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으로 떠나고 심장으로 돌아오다
짧다. 강렬하다. 그래서 따뜻하다. 가장 독한 언어를 찾아 마라도에서 임진강까지 시를 걸었다. 문장과 기행 사이의 행간을 헤엄치며 건져 올린 상처와 기쁨을 전승선 시인은 이 시집에 오롯이 녹여 놓았다. 길 위에서 길을 찾았다. 그래서 길이 언어가 되었다. 길 위로 한 생애를 끌고 와 길 위에서 한 생애를 전언했다. 사진으로 말하고 언어로 쓴 진솔한 문장은 삶의 민낯을 생생하게 표현해 냈다. 풍경 언저리에 있는 오래된 상처들에게 손을 내밀고 시의 언어로 다시 치유하며 한발 한발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갔다. 마라도, 지리산, 동강. 청산도, 진주남강, 양양낙산사, 죽변항, 다도해, 경주남산, 임진강을 여행하며 고립과 결핍을 넘어 사색과 성찰로 찬찬히 세상을 바라본다. 이 책은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는 시화상간(詩畵相看)처럼 포토포엠의 스토리텔링 구조로 되어 있다. 세상의 두려움을 극복한 시인의 언어 너머로 연민과 인연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공감을 독자와 나눈다.
▶ 출판사 서평
인문기행을 통해 뻔하고 상투적인 인생을 찬미하다
전승선의 새로운 시집 ‘시를 걷다’는 인문기행을 통해 길어 올린 기행 시다. 낯선 세계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서 만난 뻔하고 상투적인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며 소통한다. 마라도에서 임진강까지 열 곳을 기행하며 기록한 간명하고 정직한 시어의 행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물처럼 흐르고 있다. 낯선 것들이 친숙함이 되기까지 시인의 눈과 귀와 마음을 통해 상처를 어루만져 주며 공감을 이끌어 낸다. 마라도의 겨자씨 같은 아이들, 지리산 산신령 같은 할머니, 다도해의 섬 처녀, 죽변항의 외국인노동자, 청산도의 어미 소, 낙산사의 새로워지는 봄, 동강의 뱃사공, 진주남강의 맹렬한 적막, 경주남산의 아름다운 약속, 임진강의 금단의 땅을 넘는 재두루미 등 생생한 삶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포토포엠의 스토리텔링 구조를 담고 있는 ‘시를 걷다’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시적 긴장감 속에서 진정한 시인의 노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바다가 고독하니 개도 고독했다.
저 개는 정의롭지 못한 자들의 세상을 뒤로 하고
하필 마라도에서 고독한 삶의 제왕이 되었을까.
뛰어도 뛰어도 겨우 한 바퀴 뿐인 섬에서
바다는 고독했고 개들은 더 고독했다.
허나 견공이여, 나는 네 고독이 눈부시게 부럽구나.
-44쪽
더 이상 너는 혼자가 아니다
동강과 서강이 만나 서로를 보듬으며
남한강의 처음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원죄를 얻었다.
이 땅에 마지막 남은 자연을 업은 영월에 오면
그래서 마음이 먼저 깨끗해진다.
빈 맘으로 오면 더욱 빈 맘에 중독되고 말아
저 푸른 강물에 영혼을 빨아 널고 싶어진다.
처음의 내가 되고 싶어진다.
-71쪽
지리산에 가면 도인인척 함부로 말하지 마라.
산의 깊숙한 내륙까지 발길을 찍으며 깊은
골짝마다 손금으로 읽어 내는 할머니가 사신다.
할머니는 가문비나무처럼 산맥을 머리에 이고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마음의 축지로 달려 산야초를 캔다.
그 산야초로 자식을 키워내고 평생을 산에 기대 살아 오셨다.
그 강인한 생명의 힘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할머니를 품어 안고 스스로 사위어 간다.
사위어 가는 것이야말로 강인한 아름다움이다.
산수유 꽃처럼 피고 지며 살아가는
원좌리 마을의 할머니는 그래서 지리산 산신령이다.
-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