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합포해전지는 어디인가?

사료를 바탕으로 현장 실측 검증에 나선 사람들

인터넷 카페의 담합으로 역사적 사실 왜곡될 수 없어

서문강 기자

작성 2020.07.05 13:07 수정 2020.07.05 22:57
합포해전지 현장 실측 검증에 나선 사람들


1592년 음력 5월 7일(양력 6월 16일) 정오 경에 이순신 함대는 거제 옥포에서 임진왜란 최초의 해전 승리를 거두고 거제도 북단의 영등포(永登浦, 현 거제시 장목면 구영리)로 이동하여 정박하고 있었다. 이때 척후장으로부터 멀지 않은 바다에 적선 5척이 항행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여러 장수들을 시켜 신시(오후 4시) 경에 추격하여 합포에서 적선 5척을 모두 불태워 없애고 승전한 것이 합포해전이다.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보고한 옥포파왜병장(玉浦破倭兵狀) 중에서 합포해전과 관련된 내용의 원문과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신시량 불원해중 우왜대선오척 과거시여 척후장보변위백거을 령제장추축 지웅천지합포전양 왜적등기선 등육위백거을 사도첨사김완 왜대선일척 방답첨사이순신 왜대선일척 광양현감어영담 왜대선일척 동부통속방답적거 전첨사이응화 왜소선일척 신의군관봉사변존서 송희립 김효성 이설등 동력사시 왜대선일척 위등여무유당파분멸 승야촉로 지창원지남포전양 결진경야

申時量 不遠海中 又倭大船五隻過去是如 斥候將報變爲白去乙 領諸將追逐 至熊川地合浦前洋 倭賊等棄船登陸爲白去乙 蛇渡僉使金浣 倭大船一隻 防踏僉使李純信 倭大船一隻 光陽縣監魚泳潭 倭大船一隻 同部統屬防踏謫去前僉使李應華 倭小船一隻 臣矣軍官奉事卞存緖 宋希立 金孝誠 李渫等 同力射矢 倭大船一隻爲等如無有撞破焚滅 乘夜促櫓 至昌原地籃浦前洋 結陣經夜"

"신시(오후 4시 전후) 경에 멀지 않은 바다 가운데 또 왜선 5척이 지나간다고 척후장이 보고하옵거늘 여러 장수들에게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웅천땅 합포 앞바다에 도착하니, 왜적들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버렸습니다.

사도첨사 김완, 방답첨사 이순신, 광양현감 어영담이 각기 왜군 대선 1척을 불태워 부수고,  방답진에 귀양 와 있던 전 첨사 이응화가 소선 1척을 격파하고 저의 군관인 봉사 변존서와 송희립 김효성 이설 등이 힘을 합해 활을 쏘아 왜군 대선 1척을 격파했습니다. 당파전술로 불태워 없애니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밤중에 노를 재촉하여 창원 땅 남포 앞바다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밤을 새웠습니다"

여기서 합포해전지를 비정(比定)하는데 필요한 핵심적 내용은, 1) 거제 영등포(현 거제시 장목면 구영리)에서 조선수군이 오후 4경 추격에 들어갔다는 사실, 2)합포 앞바다까지 추격했더니 왜적은 배를 버리고 상륙했다는 사실, 3) 전투를 종료하고 밤에 노를 저어 남포로 와서 정박한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합포해전지가 어디인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합포(合浦)는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산호공원 아래라는 주장과, 창원시 진해구 행암동 학개(鶴浦) 마을이라는 주장이 크게 맞서고 있으며, 합포만 안의 제3의 장소라는 주장도 있다.

이충무공전서를 국역한 노산 이은상과 조성도 전 해군사관학교 교수는 우리나라 이순신 연구에 있어 탁월한 업적을 남긴 학자들이며, 이순신 장군의 해전현장을 누구보다도 많이 답사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합포해전지를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으로 비정(比定)했고 이것이 그동안 역사학계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일부 연구자들이 옥포파왜병장(玉浦破倭兵狀)에 나오는 '웅천 땅 합포(熊川地 合浦)'라는기록을 바탕으로 합포해전지는 '창원 땅'이었던 '마산 합포'가 아니라 '웅천 땅'인 '진해 학개'라고 주장하면서, 상황론적으로 해전 당일 오후 늦게 마산까지 들어가서 해전을 치를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일방적 주장만 믿고 창원시는 정확한 고증이나 검증 절차 없이 진해 학개 일대에 합포해전지라는 안내표지를 세우고 승전 둘레길까지 만들어놓은 상태다.


