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나일강 크루즈 2부 ‘콤옴보와 에드푸’

여계봉 대기자

 

아스완을 출발한 크루즈선은 아스완 북쪽 49㎞ 지점에 있는 콤옴보에 기항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부근에 있는 콤옴보 신전으로 가기 위해 배 밖으로 나오니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부두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기원전 395년에 완공된 콤옴보 신전은 에스나 신전과 함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대표 신전으로 꼽히는데, 순수 정통 이집트 양식에 그리스·로마 건축 색채가 적지 않게 가미되어 그리스의 헬레니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꽃봉오리 모양의 열주에서 헬레니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콤옴보 신전

 

콤옴보 신전은 악어 머리 형상을 하고 있는 '소베크 신'과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 신'을 모시는 신전이다. 두 개의 신전을 결합해 하나의 신전으로 만들었는데, 지금부터 20여 년 전 비디오테이프와 CD 재생이 가능한, 두 개 기능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전자기기를 '콤보(combo)'라고 불렀는데, 매와 악어, 두 신을 같이 모시는 콤옴보 신전에서 용어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매 형상의 호루스 신과 악어 모습의 소베크 신 부조

 

보통 이집트 신전이 동서축으로 건설된 것과 달리 콤옴보 신전은 남북을 축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굵은 파피루스 꽃봉오리 기둥이 메타세콰이어길처럼 도열한 첫 번째 열주실을 지나면 호루스와 토트 신의 뜻에 따라 새로운 지배자인 프톨레마이오스 7세가 이어받았음을 나타내는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집트 점령 이후 이집트를 통치했던 그리스 출신의 파라오다.

 

콤옴보 신전의 맨 뒷부분에 가면 당시에 사용한 의술 도구와 호루스 신이 의학 담당이라는 내용, 그리고 의학자의 자세에 관한 글귀가 음각으로 그려져 있다. 이 신전을 지을 때보다 약간 앞선 시대인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영향을 받은 듯하며, 동시에 고대 이집트인들의 의학 수준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외과 수술에 사용된 도구들을 그린 부조물

 

콤옴보에는 악어로 가득한 섬이 있었다고 한다. 과거 이집트 사람들은 두려운 악어의 존재를 신으로 숭배함으로써,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신전 곳곳에는 파라오가 소베크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부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물을 숭배하던 이집트인들은 악어를 포함한 동물들을 미이라로 만들었는데 신전 근처에는 300여 구가 넘는 악어 미라를 보관하고 있는 악어 박물관이 있다.

 

악어 박물관의 악어 미라

 

콤옴보 신전을 돌아본 뒤 크루즈로 돌아와 오랜만에 깊은 수면에 빠져든다. 여행자는 잠들어도 배는 나일강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간다. 다음 날 새벽에 눈을 뜨니 크루즈는 벌써 에드푸에 기항해 있다. 배에서 내리니 강변에는 마차 수십 대가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 20대 초반의 젊은 마부가 "람보, 람보"를 외치며 채찍질을 한다. 병약한 람보가 끄는 마차는 에드푸 시내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에드푸 신전으로 달린다. 

 

에드푸의 새벽을 여는 마차

 

에드푸 신전은 1860년 마리에트가 신전 주변의 모래를 걷어내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신전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인 기원전 237년에 짓기 시작해 100년 걸려 완공된다. 신전의 크기는 이집트에 현존하는 신전 중 최대 규모인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에 이어 두 번째이고, 모래 속에서 지난 2천 년 이상을 버텨온 덕분으로 신전 전면 윗부분이 약간 손상을 입었을 뿐 원래의 모습 거의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있는 고대 유물′로 알려져 있다.

 

에드푸 신전의 거대한 탑문

 

탑문 양쪽으로 큰 부조가 있는데 파라오가 적을 제압한 뒤 호루스 앞에서 계시의 몽둥이로 적을 내리치는 장면이다. 그리고 탑문 입구에는 양쪽에 매의 형상으로 화신(化神)한 호루스가 당당하게 서 있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 호루스는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Osiris)와 그의 아내이자 최고의 여성 신인 이시스(Isis)의 아들이며, '사랑의 여신' 하토르(Hathor)의 남편이다. 어머니 이시스가 동생 세트에게 살해당한 아버지 오시리스를 부활시켜 주문의 힘으로 잉태해 태어났는데, 훗날 성인이 된 호루스가 세트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하게 된다. 호루스의 상징으로 '우제트(Udjet)'라 불리는 눈 모양은 '안전'을 의미하는 부적의 뜻으로 사용된다. 현재 이집트 항공기의 수직 꼬리에도 우제트가 그려져 있다.

