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학연구소장 김을성, 옛 지명 '모자랑포'를 찾아 역사를 바로잡다

이순신 장군이 사천해전 당일 자고 간 모자랑포는 사천시 노룡동 미룡 마을

김을성 사천학연구소장

 

역사는 기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록 속에 남은 지명이 오늘날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찾아낼 때 비로소 역사는 현재의 공간과 만난다. 사천문화원 사천학연구소 김을성 소장은 사천의 옛 지명과 역사적 현장을 찾아다니며 잘못 알려진 지역사를 바로잡는 향토사 연구자다. 그가 주목한 대표적인 사례가 임진왜란 당시 '모자랑포(毛自郞浦)'다.

 

1592년 음력 5월 29일 사천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 장군은 전투를 마친 뒤 모자랑포로 이동해 하룻밤을 보냈다. 그러나 400여 년이 지나면서 모자랑포가 오늘날 어디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었다.

 

김 소장은 문헌에 기록된 지명을 비롯해 옛 지도와 지형, 현지에 남아 있는 구전 지명 등을 꼼꼼히 대조하며 그 위치를 추적했다. 그가 주목한 곳은 사천시 노룡동 미룡마을 일대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의 월경지였던 곳으로 ‘모자랑개’라는 구전 지명이 전해오고 있다. 김 소장은 호구총수, 진양지 등의 문헌 기록과 현장 조사를 종합해 이곳이 이순신 함대가 머물렀던 모자랑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2025년에 이순신전략연구소(소장 이봉수)가 '지방사와 지방문화'라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여, "사천해전지는 기존의 선진리성이 아니고 사천시 축동면 구호리 옛 장암창지"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사천시와 협의하여 필요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 소장의 연구 방식은 책상 앞의 문헌 연구에만 머물지 않는다. 직접 현장을 찾아 옛 지형을 살피고, 주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지명을 확인한다. 향토사에서는 작은 지명 하나가 역사를 밝혀주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에게 역사 연구는 익숙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사료와 현장을 통해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고, 지역민에게 정확한 역사를 돌려주는 일이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최초로 동원해 승리한 사천에서 그의 연구는 더욱 의미가 크다.

 

김을성 소장은 사천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땅과 지명 속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 세상에 다시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의 발걸음이 사천의 역사 지도를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작성 2026.08.19 14:38 수정 2026.08.1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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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