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완 칼럼] 세계를 이끌어온 동아시아의 과학과 발명 (2)

최용완

2. 흙산(mound)과 적석총(pyramid)

 

농사지으며 감음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려 저수지를 파고 남는 흙으로 작은 동산을 짓고 동산 위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한반도 남단에 방죽 옆에 흙산(mound)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흙산은 큰 무덤이 되어 한반도에 큰 무덤은 왕묘들로 보존되고 있다. 흙산은 북미 원주민 문화로 전해져서 오대호 지역에서 미시시피강을 따라 수천 곳에 유적을 남기었다.

 

한반도에서 멀리서 큰 바위를 끌어와 짓는 고인돌은 적석총(pyramid)으로 발전하였다. 요하지역에 이르며 금속 도구로 바위를 네모로 만들어 층단식 적석총이 나타난다. 피라미드 문화는 홍산문화의 특징이며 만주 집안현 지역과 서안시 외곽에 수없이 많은 피라미드 유적을 볼 수 있다. 2,000년 후에 이집트로 전해지고 미대륙 원주민 문화로 전해진다. 피라미드 위에서 기우제를 올리는 문화는 중미 마야문화로 전해지고 적석총 무덤은 이집트로 전해졌다.

 

3. 천문학과 음양오행(陰陽五行)

 

동아시아의 농업이 발달하면서 천문을 관측하고 기후변화를 이해함은 필연의 과정이었다. 고구려 때 작성한 별자리 그림에 90개의 별자리에 1,467개의 별이 그 밝기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그려져 있다. BC 17347월 중순 저녁 서쪽 하늘에는,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화성·수성·토성·목성·금성 순서로 오성이 늘어섰다. 달과 해 사이에 오성이 주옥처럼 늘어섰다. 오차가 1년 있기는 하지만 오성취루를 처음으로 검증한 천문학자는 고()라대일 박사와 박창범 박사다.

 

하늘을 우러러 조상의 혼과 자연을 관리하는 신의 신비를 느끼고 그 원리를 배우려 일찍부터 천문학과 함께 음양오행 사상이 발달하였다. 음과 양(周易 ; I-Ching: Book of Transformations)의 균형을 이해하여 종교, 과학, 수학의 시원이 된 우리 문화의 뿌리다. 우주의 운행, 자연 사물의 인과응보, 사람 운명의 흐름이 음양오행으로 운영되는 원칙으로 이해되었다. 한반도에서 시작하여 고조선과 고구려로 그리고 조선시대까지 적용된 종교적 이념이었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의 왕궁 어좌 뒤에 그려진 오악도는 달()과 해() 그리고 다섯 산봉우리(오행)를 그려 음양오행을 뜻한다. 근정전 상월대 돌기둥 머리 위에 사신상이 자리하고 하월대에 십이지 신상이 배치됐다. 왕은 천명을 이어받아 국사를 다스림에 음양오행(우주)의 천리를 따르라는 뜻이다. 음양오행은 신이 자연을 관리하는 질서이며 왕이 국사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4. 음악과 악기

 

노래하고 춤추는 감정은 고등 동물이 가진 본능이다. 사람도 말을 배우기 이전부터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아기의 자라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다. 인류의 단체생활에 원시시대부터 반드시 필요했다. 동아시아의 국가가 설립되고 궁중의 음악이 형식화되면서 음악 정책이 나타난다. 우리 민족의 노래와 춤은 문자가 나타나기 전부터 전해오는 인류 문화의 시원이었다.

 

한나라 때 사학자 사마천은 그의 <사기>에 악서(樂書)를 서술했다. 기원전 2070부터 시작하는 하은주 시대에 사람이 모인 곳에서 음악을 사용하여 인간 감정을 조절했다고 한다. 좋은 음악을 연주하면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좋은 일을 했고 정치가 안정되고 왕업이 성취되면 예악(禮樂)이 일어나 즐거움을 절제하고 예와 덕을 유지했다고 한다.

 

요순시대(중국 역사 이전에 고조선 시대)의 순임금은 다섯 줄의 거문고를 제작하여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노래했고 선왕은 금석사죽(金石絲竹)의 악기들을 제작하여 5()12()을 따라 악보를 만들고 연주하였다. 70가수로 형성된 합창단을 이루고 음양간유(陰陽剛柔)의 융합으로 조화를 이루었다고 기록하였다. , 노래, 춤이 동반하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민속음악에서는 피리·대금·해금·가야금·거문고·장구·북 등의 악기들을 구비하였다. 한국 전통 악기는 60여 종에 이른다. 궁중에서 연례악, 행진곡, 문묘제례악에 따라 악기의 선택과 배치가 달랐다. 하나라 시조 복희씨는 음양사상을 가르치고 악기를 제작하여 연주하였다고 한다.

