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나일강 크루즈 1부 아스완

여계봉 대기자

 

이집트의 수천 년 고대문명의 흔적은 나일강 주변 도시에 낱낱이 흩어져 있다. 누비아인의 삶이 서린 아스완, 파라오의 무덤이 웅크린 룩소르를 지나는 강줄기는 카이로를 거쳐 지중해로 흘러든다. 북아프리카 빅토리아 호수에서 출발한 나일강은 6,690㎞를 흘러 알렉산드리아에서 여정을 마친다. 이집트의 사막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이 강은 이집트의 고대문명을 태동시킨 젖줄이기도 하다. 황토를 안고 흐르는 나일강의 '나일(Nile)'은 그리스어 '닐루스(Nilus)'에서 유래했는데, '탁하게 흐른다'는 뜻이다.

 

지금도 국토의 95% 이상이 사막인 이집트에서 인구의 90% 이상이 나일강 주변에 살고 있다. 나일강은 농사를 지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축복이었다. 나일강은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교역 루트였고 사후세계로 연결해 주는 통로였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들은 나일강의 동안(東岸)을 따라 서 있다. 

 

 이집트의 고대문명을 태동시킨 나일강

 

나일강 크루즈는 생각보다 오래된 여행 방식이다. 19세기 후반, 유럽인들이 이집트 고대 유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관광객을 위한 나일강 크루즈가 등장했다. 당시 유럽 지식인들에게도 이집트는 기원 이전에 존재한 더 오래된 세계였다. 고고학자와 외교관, 작가와 귀족들이 이 배를 타고 문명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호기심으로 많은 사람들은 크루즈에 몸을 싣고 나일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석양을 바라본다. 

 

나일강 크루즈는 이집트 룩소르나 아스완을 기점으로 중간 기착지인 콤옴보, 에드푸, 에스나 같은 도시를 들러 주요 유적지를 둘러보는 크루즈 여행이다. 3박 4일 혹은 4박 5일 상품을 선택할 수 있으며 2등급에서 6등급 크루즈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먹고 자며 수천 년 동안 이집트인들의 무한 신뢰를 받아온 나일강을 따라서 아스완에서 룩소르로 내려가면서 나일강 강변의 고대 유적지를 방문한다. 이들이 세운 5천 년 문명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아스완와 룩소르 사이 200km 뱃길를 운항하는 나일강 크루즈을 이용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아스완 부두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에 승선한 후 먼저 근처에 있는 필레 신전과 나일강 동쪽 강가에 있는 채석장을 둘러보기로 한다. 

 

아스완과 룩소르 구간을 운항하는 나일강 크루즈선

 

필레 신전은 아스완의 나일강 한복판에 있는 고대 이집트의 신전이다. 배를 타고 필레 신전이 있는 아길리카섬으로 들어갈 때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알록달록 화려한 원색으로 채색한 누비아인들이 사는 집들이 모여있는 섬들을 지나면 야자수와 주랑, 탑문이 세워진 필레 신전이 마치 신기루처럼 강에서 솟아오른 것처럼 보인다. 

 

 필레 신전이 있는 아길라카섬

 

예전에 필레 섬에 있었기 때문에 필레 신전으로 불려 온 이 신전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이시스 여신을 위한 신전으로, 거대한 건축 단지에 마지막 파라오와 하드리아누스에 이르기까지의 로마 황제들이 이름을 남겼고, 벽면에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 여신 이시스, 그녀의 아들 호루스 신, 하토르 여신 등이 조각되어 있으며, 특히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예술이 융합된 트라야누스 황제의 키오스크로도 유명하다. 필레 신전은 고대 이집트 신전들 가운데 기원후 6세기까지 이집트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최후의 이집트 신전이었다. 이집트 정부가 아스완 댐을 착공하면서 섬 자체가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유네스코 차원에서 신전을 분해해 아길리카섬으로 통째로 옮겼다.

 

트라야누스 황제의 키오스크

 

아스완 남쪽 2km에 있는 채석장은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 신전의 탑문과 신상 등에 사용된 화강암이 주산지이다. 아스완의 화강암은 뱃길로 옮겨져 콤옴보, 에디푸, 룩소르 등 나일강 옛 도시들의 신전을 쌓는 재료로 쓰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아스완의 채석장에서 신전을 쌓는 석재인 화강암을 캐내어 전통 돛단배 펠루카에 싣고 나일강 뱃길을 따라 아스완, 아부심벨, 콤옴보, 에디푸, 그리고 룩소르에 신전을 세웠다. 

