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대 칼럼] 성범죄, 그래도 죽지는 말아야

문용대

전명희 기자

작성 2020.09.15 09:52 수정 2020.09.15 10:18

 

현직 서울시장이 북한산에서 숨진 채 새벽 심야에 발견됐다. 최근까지 5년간 근무했던 여비서 A씨가 시장을 상대로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를 했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측근들과 심야대책을 논의했다 한다. 고소인은 다음날 새벽까지 조사를 받으며 “4년 전부터 성추행이 이어졌다. 더 많은 피해자가 있다고 진술했다. 시장은 피소 다음날 공적인 일을 모두 접고 연락이 끊겼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로 시작된 유서가 발견됐다.

 

시장의 성추행은 현 정부 들어 충남지사와 부산시장에 이어 세 번째 광역자치단체장이다. 이런 단체장들의 일탈 행위가 계속되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닌지 되짚어 볼 일이다. 거물급 정치인 말고도 각 분야 지도급 인사들의 성추행은 셀 수도 없다. 특히 이번 서울시장의 성추행으로 인한 죽음은 그가 지금까지 주장하며 해왔던 일과는 달라 놀라움이 크다.

 

그는 여성인권변호사로 성희롱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인식을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이다. 1993년에 제기된 서울대 신모 교수의 우모 조교 성희롱 사건을 공동으로 맡아 6년의 소송 끝에 우 조교에게 오백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당시 시장이 쓴 고소장 문장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호숫가에서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로 개구리를 맞춘다. 아이들은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라는 문구다.

 

이 사건 변호인자격으로 1998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받은 상금을 다시 그 여성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늘 약자 편, 그 중에도 여성 편을 많이 들었다. 시장 재임 중에는 성 평등위원회를 설치하고 여성들이 마음 놓고 일하도록 하겠다는 등 누구보다 여성친화정책을 펴 온 말과 그의 행동이 너무 달라 많은 사람을 더 실망하게 했다.

 

젊었을 적 내게 누군가가 세 가지를 조심하라던 말이 떠오른다. ‘돈과 여자(이성異姓) 그리고 잡기(雜技)’이다. 지도급 인사들의 성추행 행위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믿기지 않고 이해가 안 된다. 2~30대 젊은이도 아니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할 미성년자는 더욱 아니다. 배움이 모자라 생각이 짧지도 않을 멀쩡한 이들이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성추행으로 인해 몰락한 많은 사람을 보아 왔을 텐데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까. 나중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과연 그와 같은 순간적 욕구를 이겨낼 수는 없었는가. 그렇다면 악마의 주술에라도 걸렸단 말인가?

 

성경 한 구절이 생각난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선악과善惡果)만은 먹지 말라(창세기 217)며 한 명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었다.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엄중한 말씀을 어겼다.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랑이건만으로 시작되는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가수 박재란이 부른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노래다. 기독교에서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인간 조상의 타락이라고 한다. 어떤 종파에서는 선악과 따먹은 것을 남성인 아담과 여성인 이브 두 사람의 잘못된 성적(性的)행위였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 중 하나로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하기 전(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몸을 가리지 않은 채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나(창세기 225), 타락한 후에는 벗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무화과나무 잎으로 하체(下體)를 가렸다.(창세기 37)'는 구절을 든다. 성적타락이 아니었다면 왜 하필 하체를 가렸겠느냐고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까지 저질러지는 죄, 그것은 잘못된 성()으로 인해 일어나는 죄가 아닐까 싶다.

 

서울시장의 죽음으로 수도 서울특별시와 제2도시 부산광역시는 초유의 시장권한대행체제가 되었다. 내년 47일 재보궐선거가 치러진다. 또 다른 광역단체장도 재판 중에 있다. 결과에 따라 재보선 판이 한층 커질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의 국민이 투표에 참여하게 된다. 대통령 선거에 버금가는 선거를 치를 수도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로 인한 사망률 1위를 차지해 불명예를 안고 있다. 서울시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직 대통령 한 명과 복수의 국회의원도 그랬다. 그 외 전 부산시장, 전 전남지사, 전 파주시장, 전 경남부시장 등 정치인만 해도 이렇게 여럿이다. 이들의 삶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이나 무책임한 행동이 미화된다면 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게 될 것이다. 한편 이들의 죽음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를 딱 잡아떼고 뻔뻔한 사람에 비해 자신의 죄의식이나 자아비판의 표현이었다는 점, 다시 말해 양심의 발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살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인간만이 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어느 나라 국민보다 양심적이기 때문일까?

 

우리 사회에 성추행, 성폭력, 성희롱 같은 범죄가 이제 사라졌으면 좋겠다. 신으로부터, 조상으로부터 받은 귀중한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은 더 큰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기 바란다. 지은 죄가 있으면 살아서 사죄하고 죗값을 치러야 용기 있는 사람이다.

글 = 문용대


전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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