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선물은 자신에게 주는 것

이태상

 

2020823일자 뉴욕타임스 일요판 스타일스(Styles) 섹션 '사회적인 문답 칼럼 (Social Q's : PHILIP GALANES)<단순히 '고마워'면 족하리>(A Simple 'Thank You' Would Suffice)이란 제하(題下)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매년 나는 장성(長成)한 딸에게 딸 생일과 크리스마스 때면 수표를 보냈다. 딸이 선물보다 돈으로 달라고 해서였다. 그러나 딸은 단 한 번도 수표를 잘 받았다는 말이 없다. 이렇기가 벌써 여러 해째이다. 딸이 돈을 받은 사실을 나는 내 은행 계좌에서 내가 끊은 수표 금액이 빠져나간 것을 보고서야 확인하게 된다. 나는 몇 년 전에 딸에게 수표 받으면 받았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라고 했더니 그 후로 얼마 동안은 그러더니 그쳤다. 내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데도 수표를 보내는 것은 나의 희생인데. 딸의 묵묵부답 침묵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한다. 딸이 수표를 잘 받았다는 감사의 말 한마디 할 성의조차 없다면 더 이상 수표를 보내지 말아야 할까요? 아니면 수표 대신 카드 한 장 보내고 말까요? 딸의 감정을 건드리고 싶지 않지만, 내가 이보다는 나은 딸로 키웠는데요."

 

(응답자 주: 여러 해를 두고 매주 적어도 하나의 변조(變調)된 이같은 내용의 질문을 받아왔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의 요점에 몇 차례 답한 바와 같이,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선물을 주는 것이다. 넌지시 귀띔해 보고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섭섭하거든 더 이상 선물을 보내지 말라. 하지만 이 문제의 근본이랄까 근원에 지금껏 나는 접근 하지 못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새로 갖게 된 이론은 이렇다:

      

받는 사람에게서 받았다는 연락이 없는데도 부모(또는 삼촌 아니면 할머니)가 해마다 선물을 보낸다면 어쩌면 수령자는 이를 '선물'로 여기지 않고, 당신의 딸이나 다른 사람들도 이를 선물이 아닌 마치 주식 배당금이나 사회보장 연금수표처럼 당연시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선물이 배달된다는 사실이 그들이 이런 믿음을 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딸에게 다시 얘기해서 당신이 보내는 수표는 '자동적'이 아니고 '자발적'인 것임을 분명히 하시라. (당신이 딸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감은 느끼지 마시라.) 당신의 살림이 빠듯해도 당신이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수표를 보내는 것이라고 딸에게 말씀하시라. 그래도 딸의 고맙다는 말이 없어 기분이 상하시거든 딸에게 좀 더 배려심을 가지라고 말씀해 보시고, 그래도 소용없거든 수표 대신 카드만 보내시라."

 

이상과 같은 기사를 보면서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에서나 반복되는 현상이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지난 2015년 한 주말 영화 '국제시장'을 웃다 울다하며 본 기억이 되살아났다.

      

'흥남철수', 베트남 전쟁', '파독', '이산가족 찾기' 등 중장년층 그들의 이야기였다. 나 같은 노년층에게는 이 영화에서 직접 다루지 않은 일본 강점기와 8.15 해방과 그 후 겪은 갈등과 혼란상이 그 배경으로 중복되어 겹쳐지는 영화였다. 나 자신에게 재삼 재사 다짐하는 뜻에서 몇 자 적어 보리라.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진다'는 맥아더 장군의 말이나 옛날 어느 가수의 노랫말 '떠날 때는 말없이'를 상기하게 된다. 나 또한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고 보아 온 어르신들의 '내가 (또는 우리가) 너희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하고 어찌 키웠는데'란 공치사의 말씀을 지겨워했었다. 노년층은 물론 중장년층에게도 좀 심한 말이 되겠지만,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본능적으로 제 새끼를 위해 제 목숨 아끼지 않고 모든 희생을 감수하지 않던가.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의 독백처럼 "내는 생각한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기 참 다행이다"

 

이는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말 아닌가. 미국 가수 척 윌리스(Chuck Willis 1926-1958)가 부른 노래 '내가 (누구를) 위해 사는데(What Am I Living For, 1958)’의 노랫말처럼 말이다. 사랑이든 선물이든 도움이든 받을 때보다 줄 때 그 기쁨이 비교도 할 수 없이 훨씬 더 크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느니 차라리 내가 받는 편이 덜 괴롭지 않던가. 그래서 영어에도 ‘Virtue is its own reward’란 말이 있으리라.

