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나일강 크루즈 3부 룩소르 왕가의 계곡

여계봉 대기자

 

왕 64명의 무덤이 있는 곳

세계 5대 도시로 꼽히던 곳

1,600년간 이집트를 이끈 곳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이 있는 곳

 

아스완에서 출발하여 나일강 200km 뱃길을 달려온 나일강 크루즈선은 나일강 크루즈의 종착지 룩소르에 여행자를 내려놓는다. 인구 45만의 이집트 4번째 도시 룩소르는 2 천 년 동안 이집트 역사의 중심지이자 도시 전체가 거대한 야외박물관이다. 테베로 불려 온 신왕조 시대 500년 도읍지로 우리나라 경주와 비유되는 이 도시를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백 개의 문이 있는 호화찬란한 고도'라고 칭송하였다. 룩소르 한가운데를 흐르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신전들이 있는 '산 자의 도시'(아크로폴리스), 서쪽은 왕들과 귀족의 무덤이 모여있는 '죽은 자의 도시'(네크로폴리스)다. 

 

크루즈선에서 내려 서안에 있는 '죽은 자들의 도시'로 들어서면 멀리서부터 거대한 석상 2개가 보이는데 바로 멤논의 거상이다. 17m 높이의 석상 중 하나는 거대한 바위를 통째로 조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개의 바위를 쌓아가며 만든 것이다. 이 조형물은 아멘호텝 3세의 석상인데 이 지역을 여행하던 그리스인들이 에디오피아 왕 멤논과 닮았다 하여 엉뚱하게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석상 뒤로 아멘호텝 3세의 장제전이 있었으나 나일강 범람이 잦은 평지에 세워져 모두 파괴되는 바람에 지금은 거대한 석상만이 남아있다.

 

 아멘호텝 3세 장제전의 제1 탑문인 '멤논의 거상'

 

멤논의 거상 다음으로 등장하는 합세수트의 장제전은 3,400년 전 석회암 절벽 아래 배산임수 지형에 24m 높이의 3단으로 지은 건물이다. 투트모스 1세의 장녀인 합세수트 여왕은 원래 왕비였으나, 첩의 아들 투트무스 3세를 섭정하다가 자신이 스스로 왕에 오른 여성 파라오다. 자신이 건축한 독창적이고 웅장한 신전 외벽에는 파라오의 정당성을 부각하기 위해 암소로 묘사된 여신 하토르의 젖을 받아마시는 합세수트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이집트의 영토를 크게 확장 시킨 이 여장부는 남성 파라오와 같이 턱밑에 뿌리 모양의 수염을 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신전 벽에 새겨져 있는 합세수트 얼굴은 거의 훼손되어 있는데 이는 합세수트에 의해 22년간 유폐되었던 투트무스 3세가 왕이 된 후 계모에게 복수하는 차원에서 저지른 일이라고 한다.

 

장례식과 의식을 진행했던 3단의 합세수트 장제전

 

이 건축물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있다. 1997년 이슬람 원리주의자에 의한 테러 사건으로 이곳으로 여행 온 일본인과 독일인 관광객 수십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 사건 이후 이집트의 모든 관광지에는 무장경찰이 배치되고 입장객들은 X레이 검색기를 통과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왕가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

 

'현세는 짧고 내세는 길다'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가 '왕가의 계곡'이다. 주차장에서 바위산 계곡으로 코끼리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한쪽으로는 나일강이 흐르고 다른 한쪽으로는 황량한 산들이 이어지는 황갈색 석회암 절벽 아래 무덤들이 구석구석 들어서 있다. 산꼭대기가 마치 피라미드를 연상하게 하는 엘쿠른산 암벽 아래 인적이 드문 계곡 바위틈이나 벼랑에는 이집트 신왕조 시대인 3,500년 전부터 500년 동안 조성된 800여 개의 왕과 귀족들의 암굴 무덤이 모여있는 왕가의 계곡이 있다. 

 

 왕가의 계곡 모형도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영생을 얻으려고 죽은 뒤에 신으로 부활해서 자신이 머물 궁전을 건설했다. 파라오의 무덤은 파라오의 즉위와 동시에 시작하는데, 깊은 계곡에 있는 300m 두께의 암벽을 80m 정도로 뚫고 들어가 제일 안쪽에 관을 만들고 방을 만든다. 그리고 관이 있는 방에서부터 무덤 벽화를 새기는 작업을 시작하여 입구 쪽으로 나오는데, 파라오가 죽기 전까지 작업이 이어지기 때문에 재위 기간이 길수록 무덤이 더 볼 것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파라오들은 숱한 도굴에 시달려야 했다. 수많은 돈을 퍼부은 소위 잘 나가던 파라오의 무덤은 도굴꾼에 의해 매장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참혹하게 털려 싼값에 팔려 나갔다. 그들이 쏟아부은 돈의 수천만분의 1도 안 되는 싸구려 값에 말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람세르 9세가 모든 무덤을 전수조사한 내용이 기록된 에봇 파피루스를 통해 당시 도굴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정작 람세르 9세 자신의 무덤도 도굴당하고 만다.