네이버 지도 기반 상황도


 

이런 논란을 실측으로 검증해보기 위해 지난 6월 16일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대표 김성곤)와 서울의 이순신전략연구소(소장 이봉수)가 전국의 이순신 마니아 10여 명과 함께 요트를 타고 판옥선의 속도로 항행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진해 학개'부터 1차로 검증하는 행사를 가졌다. 날짜를 16일로 잡은 것은 그날이 양력 기준으로 합포해전이 있었던 날이며, 그렇게 해야 임진왜란 당시와 꼭 같은 일출과 일몰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월 16일 오후1시 창원시 성산구 귀산동에서 요트를 빌려 바다로 나선 이들은 거제도 북단의 영등포(현 거제시 장목면 구영리)에 도착하여 이순신 장군이 말한 신시 기준 오후 4시 정각에 건너편 진해 학개(학포)를 향해 출발했다. 속도는 임란 당시 판옥선 속도를 감안하여 시속 7km 전후로 맞추었다. 학개에 도착한 시간은 4시 55분이었다. 


진해 학개에서 전투에 소요된 시간을 감안하여 30분 정도 대기하고 있다가 5시 25분에 다시 같은 속도로 출발하여 마산합포구 구산면 남포(현 지명은 난포)로 향했다. 6시 35분에 남포에 도착하여 하늘을 보니 아직 해가 지지 않은 대낮이었다. 진해 학개에서 30분을 지체했지만 전투 소요 1시간 정도를 추가로 계산해 넣더라도 최소한 일몰 전인 7시 35분에는 남포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진해 학개는 합포해전지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왜냐하면 이순신 장군은 그날의 기록인 '옥포파왜병장(玉浦破倭兵狀)'에서 합포해전을 마치고 나서 "밤을 타고 노를 재촉하여 창원 땅 남포 앞바다로 와서 진을 치고 밤을 새웠다(乘夜促櫓 至昌原地籃浦前洋 結陣經夜)"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탐사팀은 7월 4일 2차 항해에 나섰다. 지금까지 정설이었던 합포해전지가 마산 산호공원 아래라는 것을 실측으로 검증해 보기 위해 일몰 시간이 6월 16일과  비슷한 날을 잡아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조현근 사무국장은 "거제시 장목면 구영리(임진왜란 당시 영등포)에서 출발한 시간이 16시 08분 이었습니다. 시속 7km 속력으로 달려 마산 산호동까지 가서 도착해보니 18시 55분이었습니다.  2시간 47분만에 도착했습니다. 다만 회원천 입구의 오산진이 있었다고 하는 곳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수심이 낮아서 배가 더 이상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도착한 곳은 용마맨션이 있는 곳이었으며 용마맨션에서 오산진이 있었던 곳까지는 대략 400미터가 되지 않는 거리라 늦어도 19시까지는 도착을 하였을 것입니다. 오늘의 일몰 시각은 19시 44분이고 합포해전 당시 일몰 시각은 19시 42분입니다. 즉 일몰이 되기 전에 마산 산호동까지는 도착이 가능 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일단 현재 합포해전지가 산호동(용마산 아래)이라고 하는 부분도 '아니다' 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임진장초에 적혀져 있는 웅천 땅 합포라는 부분이 있지만 일단 시간상 영등포(거제 구영리)에서 마산 산호동까지 충분히 올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이번에 증명되었습니다."