 

아스완의 화강암은 붉은색인데 색깔이 고와서 이집트뿐만 아니라 인근 국가, 심지어 로마까지 수출됐다고 한다. 그런데 채석장 암반 곳곳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어떻게 저렇게 크고 단단한 화강석을 절단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나무쐐기와 물이었다. 화강석에 구멍을 파고 거기에 나무쐐기를 박은 다음 물을 부으면 나무가 팽창해 결국 화강암이 갈라진다. 

 

곳곳에 작은 구멍이 파여있는 채석장의 거대한 화강암 암반 

 

현재 이 채석장에는 작업하다가 돌에 균열이 생기는 바람에 완성되지 못한 오벨리스크 하나가 바닥에 놓여있다. 이집트의 결출한 여성 파라오 합세슈트가 건축한 것으로 알려진 이 오벨리스크는 길이가 41m, 무게는 1200여 톤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이다. 오벨리스크는 고대 나일 문명을 대표하는 상징인데, 고대 파라오들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고 신과 교감하기 위해 모든 신전에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채석장에서 가공된 화강암은 나일강 강가로 이동하여 펠루카에 실려 나일강 강변에 있는 신전으로 이동한다. 만약 이것이 완성되어 나일강 강변 어딘가의 신전에 세워졌다면 현존하는 이집트 최대 규모의 오벨리스크가 되었을 것이다.

 

금이 간 이집트 최대 규모의 오벨리스크

 

아스완 항구로 가는 길에 1937년 영국의 추리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가 '나일강 살인사건'을 집필한 올드 캐터랙트 호텔이 보인다. 호텔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일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이 호텔은 창업한 지 100년이 넘는 오래된 호텔로도 유명하지만, 아가사 크리스티가 '나일강 살인사건'을 집필한 곳으로 더 유명하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 빠져 살았던 젊은 시절, 언젠가 꼭 가보리라 다짐했던 염원이 이루어지는 감격적인 순간이다. 평화로운 강 위에서 진실을 숨겨두었던 '나일강의 죽음'이 인간의 욕망을 추적했던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나일강을 따라가 그 진실을 파헤쳐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버킷리스트를 이제사 실현하게 되어 감개무량하다.

 

필레 신전과 채석장을 둘러보고 아스완의 나일강 강가에 정박하고 있는 크루즈선에 오른다. 강가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은 나일강에 떠 있는 호텔이다. 객실 문을 여니 침대 위에 흰색 악어 한 마리가 몸을 세운 채 여행자를 노려보고 있다. 선원들이 객실에 비치하는 큰 수건 하나를 말아서 꾸민 데코레이션이었지만 내일 가는 악어 신전 콤옴보 관광을 위한 이집트다운 서비스다. 객실 발코니에 앉아 바깥으로 펼쳐지는 나일강과 강 위를 떠다니는 배를 보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호사를 누린다. 

 

객실의 악어 데코레이션

 

필자가 탄 크루즈는 카리브해의 크루즈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길이 100m 정도에 객실이 100여 개가 되는 큼직한 5성급 크루즈다. 1층에는 리셉션, 2층은 라운지와 객실, 3층은 레스토랑과 객실, 갑판에는 아담한 수영장과 선베드, 푹신한 소파 등이 마련된 넓은 휴게 공간과 카페가 있다. 객실은 킹사이즈 침대 2개와 2인용 탁자, 그리고 빈티지한 옷장과 욕실을 두루 갖춘 고급 호텔 수준이다. 크루즈 상품에는 기착지 투어, 펠루카 체험, 마차 투어 등이 포함되어 있고, 식사는 배 안의 레스토랑에서 제공한다. 모든 식사가 뷔페이며 음식은 중동과 서양 요리 위주로 나오는데 우리 동양인들에게도 잘 맞는 편이다.

 

아스완을 출발해서 콤옴보를 향해 가는 크루즈선

 

우리가 아는 이집트는 나일강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하라사막이 국토의 94%를 덮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에서 몇 킬로미터 이내에서만 살고 있다. 크루즈 선상에서 메마른 땅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나일강의 모습을 바라보니 마치 유유히 움직이는 에메랄드빛 뱀처럼 보인다. 

 

사막지대인 나일강의 서안

 

아스완을 출발한 크루즈는 새로운 여행지를 향해 힘차게 항해를 시작한다. 나일강 강물을 따라 흐르는 5천 년의 이집트 문명은 악어를 신으로 모셨던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대표 신전이 있는 콤옴보로 이어진다. 나일강 크루즈를 타면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무덤에서 나와 여행자에게 건네는 그 내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하자. 

 

 

 

[여계봉 대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6.08.24 11:01 수정 2026.08.2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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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