 

저는 계획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천년 만년 사는 게 아니 잖아요.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죠. 오늘을 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20148월부터 6개월 동안 방영된 KBS2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가 종영된 후 탤런트 김현주가 한 말이다. 이 주말 연속극 제목 자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한 마디로 축약해 표현하고 있다. 우리 남-북한 동족끼리, 지구촌 한 인간 가족끼리 정말 왜 이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드라마였다.

 

1977년생인 김현주가 1996년 뮤직비디오 인생을,’ 그리고 1997MBC 미니시리즈 내가 사는 이유로 데뷔한 이후,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 및 뮤직비디오 제목들만으로도 우리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를 말해주고 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밖엔 난 몰라’, ‘햇빛 속으로’, ‘반짝반짝 빛나는등 말이다.

 

특히 2000SBS창사 10주년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덕이에서 정귀덕 역으로 나온 김현주는 사람이 어려서부터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건지를 너무도 실감나게 여실히 보여주었다.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그 어떤 모진 세상 풍파라도 착하고 씩씩한 마음 하나로 다 극복하는 찬란한 인간승리의 찐한 감동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었다.

 

킴벌리 커버거(Kimberly Kirberger)의 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If I Knew Then What I Know Now)’이 있지만, 이런 때 늦은 넋두리가 무슨 소용 있으랴. 김현주의 말처럼 오늘 당장 지금 잘 사는 게 중요하지. 단 한 번밖에 없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순간을 놓쳐버리고 만일에 어쨌더라면이라 잠꼬대 같은 소리로 단 한숨이라도 낭비하고 허비하지 말 일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not to waste your breath’가 되겠다. 그 한 예로 영어에 이런 속담이 있다. ‘아줌마에게 불알이 있었다면 아저씨가 됐을 텐데. (If auntie had the balls she would have been uncle.) 우리말로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진다’라고 하던가.

 

당신은 나의 옛 모습이고 또 나의 모습이 되리라.’ 한 무덤의 비석에 새겨진 비문(碑文)이다.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내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어떤 선물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자문해본다. 선물이란 남에게 주는 게 아니고 나 자신에게 주는 게 아닐까. 뿌리는 대로 거둔다고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리라. 사랑을 주면 사랑이 돌아오고, 미움을 주면 미움이 돌아오며, 선물은 씨앗처럼 가슴에 떨어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리라. 내가 죽어 땅속에 묻혀 흙이 되거나 불에 타 재가 되어 하늘로 증발해 나의 아니 우리 모두의 영원한 고향인 우주의 자궁 속으로 돌아간 다음에라도 말이어라.

 

우리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예언자(The Prophet, 1923)가 베푼다는 것에 대해 하는 말 좀 들어보리라.

 

 

당신이 가진 것을 줄 때

이를 준다고 할 수 없고

당신 자신을 줄 때라야

참으로 주는 것이 되리오.

 

오늘 많이 모아 놓는 것

다 내일을 위해서라지만

아무런 자취도 남지 않는

세월이란 모래밭 속에다

재산이란 뼈를 묻어둔들

어디에 쓸 데 있으리오.

 

뭐가 모자랄까 걱정함이

다름 아닌 그 모자람이오.

우물에 샘이 넘치는데도

혹 목마를까 걱정이라면

그런 갈증 어찌 가시리오.

 

많은 것 갖고 있으면서도

남에게 주는 일 거의 없고

더러 좀 베푼다고 하더라도

생색을 내기 위해서라면

그 선심조차 욕될 것이오.

 

가진 것 별로 없어도

그래도 다 주는 사람

따뜻한 가슴 속에는

삶의 샘 넘쳐 흐르리.

 

기쁜 마음으로 주는 이

즐거움의 열매 거두지만

싫은 마음으로 주는 이

괴로운 가시넝쿨 뿐이리.

 

준다는 기쁨도 즐거움도

모르고 그저 베푸는 이

산골짜기에 피는 꽃들이

그 향기로운 숨 내쉬듯

그렇게 자연스러움이리.

 

참으로 너그러운 이에겐

받아 줄 사람 찾는 것이

더할 수 없는 기쁨이리.

 

세상에 아낄 것 무엇이오.

당신이 가진 것 모두 다

싫든 좋든 그 언젠가는

다 남겨 놓고 떠나는데

당신이 살아 주고 받는

삶의 기쁨 나눌 일이오.

 

당신이 세상 떠난 다음

벌어질 당신 유산 싸움

불씨 남겨 놓지 말리오.