이날 일몰 시각은 19시 44분이지만 날이 어두워지는 것은 20시 20분 경이다. 캄캄해지는 것은 20시 30분이 되어야 한다. 산호동에 18시 55분에 도착했다면 어두워질 때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다. 이 정도 시간이면 적이 상륙하면서 버리고 간 적선 5척을 쉽게 분멸하고 '밤을 타고 노를 재촉하여 남포 앞바다로 왔다'는 이순신 장군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번에 2차에 걸친 실측 항해를 통한 과학적 검증 결과가 나오자 진해 학개를 합포해전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제 영등포에서 신시(오후 4시)에 조선수군이 즉시 추격에 들어갔다는 기존의 자신들 주장을 번복하고, 신시에 척후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출항하려면 유시(6시)는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아전인수식 추측일 뿐 임진장초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웅천땅 합포'라는 기록에 집착하여 엉뚱한 학포(鶴浦)를 합포(合浦)라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하여 이봉수 소장은 "협소한 마산 합포만은 그 서측이 창원땅이고 동측은 웅천땅이었다. 배를 타고 전투를 했던 합포만 해상(合浦前洋)은 창원땅도 아니고 웅천땅도 아닌 바다 가운데다. 육지에 있는 마산 합포는 창원 땅이지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웅천 땅 경계와 접하고, 진해 땅(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 일대) 경계와도 인접해 있다. 이순신 장군은 전란 중 경황이 없어 가끔 행정구역의 경계에 인접한 특정 지명이 어느 땅 관할에 속하는지를 두고 착오를 일으킨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1592년 6월 14일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 '당포파왜병장'에는 창원 땅과 웅천 땅의 경계에 있는 섬 '증도(甑島, 마산합포구 구산면 원전리 실리도 일명 시리섬)'에 대해 6월 7일에는 '웅천 땅 증도'라 했다가, 다음날인 6월 8일에는 '창원 땅 증도'라고 했다. 1592년 5월 29일 사천해전 직후 하룻밤 묵고 간 '사천 땅 모자랑포(毛自郞浦)'를 1593년 9월 1일 일기 말미에 기록한 잡록에서는 '고성 땅 모사랑포(毛思郞浦)'라고 한 적도 있다. 모자랑포는 사천 땅이지만 고성 땅 경계와 가까운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합포의 경우에도 창원 땅이지만 '웅천 땅 합포'라고 할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웅천 땅 합포(熊川地 合浦)'라는 기록도 이순신 장군의 단순한 착오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창원 땅과 웅천 땅을 통틀어 고지도와 문헌을 통하여 샅샅이 찾아봐도 그 당시 합포라는 지명은 현재의 마산 합포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팔도도 중 경상도지도



이봉수 소장은 지명의 음차(音借)조차도 맞지 않는 진해 학포(鶴浦)를 합포(合浦)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문학적으로 따져봐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리고 해동전도, 동여도, 대동여지도, 조선팔도도 중 경상도지도 등 조선시대 고지도를 다 조사해본 결과 현재의 진해만 일대에 합포라는 지명이 있는 곳은 마산 합포가 유일하며, 진해 학개에는 아무런 지명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약간 떨어진 곳에 완포(莞浦, 현 해군 진해기지사령부)와 풍덕포(豊德浦, 현 해군사관학교)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해동전도 창원부 지도를 보면 창원부 서면(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합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창원부 지지(地誌)에는 합포의 위치와 역사적 내력 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합포 재부서 고려시 정일본 조선급열병 개어차포(合浦 在府西 高麗時 征日本 造船及閱兵 皆於此浦), 합포는 창원부의 서쪽에 있는데, 고려 때 일본 정벌 당시 배를 만들고 열병하는 것을 모두 이 포구에서 했다"로 해석된다.


일본 해군성이 발행한 마산포지부도수도(馬山浦至釜島水道)



그런데 최근에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진해 학개가 합포해전지라는 지도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역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카페 회원이 제시한 지도는 1899년(明治 32년)에 일본 해군이 측량한 것을 1904년(명치 37년) 5월에 수로부에서 발행한 해도(海圖)다. 해도명은 '마산포지부도수도(馬山浦至釜島水道)'로 마산포에서부터 부도(釜島)까지 가는 물길을 그린 지도다. 부도(釜島)는 현재의 진해 해군사관학교 인근에 있는 섬이다.


합포말(학개끝, Hakke Kutsu)



이 지도에서 표기한 합포말(合浦末)은 합포가 아니고 '합포의 끝'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합포는 더 안쪽 내만에 있고 이곳은 합포의 끝자락에 있는 돌출 지형인 곶(串)으로 봐야 한다. 영문 표기 'Hakke Kutsu'는 우리말 '학개 끝'을 일본식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해도에 나타난 합포말(合浦末)은 조선시대 웅천현의 지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20세기 이후 일제 강점기 전후 이곳에 '학개 끝(合浦末)'이라는 지명이 등장했다고 봐야 한다. 이후 이곳에 사람이 사는 작은 동네가 생겨 학포(鶴浦, 학개)라는 지명으로 변천된 것으로 보이며 2003년도 진해시 행정지도에는 분명하게 학개(鶴浦)로 표기되어 있다.

2003년도 진해시 행정지도에 표기된 학개(鶴浦)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가 실시한 두 차례의 과학적인 해전현장 실측 검증과 이순신전략연구소가 제시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료와 고지도의 내용을 무시하고, 조선의 지도도 아닌 근세에 일본 해군이 작성한 해도를 근거로 '합포의 끝자락(合浦末)'인 진해 학개가 합포해전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은 "역사적 사실이 인터넷 동호인 카페 회원들의 인민재판식 담합에 의해 왜곡될 수는 없다. 합포해전지는 엄연히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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