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시를 걷다] 죽변항

바람도 바다도 영원이라 말하지 않는 ‘죽변항’에서

입력시간 : 2018-08-10 11:22:29 , 최종수정 : 2018-09-01 17:22:34, 편집부 기자



대숲을 에돌아 나온 죽변항의 바람이  

먹지처럼 스며드는 저녁 어스름을 안고

바다 안쪽으로 무수히 풀어지고 있었다.

마른 바다의 풍경이 시간과 공간을  

몰아내고 단순함으로 치달리는

단 하나의 그리움만을 만들어내며  

모든 서정의 운명을 바다 속으로  

끌어 내리는데 아! 나는 이 권태로운  

자연의 행간에 숨어 바람이 되었다가 

바다가 되었다가 저 항구의 심심한

빨간 등대가 되었다가 회색으로  

무장한 군함을 좇아 먼빛으로 사위어 가는  

저녁항구에서 꿈꾸듯 시간을 열었다.  

 

몽환이었다.

낮게 내려앉은 하늘과

그 하늘 아래를 나는 갈매기는

마른 풍경을 일시에 소멸하는

환각처럼 다가왔다.

내 시선은 늙은 배와 늙은 배를 껴안은

항구로부터 쓸쓸한 오지의 낯선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저 갈매기가 날지 않았다면

나는 항구에 주저앉아 절박하고 모호한

몽환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불쌍해서 버려지지 않는 언어들을

솎아내느라 밤새 두통에 시달리며

우울했을 것이다.



 

항구라고 쓰고 보니

항구만 보이고 어부가 보이지 않았다.

어부라고 더 쓰고 보니 결핍이 줄어들고

만선의 붉은 깃발이 눈부시고 찬란하게 펄럭였다.

그래서 어부들이 안고 돌아오는 대게는 강함이며 밝음이다.

태백의 산자락에서 우리의 생명을 처음 연

환웅이 박달이므로 박달의 물줄기는

여기 죽변항에서 대게의 어원이 되었을 것이다.

생명만 있고 결핍이 없다면

삶도 역사도 소용없는 일인지 모른다.

 

 

세상의 언저리는 늘 팔딱 팔딱 뛰는 심장의 중심이다.

하찮음이 살아 꿈틀거리는 순결한 생명의 공간이며

막힘과 그침이 없는 조화로움이 넘실거리는 ''.

어부도 항구도 그 항구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도

여전히 힘찬 생명의 힘으로 끓어올랐다가

바다와 한 몸으로 뒹구는 처절한 순정으로 빛난다.

저 정직한 노동의 구획 안으로 잡혀온 오징어들은 행복할 일이다.

작은 스티로폼 상자 안에서 세상을 넘본 죄를 뉘우치며

은자처럼 누워 있을 것이다.

모든 수고로운 자들의 밥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마른 몸에 가시선인장 같은 웃음을 짓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뱃일을 하는

저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은 신성하다.

아무리 날카롭고 뾰족한 모서리를 가졌다 해도

가슴에 감춘 그리움을 뽑아들면 금방 순해지고 만다.

늙어가는 항구의 노동은 그래서 착한 사람들의

고향이 되어가다가 종래엔 풍경이 되어간다.

모든 노동이 사랑이듯  그리움도 사랑이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항구의 아침은

더욱 사랑일 수밖에 없나보다.



방금 건져 올린 물텀벙에게선

달콤한 바람 냄새가 났다. 정말 그랬다.

잘 익은 바다와 뜨겁게 달구어진 바람이

한 몸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어느 착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세상 밖 구경을 나왔을 것이다.

물텀벙에게선 달콤한 바람 냄새가 나고

할머니에게선 쌉쌀한 바다냄새가 났다.


 

매달린 건 대구가 아니다.

우리가 지구에 매달려 있었다.

변하는 건 세상이 아니라

변화를 두려워 한 우리들이다.

세상 끝에 매달려 바다를 경외하는 대구처럼

세상을 놓아주고 나니 세상이 보였다.

날을 세우면 그 날에 내가 베이고 찔리는데

마음이 무뎌지면 질수록 삶은 기도가 된다.

바다를 이고 매달려 있는 저 대구처럼 말이다.


바람의 등을 수없이 떼미는 가을,

어디쯤에서 숨을 고를까 망설이다가

문득 눈앞에 펼쳐진 오징어들의 퍼포먼스 봤다.

두 팔을 벌려 허공으로 부서지는 저 찬란함은

지나간 것들의 흔적으로 살아 돌아오고 있었다.

천년만년 바다는 변함없을 터이지만

미이라로 부활할 오징어는 개별적 존재로 남아

오래 생존하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바다와 등대는 서로 뒷모습을 본적이 없다.

그래도 바다와 등대는 서로를 믿고 오래 공존한다.

질긴 바다, 질긴 등대, 질긴 바람.......

질긴 것들은 모두 다 외로움이 된다.

세상의 맨 밑바닥으로 추락한 질긴 것들은

외로움을 통해 풍경으로 발현된다.

바다와 등대처럼 서로의 뒷모습을 본 적이 없어도

질기게 인연을 쌓아가면서 외로움이 되고 만다.

그래서 바다와 등대는 애달프고 애달프다.



인기척 없는 어촌 바다를 지키고 있는

순한 눈망울의 어린 개가 나를 반겼다.

어부는 저 너른 바다의 옷자락을

부지런히 걷어 올리고

어린 개는 어부를 향해

착한 눈망울을 부지런히 보낸다.

! 세상의 모든 사랑은

경계를 두지 않는 법인가 보다.


영원이라고 누가 말을 내 뱉을 수 있을까

비릿한 해무에 꽃잎 하나 열고

날선 바람에 또 꽃잎 하나 열면

봄도 여름도 지나고

가을도 겨울도 소리 없이 스쳐가고 만다.

사철채송화 곱게 핀 바닷가 언덕위에

한 생이 지고 나면 다시 한 생이 피어나

사철이 흘러가고 바다도 흘러간다.

바다도 바람도 사철채송화도

영원히라고 말하지 않는 죽변항에서

나는 계절을 흘려보내며

영원을 바다에 던져 놓고

그 바다를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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