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로 칼럼] 쉽지 않다

임이로

쉽지 않다.

 

요즘 들어, 정말 쉽게 들리는 말이다. 단어 하나 쓰고 지우는 게 일상인 내게는 ‘쉽지 않다’는 그 한 문장이 주는 뜨거운 한숨 같은 무게감, 즉 ‘어렵다’고 직접 말하지 못하는 가시 방석에 앉은 그 묘한 쿠션감(?)이 괜시리 오묘하다.

 

쉽지 않다라. ‘어렵다’는 말보다 무언가 탄식에 젖은 말이다. 그리고 내심 한번 더 생각한 듯 그 말을 꺼내는 심사숙고한 화자에게, 사실 상대가 할 말을 잃기에 좋기도 하다. 그래. 우리가 하는 일에 쉽지 않은 것은 없더라.

 

하지만 그저 어렵다고,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조차 꺼려지는 사회의 만연한 분위기가 만들어낸 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럴 바에야 차라리 말장난이나 하는 편이 낫겠지 싶다.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차라리 쉽겠다!

 

사회생활을 여럿 겪다 보면, 내 잘못이라고 여겨진 것은 사실 내 잘못이 아닌 경우가 있고, 내 책임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것은 사실 내 책임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일을 여러 차례 겪다 보면, 속이 갑갑해지고 맹맹해진다. 우리는 그럴때 조차 감히 스스로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지 않는 게 아닐지.

 

우리는 ‘쉽지 않다’는 그 유행 같은 말에, 무엇을 담아 말하고 있는가.

어쩌면 그 말은 불편한 어떤 진실을 가리고 있는 얇은 막일지도 모른다. 어렵다는 말 대신, 힘들다는 말 대신, 혹은 잘 모르겠다는 말 대신 덮어놓는 천. 그렇게 하면 당장은 누구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상황도. 모든 것이 잠시 둥글게 봉합된다.

 

하지만 둥글게 봉합된 말들은 때때로 진짜 모양을 잃는다. 무엇이 어려운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누구의 책임인지가 흐릿해진다. 말이 부드러워질수록 현실은 조금씩 흐려진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우리는 그런 굴레 속을 엉금엉금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쉽지 않다’는 말이 조금 구슬픈 협주곡 같다. 그 말에는 종종 말 못 할 사정과, 케케묵은 피로와, 떼 묻은 감정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애매한 문장 안에서 그것들은 서로 부딪히며 울리고 있다. 아니, 울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 한 걸음 뒤로 물러난 표현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덜 상처받고, 조금 덜 책임지고, 조금 덜 어렵기를 바라면서.

 

정말... 쉽지 않네요.

 

 

[임이로]

시인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시집 <오늘도 꽃은 피어라> 

메일: bkksg.studio@gmail.com

임이로의 비껴서기 bkksg.com

 

작성 2026.03.06 10:46 수정 2026.03.0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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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