 

호루스의 상징인 눈 모양의 우제트(Udjet) 목걸이 

 

신전의 구성과 축조양식은 건축 시기가 거의 같기 때문인지 전날 본 콤옴보 신전과 비슷하다. 첫 번째 홀과 두 번째 홀은 열주실로 우람한 돌기둥들이 가득한데 모든 기둥의 벽면에는 상형문자나 그림이 빼곡히 차 있다. 신전은 고대 이집트 유적 가운데 가장 보존 상태가 좋지만 2,3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겪은 평지풍파를 대변하듯 여기저기 훼손된 곳도 많다. 양각의 벽화는 일부러 긁어낸 듯 여기저기 파여있고, 신전의 내부 천장은 시꺼멓게 그을려있다. 고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서 살던 콥트 기독교인들이 신전을 교회와 숙소로 사용하면서 유물들을 많이 훼손했다고 한다.

 

콥트 교인들에 의해 훼손된 신전의 천장

 

제일 안쪽에 있는 지성소는 파라오와 제사장만 출입하던 신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안쪽 벽면에 신상안치소가 있고 그 앞에는 '태양의 나룻배'가 있다. 이 나룻배는 신상이 나들이할 때 사용한 유물이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신전의 지성소에 안치된 '태양의 나룻배'

 

크루즈로 돌아와 선실 문을 여니 침대 위에 흰색 코브라 한 마리가 몸을 세운 채 노려보고 있다. 선원들이 호텔 방에 있는 큰 타올 하나를 말아서 꾸민 데코레이션이지만 상·ᆞ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동물이 독수리와 코브라인 것으로 미루어 의미 있는 이벤트에 고마움을 느낀다. 크루즈는 나일강 크루즈의 종착지이자 고대 이집트 왕국의 중심지 룩소르를 향해 서서히 나아간다.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코브라 데코레이션

 

크루즈선은 룩소르 근처의 에스나 수문에서 한동안 머무는데 조그마한 운하길을 크루즈가 통과하는 것도 나일강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묘미다. 그동안 보트 상인들이 배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야구선수처럼 비닐에 물건을 담아 던져주면 여행자들은 물건을 받은 후 비닐에 돈을 넣어 다시 던지는 시스템이다. 수문이 열리고 배가 들어간 후 수문 안에서 물의 높낮이를 조정한 후 룩소르 가는 뱃길로 빠져나온다. 

 

나일강의 운하 에스나 수문

 

운항하는 동안 때에 따라 변하는 이집트 시골 강변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흔히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광경은 한없이 평화롭다. 강변에 딸린 조그마한 밭에서는 갖가지 과일을 키우고 아낙들은 빨래로 바쁘다. 조그만 조각배들은 그물을 던지며 물고기를 낚는다. 신이 내린 이 장대한 물길은 범람을 거듭해 사막을 옥토로 바꾸고 온 이집트인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곡물을 키워내었고, 이 풍요로움은 찬란한 이집트 문명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찬란한 이집트 문명을 탄생시킨 나일강

 

크루즈선에서 바라보니 여행객을 태운 펠루카가 나일강 서안 왕가의 계곡에서 동안인 룩소르로 건너가고 있다. 나일강에는 크루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대 지중해에서 돛이나 노로만 움직였던 무동력 돛단배 '펠루카'도 있다. 전통 복장을 한 뱃사공이 맨발로 고물과 이물을 오가며 밧줄과 돛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이 수천 년 세월을 뛰어넘는다.

 

나일강에 떠 있는 펠루카

 

‘나일강 물을 먹은 사람은 반드시 나일강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말이 있듯이 나일강은 이집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실 창밖으로 나일강 강물 따라 흐르는 5천 년의 이집트 문명은 마지막 기항지 룩소르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여계봉 대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6.08.28 10:56 수정 2026.08.28 22:07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여계봉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