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완 칼럼] 배달(예맥)민족과 중화민족

최용완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01 11:17 수정 2020.06.01 11:19


한반도 남단에서 5만 년 전부터 거주하며 농사짓기 시작한 배달민족은 드디어 겨울철의 생활에 익숙해지며 서해의 북쪽에 발해만에서부터 아시아대륙 해변 일대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조상의 신전 고인돌 문화는 짚배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 해변을 따라 전 세계에 분포되었다. 압록강과 만주 요하지역에 이르며 석탄불에서 청동 금속을 찾아내어 인류문명이 요하문화에서 시작하였다. 농업과 목축업이 발달하며 인구증가가 빠르게 성장하며 만주와 몽골초원에 진출하고 중국 동해안 일대에 정착하여 거주했다. 나무집 짓고 나무배를 타고 고인돌 길을 따라 유라시아 대륙의 5대강에 강하구마다 도시를 이루었다.

 

배달민족과 얼굴 모습이나 언어가 다른 중화민족은 1만 년 전에 중국 남부에 나타난 인도아리안 족이다. 내륙으로 북상하며 장강 중류와 황하 중류에 이주해 들며 중국의 산서성에서 배달민족과 혼합하기 시작하였다. 3천 년 전부터 황하유역에서 배달민족과 혼합하며 한()족이 나타났다. 배달민족은 동아시아의 요하, 황하, 장강, 메콩강, 하류 지역을 비롯하여 중국 동해안 전체를 춘추 시대까지 배달민족이 차지하고 살았다. 예절을 지키고 상투를 하는 습관이나 봉(: 봉황새)을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하는 풍속까지 전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나라 이름은 구이(九夷) 이고, 임금은 치우(蚩尤)였다고 전한다. 지금의 귀주성과 사천성에 거주하는 묘족(苗族 농사짓는 민족)도 그곳 인도 아리안과 혼합된 배달민족의 후예들이다.

 

신화는 구전 문학이다. 어느 민족이나 나라나 역사의 기록은 신화에서 시작한다. 신비스러운 종교적 설명이 감동스럽고 쉽게 동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신화는 요하문명에서 결실을 맺고 고조선의 단군신화와 요순 신화로 시작하여 동서로 나누여졌다. 요동의 고구려 신화로 그리고 요서의 황하유역에 하나라와 상나라의 신화로 전해졌다. 중국 역사에 기록된 신화는 대부분 고조선의 신화를 춘추시대 문예부흥을 맞아 문자로 역사의 기록을 시작하였다. 수년 전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유적이 고조선의 강역구, 요녕성 지역에서 나왔다는 것은 중화 사학자들의 정직한 주장으로 역사적 사실(史實)임을 입증해 준다.

 

중화(中華)라는 이름은 동이(東夷) 세력에 둘러싸여 산서성 한가운데 있던 부락이었다. 중화(中華)라는 이름의 본래의 뜻이다. 동이족에게 둘러싸여 바다를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中國'이란 말은 서주(西周) 초에 출현했으며 당시의 수도를 가리킨 지역 이름이며 아직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러시아의 인류학자인 시로코고로프는 중국사에서 기원전 3천 년경 동이족은 이미 황하. 양자강. 서강의 중류 이동(以東)의 중간지역에 살았으며, 중화족은 이보다 15백 년 내지 2 천년 후에 동이족의 나라인 강회(江淮) 지방에 진출하기 시작하였다고 했다.

 