 

5. 그림, , 지도와 조각 예술

 

고인돌 문화의 청동기 시대에 손칼로 바위에 음각 그림을 그려서 몽골 초원에 셀 수 없이 많은 유적을 남겼다. 그림의 뜻을 읽게 되며 바위에 그린 그림은 문자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그림 문자 (pictogram), 상형 문자(象形文字), 표의문자(表意文字 ideogram)가 나타나며 시간과 공간의 제한 없는 소통이 이루어졌다. 옷감에, 대나무에, 갑골에, 흙그릇에 문자를 남겼다. 서남아시아 스메르 문명에 전해지고 중미의 마야문명에 전해졌다.

 

사찰이나 궁성을 짓기 전에 가람(site plan)을 그렸다. 거마(車馬 chariot)의 발달로 도시계획을 그려서 격자형 도시들이 나타났다. 나라의 지형을 그렸다. 백제 때 동남아시아 해양도를 그려서 항해했다가 신라 장보고 때 더욱 발달하였다. 3세기 중국의 진나라 지도 제작자인 배수(裵秀224~271)는 지도제작의 6가지 원리를 설명하였다. 당나라 때 미대륙을 포함한 세계지도가 나타나고 원나라 때 거의 완성되었다가 명나라 정화제독이 미대륙을 왕래하였다. 그때부터 세계 항해지도는 서유럽 포르투갈에 전해져서 유럽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손칼로 옥돌을 다듬기 시작하여 옥돌 조각은 요하문화에서 수없이 많은 종교적 유물로 발굴되었다. 룡의 옥돌 모습이 홍산문화에서 처음 나타났다. 중국 룡의 문화는 우리민족의 문화에서 시작하였다. 상나라의 옥돌문명은 미대륙 마야문명으로, 이집트로 전해졌다. 석굴을 조각하여 용문, 운강, 돈황, 아잔타, 석굴들을 지었다. 석조건축과 조각은 지중해에 전해져서 그리스의 파르테논은 동아시아의 목조건축을 석조로 조각한 신전이다.

 

6. 바퀴, 인력거, 달구지, 거마(車馬 chariot)

 

농사를 지으며 연자맷돌을 만들어 돌리고 물레바퀴를 돌리며 바퀴의 개념은 일찍부터 한반도에서 시작하였다. 바퀴 하나로 짐을 나르는 일륜차(wheelbarrow), 두 바퀴 수레, 소가 끄는 달구지, 사람을 태우고 사람이 끄는 인력거, 만주지역에 이르러 바퀴 둘을 말이 끄는 마차와 거마(車馬 chariot), 이들 바퀴의 진화가 성장하여 현대문명에까지 전해진 과정은 동아시아에 만 있다.

 

거마(車馬 chariot)는 강철 바퀴와 축이 고속도의 회전을 감당하면서 금속문화의 첨단기술을 필요로 한다. 말과 함께 살아온 유목민이 오랫동안 목축생활에 바퀴문화를 알게 되고 금속문화의 혜택을 가진 동아시아의 사회환경에서만 발명이 가능하였다. 고구려 고분 안악 3호의 벽화에 고구려의 거마가 2곳에 그려져 있다. 행렬도에 주인공이 타고 가는 광경과 부엌 앞에 세워진 사냥하는 수레를 본다. 고구려 벽화는 홍산문화와 고조선문화를 보존해온 동아시아 고유의 오랜 전통을 고스란히 보존해왔다. 고구려 문화는 수만 년 수천 년의 인류 문화 발생과 진화의 과정을 외래의 변질 없이 잘 보존해온 기록이다. 고구려는 세계적 최강국이었다.

 

<동아시어는 인류 문명문화의 어머니> 최근에 새로 출판된 책에서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최용완]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전 문교부 문화제 전문위원 역임

미주문협 신인상 수상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에세이포레 신인상 수상

 

최용완 ywbryanc@gmail.com



 

편집부-전명희 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6.29 13:31 수정 2020.09.1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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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