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프로젝트] 교과서 밖에서 교과서를 만나다

김완수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8.14 10:23 수정 2020.08.14 10:40



내 지난했던 청소년기를 돌아보면 당시 교과서라는 존재를 가까이하기만 해도, 아니 교과서라는 말만 들어도 고리타분하고 무미건조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할 만큼 나는 교과서와 그리 친하지 못했던 것 같다. 교과서라는 개념은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들에게 곁의 친구이기보다는 권위적이고 틀에 박힌 대명사에 가까우리라. 물론 요즘의 교과서들은 개정을 거듭할수록 다양한 읽을거리와 풍성한 시각적 자료들을 갖춰 예전의 획일적이었던 교과서와의 단순 비교가 무리겠지만, 여전히 교과서는 한국인들의 정서에 으레 딱딱한 어감으로 인식돼 있어 교과서는 우리 기존의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나는 학원을 운영하며 청소년들을 지도하다가 언제부턴가 예전의 교과서들에서 단순한 기억 이상의 추억을 더듬게 됐다. 특히 국어 국문학을 전공해 국어를 지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자 차츰 내 예전 중고생 때의 국어 교과서에 수록돼 접할 수 있었던 문학 작품들의 제목이나 구절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라 아련한 마음을 갖게 했는데, 싱숭생숭한 마음에 일부러 그 작품들을 다시 접할 때마다 나는 흐릿하나마 학창 시절의 애틋한 추억의 편린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것도 직업병이랄 수 있을까.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교과서에 수록되는 작품들도 갈아들게 돼 갈수록 예전의 작품들을 다시 접하기가 어려운 요즘, 나는 일터에서의 수업 시간이면 틈틈이 학생들에게 예전의 작품들을 소개해 주고, 밖에서 친구들과 반가운 모임을 가질 때면 학창 시절에 배웠던 작품들을 화두로 꺼내 자리를 추억 공유의 장()으로 이끌기도 하는 새로운 습관을 갖게 됐다. 가끔은 내가 나이가 들수록 청승맞고 구태의연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면서도 마치 추억의 전도사나 우리 문학 홍보 대사라도 된 듯한 뿌듯함이 앞서 나는 지금까지 그 습관을 견지해 오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내 습관의 기원은 아마도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여름에 고교 친구와 함께 충남 계룡산 국립공원으로 23일 간의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부터가 아닌가 싶다당시 전주에서 대전의 유성을 경유해 버스 편으로 계룡산 국립공원 내 동학사에 도착한 우리는 애초 절의 경내를 대강 둘러보고서 산을 올라 중턱에 자리한 은선폭포 인근의 산장(안타깝게도 지금은 철거된)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관음봉에 오른 후 동학사로 하산해 집으로 돌아가는 간소한 여정을 계획했었다.


그런데 첫날밤을 묵었던 산장에서 저녁을 먹을 때 부식(副食)이 변변찮았던 우리에게 산장 관리인 모자(母子)가 반찬을 선뜻 건네줘 함께 오순도순 밥을 먹으며 여행지에서의 적적함과 부족함을 따스한 인심으로 채우던 일이 우리의 향후 여행 일정을 상서롭게 해 준 것일까. 다음 날 아침에 관음봉에 올라 쉬다가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 여행객 모자에게서 충북의 속리산 국립공원을 여행한 후 돌아가려다가 교과서에서 접했을 때 인상 깊었던 수필 제목이자 수필 속 주요 여정인 갑사로 가는 길을 가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일부러 계룡산을 찾았다는, 뜻있는 사연을 들은 일은 우리의 여행을 신선하게 해 주는 청량제 역할을 했다. 그 자리에서 인연이라는 공감 하에 우리의 카메라로 함께 찍은 사진을 내가 차후에 편지로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거리낌 없이 서로의 주소를 주고받았던 일은 지금도 내게 산에 오르면 모든 사람이 어질 수밖에 없다는 진리로 각인돼 있다.


