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드림의 싫존주의] 58년 개띠 엄마에게 받고 싶은 가상편지

강드림

세상 무엇 하나 모자랄 것 없이 귀하디귀하게 큰 우리 아들이 왜 장가를 못갈까 혹은 안갈까를 엄마는 고민했어. 그리고 알아버렸지. 우리 아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엄마와 아빠에게 있었다고.

 

엄마 아빠 세대는 대부분 가난했어. 말 그대로 먹고사는 것 자체를 고민해야 할 만큼 가난했어. 일단 살아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어떻게사는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할 수 없었어.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으니까. 그리고 중요한 건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결혼을 했어. 일단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중요했듯이 결혼도 생존을 위해선 그냥 해야만 하는 것이었어. 그 당시의 시대는 감히 여자 주제에 결혼도 하지 않고 그 험난한 사회를 살아낸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거든. 엄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랬어. 결혼은 해야만 하는 것이었어.

 

그렇게 결혼을 수행해내고 가정을 꾸린 우리는 정말 열심히 살았어. 열심히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을 모아 집을 샀고, 또 우리 아들이 나보다 잘살기를 바라며 열심히 학원비를 만들었고. 그러면 되는 줄 알았어. 그게 최선이었어. 때마침 경제는 늘 호황이었고, 어렵게 구입한 아파트 가격은 해마다 올랐고, 속셈학원 영어학원 좋다는 건 죄다 배운 우리 아들은 원하는 대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고.

 

근데 미처 한 가지를 잊고 있었어. 우리 아들에게 우리 가족이 행복하고 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더라고. 평일 아빠의 시간은 대부분 야근이었고, 주말 아빠의 시간은 뿌리치기 힘든 경조사나 직장상사의 호출이거나 외도의 시간이었지. 아들이 한창 성장하는 동안 아빠는 늘 비켜나 있었지. 이따금 집에 버럭하는 큰소리로써, 혹은 외도를 의심하는 엄마의 추궁 속에 등장하는 악역으로서 아빠는 존재했을 거야. 따지고 보면 아빠도 불쌍한 사람이지. 믿음직한 부하직원, 성실한 가장, 매력적인 남자 그 무엇도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인간이길 요구받았을 테니까.

 

아들이 결혼을 않는 건 우리 부부가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야. 미안해 아들. 그냥 열심히 돈 벌어서 학원 보내고, 대학 보내고, 취업시키면 다 되는 줄 알았어. 우리 시대엔 행복이란 단어가 없었어. 오로지 인내와 희망이란 단어만 있었거든.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아들에게 인내와 희망을 얘기하지 않을 생각이야. 참지 말고 지금 현재를 살길 바래. 생각해보면 우리 아들은 어릴 적 노래를 정말 잘했었지. 근데 엄마는 그걸 극구 말렸어. 미안해 아들. 엄마 세대에 음악 같은 건 정말 돈이 많거나 정말 인생을 놔버린 사람에게나 허용되는 일이었어. 하지만 이제야 알았어. 아들 손 잡고 대학입시설명회가 아니라 김광석콘서트에 갔더라면 우리 삶이 조금은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를 말이야.

 

사랑하는 아들!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육아는 이거야.

결혼 안 해도 돼. 잘 살지 않아도 돼.

그저 행복하기만 해.





 

[강드림]

다르게살기운동본부 본부장

대한돌싱권익위원회 위원장

비운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5.20 11:25 수정 2020.05.20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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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