죽어도 짚불은 안 쬔다지만 ‘개살구도 맛들 일 탓’이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 뱃속 정신부터 차려야 하지 않을까. 어떤 나라, 어떤 인종, 어떤 계층, 어떤 직업의 사람이건 사람이면 누구나 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발견하고 인간다운 인격을 갖춰야 하겠지만 그러려면 우선 사람 모양새부터 갖춰야 하리라. 또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온갖 독선과 위선, 기만과 착취, 폭력과 무지, 맹종과 맹신, 부정과 부패, 권력만능주의, 무력만능주의, 금력만능주의에서 해방되어야 하리라. 

 

최근에 와서 서구식 ‘인권사상’이 종교처럼 세계 각처에 파급되고 있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호주와 뉴질랜드, 남북 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유색인종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 격이다. “세계의 반 이상의 사람들이 극심한 빈곤 속에 살고 있다”고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은 1949년 말했다. 오늘날에도 세계인구의 반 이상이 극심하게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고 빈부 격차는 점점 날로 더 심해지고 있다.

 

8억 이상의 우리 인간 가족이 굶어 죽는 세상에서 가난한 빈민국들은 여전히 부유한 강대국들로부터 착취당하고 있다. 먹을 것도 모자라는 제3세계에 선진 서방국가들은 엄청나게 비싼 무기, 초호화판 호텔, 고급 양주와 양담배 등을 강매하고 심지어는 이 무지하고 무력한 사람들을 상대로 여러 가지 화학무기와 살충제 및 새로 개발되는 약품과 화장품 등을 실험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각종 공해산업과 그 유독성 폐기물 쓰레기를 이들 약소국가들에게 수출, 덤핑하고 있다.  

 

서양사회에선 소위 동물애호가들이 동물들의 권리를 인간의 권리보다 더 중요시하기도 하지만 동물 내지는 식물의 권리는 제쳐 놓고 인간의 생존과 복리를 위해서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도모하는 것이 급선무이겠으나 공리공론의 이념적 정치적 법적 자유나 평등은 실질적 경제적 일상적 자유와 평등 없이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백인들은 수족관 속의 금붕어처럼 공중누각에 높이 앉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데 유색인들은 흙탕물 속 미꾸라지같이 살고 있다. 

 

이들은 ‘운명의 포로’가 된 채 ‘인과응보’의 ‘업’으로 전생에 진 빚을 이승에서 갚는다고 모든 것을 ‘팔자소관’ 운명으로 돌리고 만다. 물론 이러한 만병 통치식 신앙과 체념 때문에 수많은 인간들이 고해와 같다고 비유된 고달픈 삶을 참고 견디어 왔는지 몰라도 이들이 이처럼 숙명론적 사고방식과 정신적인 노예근성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인권다운 인권을 말할 자격조차 없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기독교나 공산주의 또는 자본주의사상으로 세뇌시킨다고 이들에게 인간다운 인격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한국인의 경우가 그 좋은 예가 되리라.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최근 100여 년 역사만 돌이켜 보더라도 한 민족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를 침해당해왔다.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 이어 1910년에 이루어진 한일합방이 그 한 예라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에 의한 우리나라 국토의 분단이 또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두 동강 난 우리 민족의 비극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미, 소 양 진영 사이에 뜨겁게 끓어 온 냉전의 열기 속에서 그 더욱 참혹한 비극인 한국전을 불러 일으켰고 1953년 휴전이 되었으나 긴장이 완화되지 않은 채 우리의 분단체제는 초강대국들의 국익을 위해 굳어져 왔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일본의 압제에 시달리다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을 맞았으나 이것은 우리의 참다운 해방이 될 수 없었다. 우리 힘으로 쟁취한 해방이 아니고 승전국인 미-소에 의존한 것이었던 만큼 이 두 새 지배세력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국가, 혹은 민족 간에 각자 제힘을 길러 자존, 자립할 때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 않았던가. 그 무엇보다도 먼저 종교, 문화, 예술에 있어 부화뇌동하는 사대주의 사상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각자대로 제 줏대와 배짱부터 키울 일이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 1230ts@gmail.com

 

작성 2026.08.15 10:33 수정 2026.08.1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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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