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신화극장] 지리산 노고단

산은 너희의 소원을 이루는 곳이 아니다. 너희가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3분 신화극장] 지리산 노고단

 

안녕하세요. 한나라입니다. 신화는 시간에 새긴 신들의 연대기가 아니라, 세상을 만들어간 인간의 마음이 남긴 흔적입니다. 그래서 신화는 시간이 낡아도 사라지지 않고, 오늘도 우리의 가슴 속에서 숨처럼 되살아나 이야기가 됩니다. [3분 신화극장]은 신들의 이름을 빌려 인간의 얼굴을 비추는 등불입니다. 이제, 이야기의 문을 열어볼까요. Let’s go.

 

오늘은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지리산, 그 중에서도 하늘과 가장 가까운 언덕 노고단에 얽힌 신화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주 오래전, 지리산이 지금보다 훨씬 깊고 신비롭던 시절. 산에는 사람의 발길보다 신들의 그림자가 더 자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한 여신이 살고 있었지요. 사람들은 그녀를 노고(老姑), 곧 ‘위대한 할머니 신’이라 불렀습니다. 노고는 하늘의 신도 아니고 땅의 신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산을 품고, 강을 돌보며, 들판의 곡식과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는 대지의 어머니였습니다. 봄이면 꽃을 깨우고, 여름이면 비를 부르며, 가을이면 곡식을 익게 하고, 겨울이면 생명들이 쉬어갈 자리를 마련해 주었지요.

 

그러던 어느 해, 지리산 아래, 마을에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강은 바닥을 드러내고, 논밭은 갈라졌으며,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 대신 근심이 드리워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노고 여신을 찾아 노고단으로 올라갔습니다.

 

“어머니 신이시여, 우리를 도와주소서.”

 

하지만 산은 침묵했습니다. 그때 한 어린 소녀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녀는 제물도, 금은보화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들꽃 한 송이를 두 손에 품고 있었지요. 소녀는 노고단 정상에 꽃을 올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저희에게 비를 주시면 좋지만, 비가 오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산은 늘 우리를 품어 주었으니까요.”

 

그 순간, 구름 사이에서 한 노파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허리는 굽었지만, 눈빛은 별처럼 맑았지요. 그녀가 바로 노고 여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필요한 것을 달라고만 한다. 하지만 너는 먼저 감사하는구나.”

 

노고는 미소를 지으며 지팡이로 바위를 두드렸습니다. 툭. 그 소리와 함께 먼 하늘에서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곧 단비가 지리산과 마을을 적셨습니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춤을 추었고, 들판은 다시 푸르게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노고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산은 너희의 소원을 이루는 곳이 아니다. 너희가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그 후 사람들은 그 언덕을 노고 여신이 머무르던 제단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노고단에 오르면 끝없이 펼쳐진 산맥과 구름의 바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새벽안개가 유난히 부드럽게 능선을 감싸는 날이면 노고 여신이 여전히 산을 돌보고 있다고요. 오늘 밤, 삶이 메마르고 마음이 가물어졌다고 느껴진다면 지리산 노고단의 바람을 떠올려 보세요.

 

 

한 편의 작은 드라마, [3분 신화극장]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한나라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성 2026.06.25 09:38 수정 2026.06.2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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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