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완 칼럼] 인더스 문명에 나타난 우리 문화

최용완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04 11:55 수정 2020.04.04 11:56


하라파문명은 모헨조다로와 함께 파키스탄의 인더스강 유역에 위치한 고대 도시국가 유적이다.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발굴이 계속되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1980)된 문화유적이다. 흙벽돌과 구운 벽돌로 건설된 고대 도시국가는 5,300년 전부터 3,600년 전까지 약 4만 명의 인구가 생활한 환경이다. 총면적은 약 300헥타르(3백만 제곱미터)로 추정된다. 1922년 영국 고고학자 존 마샬(Jone Marshall)과 인도 고고학자 라칼다스 바너지 등의 지휘로 발굴이 시작되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5천 년 전에 나타난 한반도의 문화 스메르(Sumer)문명과 유사한 점이 많다. 왕이거나 제사장으로 추정되는 지배자의 모습은 35cm 높이의 인상 석조각으로 광대뼈가 높고 가는 눈 끝이 위로 올려졌으며 수염을 기른 동아세아 사람의 얼굴이다. 어깨 위로 걸쳐 입은 의복은 크로버잎 문양을 양각한 가사(袈裟: kasaya)로 면화나 아마포 혹은 비단옷일 수도 있겠다. 스메르 사람처럼 치마를 입었을 수도 있겠다. 농사짓는 생활에 소가 이끄는 쟁기와 달구지 모습이 한반도의 문화 스메르(Sumer)문명이 보여주듯 선명하다.

 

인더스문명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보다 더 일찍부터 더 넓은 지역에서 번성했던 바둑판 모양의 도시계획이다. 바퀴는 한반도 농사짓는 문화에서 나무 외바퀴가 쌍바퀴 수레가 되고 인력거로, 소달구지로, 그리고 요하문명에 이르러 금속 축과 바퀴를 말이 이끄는 바퀴문화에서 격자형 도시계획이 유래되었다. 바퀴문화는 평지에 격자형 도시평면을 이루고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같은 도시계획이 세계 각 대륙에 전해졌다.

 

동아세아 고대 도시, 신라의 경주, 일본의 나라, 당나라의 수도 서안, 중국의 북경과 남경을 비롯한 도시계획으로 주례 동관 고공기에 기술된 형식이다. 남북으로 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약 10미터 폭의 포장된 큰 통로가 주축이 되어 바둑판처럼 구획되었다. 동쪽 주거구역은 네 개의 큰 통로로 9블록을 나누었다. 다시 각 블록은 몇 개의 교차하는 작은 길로 나누어져 각 주택이 정해졌다. 홁 벽돌 주택은 미대륙의 원주민 주택구조와 유사하고 중앙에 정원이 있는 평면은 동아세아 주택 양식이다. 불에 구운 벽돌은 28cm x 16cm x 9cm 규격품으로 동아세아의 만리장성 벽돌과 유사하다.

 

물을 이용할 줄 아는 치수(治水) 사회였다. 홍산문화처럼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내부에 관개수로가 설계되었고 높은 곳에 성지와 귀족의 주거지, 낮은 곳에 평민의 주거지가 배치되었다. 도시 중앙에 목욕탕은 오늘날의 수영장만 한 크기로 주거지 한복판에 위치했고 도시 전체가 하수 네트워크로 연결되었다. 물길을 덮는 구조물은 고구려고분의 천정 구조처럼 벽돌로 널방고임(corbel structure) 형식으로 축조되었다. 목욕탕에서 사용한 물은 지하 배수로를 통해 큰길에 나 있는 하수도로 흘러갔다. 모든 하수구는 덮개로 가렸다. 시가지에 있는 집집마다 하수도가 연결되었고 많은 집에 우리나라 가정처럼 동그란 우물이 있다. 700여 개의 우물에서 4만여 인구가 생수를 마셨다.

 

서쪽에 가장 높은 곳에 기단을 쌓아 성체를 세웠다. 주위에 광장, 공회당, 제단, 곡창물 창고, 등의 지배자의 시설이 있고 사각형 신전의 중앙에 원형의 탑을 세웠다. 원형의 탑은 거의 반쪽이 파손되었지만 원래의 원형은 갠지스강의 석가탑처럼 원형인 듯하다. 우리나라 묘지가 동그랗고 왕묘가 동그란 모양인 것처럼 우리 문화의 동그란 천정은 불국사 석굴암에서 보듯 돔(Dome) 지붕이 불교건축에 적용되었다. 인도의 힌두교 건축과 함께 서남아세아에 전해져서 로마문명과 현대건축에 돔(Dome)지붕의 건축양식으로 진화되었다.