대만 학계에서는 중국 고대사는 고조선의 상고사이며, 그 기록에 나오는 삼황오제와 진시황제까지의 모든 신화는 동이족 즉 고조선의 것으로 설명한다. 대만 임혜상 교수는 그의 책 중국 민족사에서 주나라의 무임금/성임금 및 주공 때(B.C. 12C)는 중화 영역이 가장 작았다고 한다. 중국 하남성 낙양을 동경(東京)이라 했는데, 이 동경만 하더라도 동이족이 차지하였고, 기도(杞都), 옹구(擁丘), 및 변주 땅(지금 하남성의 개봉)에 예속된 읍()들이 또한 동이의 예법을 썼으며, 노나라에 예속된 주를 동이라 하였다. 중화영역은 진()/ / / / / ()/ ()/ 허 등의 제한된 지방만으로 전부 10 주 정도 밖에 되지 못하여 중원(中原) 전체의 5분의 1밖에 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고조선, , , , , 등의 동이의 예맥 상고사 동안 중국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삼국유사에 고조선의 건국 신화의 구성은 석유환국(昔有桓國)이며 실제로 환국(桓國)이란 나라가 있었다는 것이다. 환인(桓因)에 세운 환국(桓國)의 역사는 3301년이었고, 그 후에 환웅(桓雄)이 세운 배달국의 역사가 1565년이었으며, 단천자(壇天子)가 세운 고조선이 그 뒤를 따랐다. 고조선 이전의 4866년의 역사가 있었다. 예맥(배달)민족의 농사짓는 묘족(苗族) 국가가 세워졌다. 쑥과 마늘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저절로 사람 노릇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요순시대는 복의, 염제, 황제, 등의 삼황 과 소호, 전욱, 제곡, 당요, 우순 등의 오제는 고조선의 신화였다. 사마천의 史記(卷十三)에서는 요()가 황제의 직계 5세손이라고 했고, 또 고사변(古史辯)에서는 요()는 황제의 5세손이고, 순은 황제의 8세손이라고 했다. 이렇듯 요와 순임금의 선대를 황제라 분명히 밝혔으니 황제가 동이족인 이상 그의 직손인 이요. 순이 동이족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맹자도 순임금이 동이족이라고 했다(孟子卷八). 중국에서 역사는 주나라부터 기록을 가르쳐 오다가 고고학에서 하나라와 상나라 역사가 밝혀지며 동북공정을 발표하고 이후부터는 이 모두가 중국역사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한반도 남단에서 15,000년 전부터 벼농사 짓기(여주군 흔암리 유적) 시작한 예맥민족(부여 夫餘)은 요하에 이르러 홍산문화 고조선을 이루고 예맥의 이름으로 만주지역에서 고구려와 흉노로 나누어졌다. 부여(夫餘)조선 건국 직후에 단성제왕검(壇聖帝王儉)4황자(皇子)가 다스렸던 제후국이었다. 이것이 부여국의 기원이다. 그 후에 각기 다른 이름의 여러 가지 국호의 부여가 나타난다. 대부여, 북부여, 졸본부여, 가섭원부여, 갈사부여, 연나부부여, 낙씨부여 등이 있다. 백제 25대 어라하(성왕538~554)때 웅진(공주)에서 사비성(부여)으로 천도하면서 남부여라 칭하였다. 호남지역에서 요하지역에 이르는 배달(예맥)민족의 흐름이다.

 

중화족은 인도 사람처럼 피부가 검고 눈과 코가 큰 얼굴이었다. 3천 년 전부터 황하유역 산서성 지역에서 배달민족과 혼합된 한()족의 이름으로 소수 중화족은 대다수 동이족 안으로 사라졌다. 배달민족 5만 년 역사에서 중화족의 정치 활동이 나타남은 고작 3,000년 전 주나라 때부터이다. 진시황제의 통일국으로 시작하여 동이족과 혼합된 한()족이 나타남은 2,200년 전부터다. 중국역사를 통틀어 나라를 다스린 때와 지역은 한()나라 이후부터 진(), 남조, 남송, 명나라에 국한된다. 동이언어와 동이문자도 중국 안에 최근까지 연명 되었다. 배달민족의 언어의 구성은 주어, 수식어, 동사인데 중화족의 언어는 주어, 동사, 수식어이다. 중화족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언어가 중국어로 통화됨은 한자가 형성되며 중국어로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국 역사는 동이족이 꾸려온 역사이다. 현재 중국의 수도 베이징(북경)도 금나라 때부터 청나라 때까지 배달민족의 근거지였으며 지금도 동이족의 후예들이 중화민국을 다스리고 있다. 고조선의 삼황오제 신화로 시작한 동아시아 대부분의 역사는 배달민족의 역사이다. 중국, 일본, 몽골, 대만, 월남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뿌리가 배달민족이며 배달민족의 동아시아는 인류 문명문화의 어머니이다.

 

 

<동아시어는 인류 문화문명의 어머니> 최근에 새로 출판된 책에서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최용완]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전 문교부 문화제 전문위원 역임

미주문협 신인상 수상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에세이포레 신인상 수상

 

최용완 ywbryan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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