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산 위의 바닷길, 강릉 괘방산

여계봉 선임기자


 


한여름에 들어선 동해안은 햇살이 따갑지만 바닷바람은 서늘하다. 도심에서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 피난을 핑계로 동무들과 청정해역 동해를 찾는다.

 

강릉 바우길 8구간의 괘방산 산길은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8구간은 안인항에서 출발해 괘방산을 지나 정동진으로 이어지는 9.4km의 길이다. 바우길 17개 구간 중 가장 바다를 시원하고, 감동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길로 꼽힌다. 산행 내내 광활한 동해 바다를 조망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힐링 산행길'이다.


강릉 괘방산은 동해 해맞이 산행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오늘 산행은 안인진리 주차장을 산행 들머리로 하여 괘방산 정상을 오른 후 등명낙가사로 하산하는데, 7km의 거리를 약 3시간 정도 산책하듯 걷는다.

 

괘방산 산행은 강릉의 안인진리와 정동진 바다를 내내 조망하면서 걷는다.



주차장 오른쪽의 급경사 계단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 조금만 걸으면 정자가 있는 쉼터가 나타난다. 산속은 강한 햇살에 멱을 감는 나무들의 몸내음으로 상큼하다. 소나무향이 그윽한 산길에 비릿한 갯내음이 들이친다. 능선 좌측으로 푸르디푸른 동해바다와 아담하고 정겨운 안인진리포구가 내려다보이고, 우측으로 발전소와 강릉 시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능선 왼쪽으로 동해바다, 오른쪽으로 백두대간의 준령과 함께하면서 이동하는 코스여서 산행 내내 전망이 좋고 산행시간도 적당한 편이어서 가족 단위 산행지로 적당하다.


산행 들머리 안인진리 주차장. 급경사 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능선에 올라서면 가야할 방향으로 삼우봉과 정상이 있는 통신 탑이 보인다.



짙은 솔내음과 바다내음, 해조음을 즐기면서 걷다보니 봉우리가 제법 널찍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258m)이 나타난다. 바로 밑에는 임해자연휴양림과 통일공원이 보이고 안인해변 너머로 동해의 시리도록 푸른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너른 나무데크에 서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다. 이곳은 뒤쪽으로 오대산과 방태산, 설악산 대청봉까지 백두대간이 보이는 전망에다 일출 명소로도 알려져 백패커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강한 햇살이 만만치 않지만 산 아래 휴양림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골바람으로 더위를 날려 보낸다.


활공장에 서면 안인진리 해변에서 정동진 크루즈까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활공장에서 삼우봉가는 등로에는 과거 산성이었음을 알 수 있는 돌무더기들이 많이 보인다. 괘방산 산성은 고려시대에 축성되었는데 아직까지 그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아주 규모가 큰 돌무덤까지 볼 수 있다. 산성터를 지나면 곧 삼우봉이 나타난다. 괘방산 산행 중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좁은 봉우리에는 상어이빨 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어 산객들의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해안절경은 괘방산에서 으뜸이다. 날카로운 바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줄지어 밀려오는 파도가 여기까지 밀려올 듯하다. 고깃배들이 하얀 포말의 선을 긋지만 이내 지워지고 만다.

 

삼우봉 바위에 올라 동해바다를 가슴에 담아본다.

 


삼우봉에서 높낮이가 평이한 등로를 700m 정도 가면 등산로에서 약 10m 정도 벗어난 숲속에 괘방산 정상석(345m)이 있다. 실제 정상에는 통신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민간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정상석을 만들어 놓았다. 괘방산 산 이름은 옛날 이 지역 출신 사람들이 과거에 급제하면 두루마기에다 급제자의 이름을 쓴 방()을 이 산 어디엔가 붙여(괘방, 掛膀) 고을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괘방산 정상석. 실제 정상은 통신탑이 있는 곳이다.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끝내고 나무데크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통신시설 전용 도로인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여기서 산속으로 난 길을 가면 당집과 삼거리를 지나 정동진으로 가게 되고, 시멘트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등명낙가사가 나온다.


