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플라톤 개념의 오용과 디카시 이론의 철학적 비정합성

신기용

이상옥은 『디카시와 철학』에서 디카시 이론의 철학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플라톤 철학, 특히 이데아 개념을 반복적으로 호출한다. 그는 플라톤을 “감각의 눈이 아니라, 오직 이성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세계”(15쪽)를 사유한 철학자로 규정한다. 변하는 감각 세계와 변하지 않는 이데아 세계를 구분함으로써 “진리의 기준을 감각이 아니라 이성에 두었다”(15쪽)고 명시한다. 이러한 서술은 플라톤 철학의 핵심 전제를 정확히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정확한 요약이 디카시 이론의 전개 과정에서 유지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플라톤에게서 감각 세계는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방에 불과하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있는 것은 “이데아(실재)의 그림자일 뿐”(16쪽)이다. 더 나아가 플라톤은 예술을 이데아의 “이중 모방”(17쪽),으로 간주함으로써 이미지가 진리 인식의 통로가 아닌 오히려 인식을 혼란시키는 요인임을 분명히 한다. 참된 앎은 감각을 넘어서는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감각적 이미지는 극복되어야 할 단계에 머문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상옥의 디카시 이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플라톤 철학의 전제를 이탈한다. 이상옥은 디카시의 핵심 개념인 ‘날시’를 “디카시의 이데아”(17쪽)라고 직접 규정한다. “날시는 개별 디카시 작품의 뒤편에 놓인 원형”(17쪽)이라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는 플라톤 개념의 외형을 유지하는 듯 보인다. 이상옥은 “우리가 감각하는 꽃 한 송이나, 바람 부는 강가, 혹은 낯선 사람의 표정 속에도 날시는 깃든다”(17쪽)고 말함으로써, 이데아를 감각 세계 내부에 현존하는 것으로 이동시킨다.

 

이 진술은 단순한 해석상의 차이가 아니다. 플라톤 이데아 개념의 존재론적 붕괴를 의미한다. 플라톤에게 이데아는 감각 세계와 존재론적으로 단절된 초월적 실재이다. 감각 속에 ‘깃드는’ 것이 아니다. 그러함에도 이상옥은 날시를 “변하는 이미지와 언어 뒤에 숨은 변하지 않는 본질”(17쪽)이라고 규정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감각적 대상 속에서 포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이데아를 초월적 실재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감각적 현상으로 환원하는 자기모순적 개념 운용이다. 여기서 플라톤의 이데아는 더 이상 철학적 개념이 아니다. 미학적 효과를 설명하기 위한 은유적 명칭으로 전락한다.

 

사진 이미지에 대한 논의에서 이러한 개념 오용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상옥은 “플라톤적 디카시는 그 날시가 이 세계에 흔적으로 남긴 하나의 복합 기호 체계”(18쪽)이고, 나아가 “사진 기호는 바로 이 감각의 자리에서 시적 이데아를 붙잡아 두는 첫 번째 예술 행위”(19쪽)라고 주장한다. 이는 감각적 이미지가 이데아 인식의 직접적 매개일 수 없다고 본 플라톤의 인식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진술이다. 플라톤 철학 어디에서도 감각 이미지가 이데아를 ‘붙잡아 두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승인된 적은 없다. 그러함에도 이상옥은 이러한 철학적 논증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이데아 개념을 사진 이미지의 의미 생성 효과를 설명하는 용어로 전용한다.

 

이상옥은 디카시 창작 과정을 “시적 이데아에서 감각 세계로, 감각 세계에서 예술 모방으로 이어지는 길”(20쪽)로 설명한다. “날시는 시적 이데아로서 출발점이고, 사진은 그 이데아가 그림자처럼 감각 속에 드러난 자리이며, 언술은 그 이데아를 다시금 형상화한 예술적 행위”(20쪽)라고 말한다. 이 설명은 표면적으로는 플라톤의 모방 이론을 계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데아를 감각과 언어를 통해 단계적으로 ‘접근 가능한 것’으로 재구성한다. 이로써 이데아는 더 이상 이성적 사유의 대상이 아니다. 미적 경험의 계기로 변형한다.

 

이상옥은 “시적 이데아는 결코 사진과 문자 속에서 완전히 드러날 수 없다”(22쪽)고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플라톤적 디카시는 언제나 시적 이데아를 직접적으로 보여 주지 못한 채, 그것을 우회하고 환유하는 방식으로 다가간다”(22쪽)고 말한다. 여기서 이데아는 인식의 목표가 아닌 끝없이 유예하는 미학적 지향점으로 설정한다. 이 순간 플라톤 이데아의 철학적 기능은 사실상 소멸한다. 직접 인식될 수 없는 존재를 감각 이미지와 언어의 환유 구조 속에서만 다룬다면, 그것은 더 이상 플라톤적 의미의 이데아가 아니다.

 

이상옥이 반론 가능한 사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는 플라톤 개념의 ‘은유적 재해석’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 철학적 개념은 적확해야 한다. 이를 은유로 사용할 경우, 그 개념이 성립하는 존재론적·인식론적 조건에 대한 해명이 선행해야 한다. 이상옥의 텍스트에는 이러한 철학적 전환을 정당화하는 논증이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플라톤 철학 내부에도 감각과 이데아의 관계를 복잡하게 사유하는 지점이 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한 논의들 역시 감각 이미지를 이데아 인식의 직접적 매개로 승인하지는 않는다. 셋째, 문학 이론이 철학적 엄밀성과 동일한 기준을 요구받을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플라톤이라는 철학적 권위를 호출하는 순간, 그 개념 사용에 대한 철학적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결국, 디카시 이론의 문제는 플라톤 철학과 다르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플라톤 개념을 사용하면서도, 그 개념이 성립하는 철학적 조건을 해명하지 않음으로써 이론 내부의 정합성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데아를 초월적 실재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감각 속에서 포착 가능한 의미로 전환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철학적 개념이 아니다. 개념의 이름만 남은 수사적 장치에 불과하다. 플라톤을 호출하는 한, 그 철학적 전제에 대한 책임 있는 해명은 선택이 아니다. 필수이다.

 

지금까지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 디카시 담론에서 감각적 원형으로 오독되고 있음을 밝혔다. 플라톤에게 이데아는 감각적 형상의 근거가 아니라 감각을 비판하는 초월적 구조이다. 디카시 담론은 이 철학적 긴장을 제거한 채 개념을 미학적 장식으로 소비한다. 그 결과 플라톤은 이론의 근거가 아닌 명명 효과로만 기능한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6.09.02 10:44 수정 2026.09.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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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