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인간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고석근

완성된 그림 앞에 앉아 있자니, 묘한 느낌이 밀려왔다. 그것은 신상(神像) 같기도 하고, 성인의 가면 같기도 했다. 반은 남자이고 반은 여자였다. 늙지도 젊지도 않았으며, 강인한 의지를 지녔으면서도 꿈을 꾸는 얼굴이었다. 굳게 침묵하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는 숨은 생명이 은밀히 숨 쉬고 있었다.

 

그 얼굴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듯했다. 나에게 어떤 요구를 하고 있었고, 이미 오래전부터 내 삶 속에 존재해 온 얼굴 같았다. 어쩌면 그것은 바로 나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데미안이었는지도.

 

중학교 3학년 때, 내 방이 생겼다. 나는 색 도화지로 시화를 만들어 사방 벽에 붙여 놓았다. 동네 친구들이 놀러 와서 나를 놀렸다. 

 

“야, 무슨 계집애처럼….” 

 

나는 그들이 돌아간 후 시화들을 다 떼버렸다. 

 

그 후 나는 친구들에게 혹여라도 여자애처럼 보일까 봐 전전긍긍했다. 일부러 ‘남자답게’ 보이려 애썼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태권도를 배웠다. 걸을 때도 일부러 불량스럽게 걸었다. 말할 때는 배에 힘을 주어 무거운 저음으로 말했다.

 

인문학을 강의하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나의 ‘여성성’을 회복했다. 수강생들이 거의 여성들이라, 나의 여성성이 오히려 환대를 받았다.  

 

융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인간은 양성적(兩性的)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神)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경탄했다. 내 안의 양성성과 정체성을 비로소 온전히 긍정하게 된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더없이 편했다. 그들은 양성적이었다. 남자들은 섬세해서 좋았고, 여자들은 씩씩해서 좋았다. 

 

싱클레어가 그린 그림, 거기에는 그의 ‘이상상(理想像)’이 있다. ‘신상(神像) 같기도 하고, 성인의 가면 같기도 했다. 반은 남자이고 반은 여자였다. (…) 그 얼굴은 바로 나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데미안이었는지도.’ 

 

최근 들어 ‘꽃미남’이 이상적인 남성상이 되었다. 내가 중학교 때 꽃미남을 알았더라면, 나는 더 일찍 나의 정체성을 깨달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6.09.03 11:16 수정 2026.09.03 11:16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