 

람세스 9세의 무덤 석실

 

무덤에는 발견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지금도 계속 발굴 작업 중이다. 황금마스크의 주인공 투탕카멘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 규모가 크고 보존 상태가 좋은 람세스 6세의 무덤에 조그마하게 붙어 있어 입구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9살에 즉위하고 18세에 사망해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투탕카멘의 무덤은 일찍 도굴된 람세스 6세에 비해 운 좋게도 3,300여 년의 긴 세월을 버티어 온 것이다. 

 

왼쪽은 람세스 6세, 오른쪽 아래는 투탕카멘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다.

 

1922년 11월 26일, 영국인 하워드 카터가 봉인을 뜯고 처음으로 투탕카멘의 무덤에 들어가 좁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좁아터진 복도와 현실(玄室)에는 조각이 아닌 그림 벽화만 그려져 있고 파라오의 무덤치고는 너무 규모가 작고 초라해서 실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으로 더 들어가자 몇 겹으로 쌓인 관과 미라가 있는 묘실, 대기실과 보물 창고, 곁방에는 3,500여 점의 보물들로 가득했다. 현재 무덤에는 투탕카멘의 미라만 남아있고 황금마스크와 황금 의자, 석관 등 주요 유물들은 새로 지어서 작년에 개관한 카이로 이집트 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투탕카멘의 미라

 

그가 쟁쟁한 파라오들을 제치고 가장 유명한 인물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파라오 무덤 가운데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채 발굴된 무덤 속의 유물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잊힌 '비운의 왕' 투탕카멘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이집트의 찬란한 문명을 대표하는 파라오의 대명사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투탕카멘 황금마스크(이집트 관광청 홈페이지)

 

왕비의 계곡은 제19~20왕조 사이의 왕비와 왕자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현재 일부만이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단연 람세스 2세의 비(妃)인 '네페르타리의 무덤'이다. 물론 아부심벨에 있는 네페르타리 신전 역시 여성스러운 섬세함과 정교함이 미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무덤 또한 세계 최대의 고대 지하 갤러리라는 명성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이 무덤은 일반인에게 자주 공개하지 않는데 내부 보존을 위해 관람 시간도 10분으로 제한하고 있고 입장료도 180유로로 이집트 관광 유적지 중에서 가장 비싸다. 

 

 네페르타리가 하토르와 네프리스 여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모습

 

무덤 내부는 127평의 규모로 왕비의 계곡에서 가장 크다. 하토르 여신이 생명의 상징인 앙크를 입에 넣어주는 모습, 오시리스신이 손을 벌려 네페르타리를 경배하는 모습, 신과 운명을 걸고 내기 체스를 두고 있는 네페르타리 등이 벽화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벽 속에서 네페르타리와 신들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섬세하고 색감이 또렷해서 수천 년 녹아든 전율이 쉽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무덤 내부는 당장 벽에서 네페르타리와 신들이 걸어서 나올 것만 같은 생생함으로 가득하다. 이집트 최고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부인을 얼마나 사랑했던가를 부인의 무덤 속에서 느낄 수 있다. 

 

 하토르 여신이 생명의 상징인 앙크를 네페르티티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

 

람세스 2세의 유적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그의 비 네페르타리가 함께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녀는 이집트 최고의 파라오 마음을 이토록 붙들어 맬 수 있었을까? 이집트 3대 미녀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아케나톤의 왕비 네페르티티, 그리고 람세스 2세의 비 네페르타리. 그녀의 무덤을 보고 나면 '네페르타리 무덤을 도굴했더라도 람세스 2세의 사랑만은 도굴하지 못했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은 이가 없을 것 같다. 

 

한 마리의 황소(호루스신)와 일곱 마리의 젖소(하토르 여신) 

 

관람 시간이 경과 되었다고 무덤에서 나가라는 관리인 등쌀에도 5분을 악착같이 버티며 그녀와의 작별을 늦추어본다. 죽은 자의 무덤에서 나오니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황량한 사막이다. 태양이 한낮의 위용을 떨치기 전에 서둘러 '산 자들의 땅'(아크로폴리스)으로 가는 펠루카를 타기 위해 나일강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여계봉 대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6.09.02 10:05 수정 2026.09.0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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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