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읏인류] 인간 ‘2세’

전승선

인간은 태어났다고 해서 곧바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몸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세상과의 관계를 맺으며 비로소 하나의 개체로 성장해 간다. 인간은 태어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만들어 가는 존재다. 두 살 무렵의 아이를 바라보면 세상을 알아가는 인간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아이는 걷기 시작하고 말을 배우며,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만지고 입에 넣고 바라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나무도 처음이고, 바람도 처음이며, 사람의 얼굴도 처음이다. 아이에게 세상은 이미 알고 있는 곳이 아니라 알아가야 할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는 ‘나’라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라는 발견에서부터 위대한 인간의 출발이 시작된다. 엄마와 내가 다르고, 아빠와 내가 다르며,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간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수많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인간의 자아는 어쩌면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인간이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부터 인간의 어려운 공부가 시작된다. ‘나’와 함께 살아야 할 ‘너’를 발견해야 하고 비로소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갈 방향을 배우게 된다. 무질서에서 질서 속으로 들어온 아이의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의 문을 이제 막 연 것이다. 

 

원점에서 가능성이 태어나고, 탄생을 통해 세상에 나왔으며, 이제 인간은 자신과 세상의 관계 속에서 작고 미세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스스로를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그 작은 몸속에 숨어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릴 날들을 기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시기다. 우렁찬 울음소리 하나, 햇살 같은 웃음소리 하나, 입안에 가득 퍼지는 음식의 맛 하나 경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 막 땅을 뚫고 나온 새싹처럼 별을 보는 눈은 별이 될 것이고 꽃을 보는 눈은 꽃이 될 것이며 음악을 듣는 귀는 음악이 될 것이다.

 

아이가 세상을 알아가는 만큼 세상도 아이를 만들어 간다. 아이가 처음 듣는 말 한마디, 처음 마주하는 표정 하나, 처음 잡아보는 손 하나가 마음속에 오래 남아 한 사람의 바탕이 된다. 사랑받은 기억은 세상을 믿는 힘이 되고, 따뜻한 눈빛은 타인을 바라보는 마음이 되며, 누군가의 기다림은 스스로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씨앗이 된다.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키가 자라게 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의식이 세상과 만나는 길을 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아이는 곧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는 경험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안 돼’라는 말을 처음 배우고, 기다림을 배우며, 나누는 것을 배운다. 이 작은 좌절들이 훗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첫 번째 학교가 된다. 내가 원하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나의 마음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인간은 비로소 자기 안에 작은 세계 하나를 만들기 시작한다. 

 

“작은 손 하나가 세상을 붙잡기 시작할 때, 우주는 또 하나의 미래를 준비한다.”

 

 

[전승선]

시인

자연과인문출판사 대표

이메일 : poet1961@hanmail.net

 

작성 2026.08.31 11:46 수정 2026.08.3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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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