포장도로 이정표. 여기서 정동진과 등명낙가사로 방향이 갈라진다.

 


당집 4거리에서 우측 능선으로 가면 청학산으로 연결되는데 이곳은 무장간첩 11명이 집단 자살한 곳이다. 19969월 북한 무장공비들이 동해로 침투 중 타고 온 잠수함이 좌초하여 이 능선으로 도주한 사건을 계기로 괘방산에 '안보체험 등산로'가 개설되었다고 한다. 당시 침투했던 잠수함은 산 아래 통일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청학산 지능선 너머로 석병산에서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보인다.

 


시멘트 도로에서 등명낙가사 방향으로 하산한다. 산행 날머리 괘방산 중턱에 있는 등명낙가사(燈明洛伽寺)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慈藏)이 창건했는데 절 이름이 수다사(水多寺)였다. 신라 말에 어두운 밤 가운데 있는 등불 같은 곳이라 하여 등명사(燈明寺)로 불리다가, 근래에 관세음보살이 늘 머무는 곳이라 하여 낙가사(落迦寺)’로 정하면서 옛 사찰명인 등명을 앞에 붙여 등명낙가사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괘방산 자락에 깊숙이 안겨 호젓한 산사의 정취를 풍기는 이곳은 정동진과 더불어 강릉의 해돋이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규모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찾는 이가 많지 않아 꽤나 고즈넉한 정경이다.


일주문 옆으로 용들을 등에 이고 있는 거북상과 해태상이 절집을 수호하고 있다.

 

일주문 아래 정동(正東)을 가리키고 있는 대형 나침반



삿됨을 여의고 절집에 올라가야 한다. 일주문 앞에서 삼배 올리고 가람에 들어서자 좌우로 키 큰 소나무들이 도열하여 절집을 찾은 속인들을 반겨준다. 왼쪽으로는 부도전이, 오른쪽으로는 등명감로약수터가 나오는데 약수에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시큼한 맛이 강하다. 제주도의 방사탑을 연상케 하는 돌탑들을 지나면 영산전, 극락전, 삼성각 그리고 약사전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갈림길에는 배불뚝이 포대화상이 있다. 골목서 마주치는 이웃 같이 편한 얼굴이다. 교만을 버리고 절하게 하는 곳이 절집이다. 영산전과 극락보전 아래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만들어주는 시원한 그늘은 자연이 주는 훈훈한 선물이다.

 

배를 세 번 어루만지면 큰 복을 얻는다는 등명낙가사의 포대화상


만월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 전각으로 '약사전(藥師殿)'이라고도 불린다. 등명사지 오층석탑은 경내 만월보전 앞에 서 있는 석탑으로 이곳은 원래 절이 있던 자리다. 이 석탑은 기단부의 장식과 탑 몸체부 등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같은 층의 옥개석과 탑신석을 하나의 돌로 만든 점이 독특하다고 한다.


 

등명사지 오층석탑과 약사전. 가람의 배치가 절묘하다.


오층석탑 아래에는 일출 명소인 관일루(觀日樓)가 있다. 당실당실 구름 떠가는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선사들은 저 눈부신 것에 매이지 말고 얽매인 자신부터 자유롭게 풀어놓으라고 귀띔했다. 바람처럼 자유롭게 드나드는 곳이 절이다. 이곳에 앉아 일망무제의 바다를 보니 업경대 같이 느껴져 마음 한구석을 저미게 한다. 한참을 쳐다보니 두 눈은 바닷물이 든 듯 푸른빛이 감돈다.



이층누각 관일루. 약사전으로 올라가는 통로다.

 

 

관일루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여기가 일출 명소다.

 


 

선선한 바람이 자유로이 드나드는 관일루에서 잠시 무념의 경지에 들었는데 같이 온 동무가 내려가자고 재촉하는 바람에 마음 내키지 않지만 누각에서 내려선다.

 

오후가 깊어가는 바닷가 절집의 일주문을 나서는데 독경 소리 대신 갈매기 울음소리만 들려온다.

 

 

 

여계봉 선임기자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20 17:58 수정 2020.06.20 18:00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