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불과 반 세기 전 우리들의 자화상

이봉수

이정민 기자

작성 2020.06.27 10:48 수정 2020.06.27 13:04




풀대죽은 하늘이 비치는 멀건 죽이다.

어릴 때 별명이 풀대죽인 친구가 있었다.
하도 가난했던 시절이라
하루에 풀대죽 한 그릇 만이라도
먹고 싶다고 해서 붙여준 별호(별명)다.

그 집 할배가 하도 노랭이 짓을 해서
사람들은 '짠이 영감'이라고 불렀다.
며느리를 어찌나 부려 먹는지
온종일 밭에서 기다가
땔나무 두 짐을 이고 되짐빼기로
장에 팔러 가기도 했다.

풀대죽이 두 살 먹었을 때
빨가벗은 놈을 문고리에 광목 끈으로 묶어 놓고
밭에 지슴(잡초) 매러 갔던 그 아지매는
힘들고 배가 고파 한이 맺혔다.

여름날 숲속에서 산비둘기가 우는데
풀대죽이 따라 흥얼대는 소리를 들었다.

"구꿍 구꿍 ~ 구꿍 구꿍~
  구빱 한 그륵 우찌 무우꼬?"

풀대죽보다는
국밥 한 그릇이 먹고 싶어서
비둘기와 주고 받는 노래였다.

하기사 그 시절에 보릿고개가 되면
나도 삶은 고오매(고구마) 한 뿌리로
하루를 견디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 제법 자라서 열 서너 살 때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하러 다녔는데
용을 쓰며 나무를 한 짐 지고 와도
짠이 영감이 하는 말,

"야 이너무 자슥아!
깐챙이(까치) 집을 뜯어도
그거 보다는 많겄다.

불에 사라가지고(태워서)
니 밥그륵에 함 담아 봐라."

오늘 소나기 내리는 숲속에서
비둘기가 구꿍 구꿍 울어대니
불현듯 풀대죽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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