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삶의 향기] 봄의 교향악

김희봉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5.11 10:32 수정 2020.05.11 13:05

 



북캘리포니아의 봄은 벚꽃망울 끝에 나비처럼 맨 먼저 내려와 앉는다. 겨우내 뿌리던 빗줄기 발이 한결 순해지고, 낮고 동그마한 구릉들이 푸릇푸릇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면, 벚꽃송이들은 금세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다. 가지마다 흰꽃, 분홍꽃, 타오르는 생명의 빛깔로 흐드러지는 봄.


봄의 행보가 세월이 갈수록 빨라진다. 올해도 봄이 왔나 싶었는데 머뭇거리는 사이 4월 지나, 벌써 5월의 문턱이다. 연초록 앳되던 봄이, 어느샌가 바람결에 꽃잎들을 뚝뚝 떨궈 놓곤, 저만치 나를 앞질러 가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선뜻 맞지 못하고 자꾸 멈칫거리게 됨은 설 늙는 증거일까? 내 엉거주춤한 모습과는 달리, 5월의 벚나무는 벌써 그 탐스럽던 꽃들을 훌훌 털어 버리고, 여름을 준비하며 싱싱한 자줏빛 잎으로 갈아입고 있다.

 

5월의 싱그러움 속에 어머니 날을 맞는다. 평생 늙지 않으실 것 같던 어머니가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신다. 자식들 낳아 사람답게 키우기 위해 벚꽃처럼 화사했던 당신의 젊음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긴 세월 꿋꿋한 나무처럼 살아오신 어머니. 젊은 시절부터 어머니는 봄의 노래, ‘사우(思友)’를 즐겨 부르셨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靑蘿)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어머니에게 이 봄의 교향악노래는, 지금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외삼촌의 분신(分身)이었다.

 

"이 가곡은 하나밖에 없던 네 외삼촌의 노래였단다. 원산 중학 3학년 어린 나이에, 사람들 많이 모인 시공관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불렀었는데,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곤 습관처럼 어머니는 그의 모습을 찾으시듯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곤 하셨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삼촌.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아 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할 뿐이지만, 그 가곡이 주는 이미지만으로도 외삼촌이 멋있고, 봄같이 따스한 마음을 가진 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이런 연유로, 나도 중학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이 곡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이 노래를 부르면서 눈이 크고 시원한 어머니의 젊은 모습과 겹쳐 외삼촌의 얼굴도 그려보고, 또 비단 같은 푸른 덩굴, ‘청라가 주는 이미지의 신선함에 취하곤 하였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은 유독 계절에 민감한 듯하다. 어머니도 꽃피거나 질 때마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고향 원산과 함께, 두고 온 가족 얘기를 자주 하신다. 큰 목재상을 하시던 외할아버지가 개화한 어른이셔서, 외동딸이 명문 루씨 고녀를 마치자 서울로 유학을 보내셨는데, 그때가 6. 25동란 나기 몇 해 전이었다.

 

외할아버지는 갓 18살 난 딸의 손을 잡고 임진강을 건너셨다. 새벽녘에 고개를 넘으니 미군이 총을 들이댔는데 의연하게 내 딸이 대학생이라고 영어로 말하셨다고 한다. 그 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를 신촌 기숙사에 맡기고 고향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때가 서로 마지막 본 셈이었다.


어머니보다 두 살 아래였던 외삼촌은 6. 25때 인민군으로 끌려나갔다고 한다. 적 치하에서 그를 서울에서 만난 어머니 친구들은, 피난 갔다 수복 후 돌아온 어머니에게 기막힌 얘기를 전했다. 외삼촌은 누나를 몹시 그리워하며 서울에 좀 숨겨줄 수 없겠는가 하고 간곡히 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엄하기 이를 데 없던 전쟁 통에 아무도 그를 숨겨줄 수 없었고, 결국 그는 낙심한 채, 자꾸 뒤돌아보며 떠났다고 한다.

 

부모형제 떠나 평생 외롭게 사신 어머니는, 자신의 피붙이인 자식들에 사무친 정을 가지고 사신다. 내가 처음 미국 올 때, "왜 또 헤어져야 하니?" 하시며 잡으시던 그 여윈 손에 고였던 안타까움의 힘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미국에 오셔서도 내 아랫동생들의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불편한 몸으로 오랜 세월 키우시며 고생이 많으신 데도, 그 일은 손수 당신이 하실 사명으로 생각하고 놓지 않으신다. 내 큰 아이가 동부의 대학으로 떠나는 날, 어머니는 L.A. 동생 집에서 일부러 올라오셨다. "네가 커서 이제 대학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니, 그 옛날 네 외증조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서울까지 바래다주시던 생각이 난다." 하시며 연신 손자의 등을 쓰다듬으신다.


"이 할미는 너를 그냥 보낼 수 없어 이렇게 달려왔단다. 우린 그래도 핏줄끼리 서로 보고 싶을 때 자유롭게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니!" 하시며 끝내 눈물을 보이신다. 어머니에겐 그 옛날, 외할아버지가 당신과 헤어지며 그러셨듯, 손자에게 모아두셨던 쌈짓돈을 손수건에 꽁꽁 싸 주머니에 넣어 주신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여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아직도 마음은 청라언덕같이 젊고 푸르신데, 그 고운 언덕을 할퀴고 간 생이별의 아픔 때문에 평생 외로움을 운명처럼 안고 사신 어머니. 당신의 피붙이들을 60년 세월 동안 한 번도 얼굴 마주 볼 수 없었던 내 어머니의 그 마음속 깊은 슬픔은 어느 봄날쯤에나 사라질 수 있을까? 세월은 자꾸 우리를 앞질러 흘러가는데…….

 

 



[김희봉]

서울대 공대, 미네소타 대학원 졸업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캘리포니아 GF Natural Health(한의학 박사)

수필가, 버클리 문학협회장

1시와 정신 해외산문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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