 

때때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줄 만한 사람에게만 주고

받을 만한 사람만 받으리.

 

사람 봐 베풀라고 하지만

과수원에 있는 나무들과

풀밭의 젖소들과 양들은

그런 말 절대 안 하지요.

 

과일이고 우유고 털이고

가진 것 다 남에게 줘야

제가 사는 줄 잘 알지오.

끝내 지니고만 있다가는

썩어 없어지게 될 것을.

 

살아 숨 쉬면서 제 목숨

받아 누리는 사람이면

그 누구라도 그 뭣이든

떳떳이 받을 수 있으리.

저 큰 강물과 바닷물이

시냇물 다 받아들이듯.

 

우리가 주고 받는 것이

참으로는 우리 숨일 뿐.

날숨인가 하면 들숨이고

들숨인가 하면 날숨이리.

 

우리 모두 누구나가 다

사랑의 이슬 맺힌 삶을

받아 누리는 물방울들로

모든 것 다 내주는 땅과

끝도 한도 모르는 하늘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

우리의 넉넉함 나누리오.

 

 

You give but little when you give of your possessions.

It is when you give of yourself that you truly give.

For what are your possessions but things you keep and guard for fear you may need them tomorrow?

And tomorrow, what shall tomorrow bring to the over- prudent dog burying bones in the trackless and as he follows the pilgrims to the holy city?

And what is fear of need but need itself?

Is not dread of thirst when your well is full, the thirst that is unquenchable?

 

 

There are those who give little of the much which they have and they give it for recognition and their hidden desire makes their gifts unwholesome.

 

And there are those who have little and give it all.

These are the believers in life and the bounty of life, and their coffer is never empty.

These are those who give with joy, and that joy is their reward.

And there are those who give with pain, and that pain is their baptism.

And there are those who give and know not pain in giving, nor do they seek joy, nor give with mindfulness of virtue;

They give as in yonder valley the myrtle breathes its fragrance into space.

Through the hands of such as these God speaks, and from behind their eyes He smiles upon the earth.

 

 

It is well to give when asked, but it is better to give unasked, through understanding;

And to the open-handed the search for one who shall receive is joy greater than giving.

And is there aught you would withhold?

All you have shall some day be given;

Therefore give now, that the season of giving may be yours and not your inheritors’.

 

You often say, “I would give, but only to the deserving.”

The trees in your orchard say not so, nor the flocks in your pasture.

They give that they may live, for to withhold is to perish.

Surely he who is worthy to receive his days and his nights, is worthy of all else from you.

And he who has deserved to drink from the ocean of life deserves to fill his cup from your little stream.

And what desert greater shall there be, than that which lies in the courage and the confidence, nay the charity, or receiving?

And who are you that men should rend their bosom and unveil their pride, that you may see their worth naked and their pride unabashed?

 

See first that you yourself deserve to be a giver, and an instrument of giving.

For in truth it is life that gives unto lifewhile you, who deem yourself a giver, are but a witness.

 

And you receiversand you are all receiversassume no weight of gratitude, lest you lay a yoke upon yourself and upon him who gives.

Rather rise together with the giver on his gifts as on wings;

For to be over-mindful of your debt, is to doubt his generosity who has the free-hearted earth for mother, and God for Father.

 

, 그래서 영국의 시인 존 던(John Donne 1592-1631)도 사람은 아무도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라고, 우리 모두 한 몸과 한 마음이라고, 서로 서로의 분신(分身)이자 분심(分心)이라고, 네 삶과 네 죽음이 내 삶과 내 죽음이라고 다음과 같이 읊었으리라.

 

'No Man is an Island'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any manne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 또 그래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인디언들도 이런 주문(呪文)을 외었으리.

 

“The rivers don’t drink their own water;

the trees don’t eat their own fruits.

 

The sun doesn’t shine for itself;

the flowers don’t give their fragrance

to themselves.

 

To live for others is nature’s way.

 

Life is good when you are happy;

but life is much better when others are happy

because of you!

 

Who doesn’t live to serve,

doesn’t deserve to live.

Our nature is service.”

 

중세 페르시아의 시성(詩聖) 루미(Rumi 1207-1273)의 이 시구 우리 함께 읊어보리라.

 

“Come to the orchard in Spring.

There is light and wine, and sweethearts

in the pomegranate flowers.

 

If you do not come, these do not matter.

If you do come, these do not matter."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전) 코리아타임즈 기자

전) 코리아헤럴드 기자

현) 뉴욕주법원 법정통역관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8.25 10:09 수정 2020.09.08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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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