 

토기, 토우, 석회암제 상(), 동기(銅器), 청동제의 조각상, 인장(印章), 손도끼, 동물 조각, 신상( 神像) 그리고 귀금속으로 치장된 장신구 등이 발굴되었다. 인더스문명을 대표하는 생활 유물들이다. 동물조각상은 진흙으로 빚어 만든 작은 코끼리. , 사자, 등이 많다. 두 마리의 소가 끄는 달구지는 바퀴 두 개의 수레로 짐의 크기와 양으로 보아 금속 축이 사용된 듯하다. 소의 조각된 모습이 이미 신성화되어 인도의 소를 신으로 숭배하는 종교습관이 이때부터 나타난다. 많은 병사들이 행군하는 모습에 한반도 민족의 의상인 머리에 새의 깃을 꽂은 모습이 있어 우리나라 문화의 특색이 보인다.

 

2천 개의 발굴된 인장에 문자는 홍산문화(6,500년 전-5,000년 전)에서 이미 형성된 그림에서 글자로 변하는 모습의 문자들이다. 동물 조각은 호랑이, 물소, 코뿔소, 코끼리, 물고기, 악어, 등의 짐승들이다. 여러가지 인장은 동아세아 인장처럼 문자와 그림으로 형성되어 종이나, 면화나, 아마포 같은 옷감에 물감을 찍어 주인을 밝히는 풍습인 듯하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많이 나타나기에 통상무역 상품의 소유인 혹은 상품의 수령증, 상인들의 통행증으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겠다. 요하문명의 금속 도구는 석기시대에서 금속시대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였다. 나무집을 짓고 나무배로 항해하기 시작하였다. 이곳 인더스문명에서는 장거리 항해하는 큰 선박 그림을 자주 볼 수 있다.

 

토기문명은 홍산문화의 토기처럼 청동기시대 체색으로 엷은 주홍색의 문양이다. 뚜껑 덮은 항아리와 그릇은 우리나라 가야토기와 비슷하고 허리가 가는 잔의 모양도 동일하다. 청동 여신상은 남방 고유의 머리 모양이며 팔과 목걸이 만을 장식한 나체상이다. 동아세아 사람의 가는 눈 끝이 위로 휘어졌으며 꼭 담은 입술은 도톰하여 지금의 인도 아리안과는 다른 드라비디안 인상이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청동불상의 가는 몸매를 연상케 한다.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문명은 계승되지 않고 4,500년 전경에 주민이 사라졌다. 아리안족이 침략할 무렵에 드라비디안 민족은 이곳을 떠난 듯하다. 동아세아의 황하유역에서 중화족 주나라가 상나라를 침략했을 때 상나라 동이족의 막대한 인구가 해외로 도피하듯 드라비디안 민족은 남쪽으로 떠난 듯하다.

 

한반도의 고인돌문화가 인도 남부에 전해진 후부터 한반도와 갠지스강 문화는 교통이 열렸다. 인도 남부에 드라비디안 언어, 상스크리트는 우리나라 언어의 어원이다. 문장의 구조와 비슷한 발음의 단어가 많다. 신앙, 무속, 장례 풍습이 유사하고 설화, 음식, 농기구, 음악과 춤의 고통성이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 체형과 유전자의 연관은 이미 밝혀졌다. ‘삼국유사삼국사기에 가야의 초대왕비 허왕후(許王侯)가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내용도 있다.

 

요하문명 중에 홍산문화의 금속 도구, 체색토기, 문자, 바퀴, 성곽, 등의 문화가 인도의 갠지스강에 전해지고 차츰 인더스강 쪽으로 전해졌다. 문명의 파도는 마치 동아세아에 종교, 음양오행의 논리가 갠지스강의 불교로 나타난 다음 인더스강으로, 서남아세아로 전해지는 순서와 같아 보인다. 2008년에 현대인류의 뿌리가 아프리카 일원론으로 규명되듯 인류문명의 뿌리도 한반도의 농사짓는 문화와 만주 요하지역의 금속문화로 2020년부터 정의하여 유럽의 편견에서 벗어날 때다. 정보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세계관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어야겠다.

 

 


 

[최용완]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미주문협 신인상 수상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에세이포레 신인상 수상

 

최용완 ywbryan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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