그랬다. 나는 어쩌면 내가 운명적으로 선택했다고도 할 수 있는 그 여행지에서 여행과 자연을 좋아한다는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여행의 참된 의미는 물론이고 한없는 깊이를 가진 교과서 속 문학 작품을 자신의 삶으로 확장하는 지혜를 함께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 여정을 급히 수정해 갑사로 가는 길을 포함시켰다. 고교 시절에 교과서를 통해 이상보 수필가의 갑사로 가는 길을 배울 당시만 해도 나는 건성으로 작품을 접한 탓에 수필 속 여정을 미처 주의 깊게 인지하지 못했었지만, 뒤늦게 그 가치를 발견하고서 동학사에서 새로운 기분으로 갑사로 향했던 것이다.


아기자기하면서도 편안한 오르막길을 오르는 동안 여행객을 반겨 주듯 도란도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벗 삼으며 친구와 감흥을 주고받다가 어느새 당도한 상원암(옛 계명정사)과 남매탑(오뉘탑). 마치 암자와 탑, 그리고 탑과 탑이 애잔한 전설 그대로 서로를 지켜주듯 의좋게 마주 보며 지그시 서 있는 모습은 갑사로 가기까지 제법 진득한 산행을 해야 하는 우리의 심신을 적잖이 달래 줬는데, 그 갑사로 가는 노정(路程)의 반쯤에서 우리는 도시에서 늘 지니고 살듯 해 자연에서까지 쉽게 버릴 수 없었던 조급증이란 무거운 마음의 짐을 잠시나마 풀고서 땀을 식힐 수 있었고, 그 후 들뜨면서도 부산하지 않은 설렘을 안고 갑사로 다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계룡산과 갑사를 다녀온 후의 여흥 때문에 한동안 상사병을 앓는 사람처럼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아프거나 원망 어린 감정이 아니라 도회 생활의 때를 벗을 수 있었던 데 기인한 그립고도 홀가분한 감정이었다. 왜 이제야 더 너른 세상을 발견해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나 하는 후회가 든 것도 사실이었지만, 불도를 깨달은 수도승의 마음처럼 가슴 벅찬 기쁨이 앞섰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뿌듯한 기분의 절정을 만끽하고 싶은 심정에 즉시 스스로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을 찾아 몇 번이고 정독했다.


수필을 읽고서 새삼 느꼈던 바지만, 거금(距今) 사십여 년 전에 쓰여진 갑사로 가는 길에서 수필가가 밟은 여정은 물론이고 그 견문과 감상까지 내 경우와 사뭇 닮아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여행지에서 접한 사연이 무의식중에 의식에 반영돼 우리가 수필가의 앞섰던 길을 되밟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사람들과의 인연과 교과서가 매개가 돼 뒤늦게나마 우리가 우리의 길을 스스로 찾아 떠난 것만은 분명하지 않았나 싶다. 작품 속에서 한겨울의 주말을 택해 일행 세 명과 함께 동학사에서 바로 갑사로 떠났던 수필가의 처지와 우리의 처지는 다르다면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뭐, 대수겠는가. 여행의 감흥으로 여행지에서 조금이라도 더 머무르고 싶었던 여행객의 심사(心事)는 어차피 매한가지였던 것을.


나는 교과서 밖에서 교과서를 만났다. 그리고 교과서 밖에서 만난 교과서에는 비단 감동이나 교훈, 지식뿐만 아니라 사람의 향기와 삶의 풍취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교과서 속 아름답고 오묘한 세상은 늘 교과서 밖 세상과 자유롭고도 은근하게 소통하며 더 너르고 반듯한 길을 사람에게 제시해 주고 있었는데, 나는 운 좋게 그 창문을 발견하고 커튼을 열어젖혀 광명처럼 환한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교과서를 삶의 진솔한 보물을 찾도록 안내해 주는 보물 지도에 비유하고 싶다.


비약일진 몰라도 교과서는 부지불식간에 내 의식을 눈뜨게 해 준 경전이요, 교과서가 함께한 내 여행의 추억은 지금도 내 가슴 한편에서 오롯이 자라고 있는 생명수(生命樹)가 아닐까 싶다. 학창 시절에 만난 이후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지금껏 내 내면의 성장에 기꺼이 부단한 무상의 자양분이 돼 온 교과서. 우리 모두 그 속에 내포된 삶의 무한한 가치를 찾고서 도적같이 발견할지 모를 깨달음으로 자신의 메마른 가슴에 한 그루 희망의 나무를 심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조만간 오붓이 혼자 하는 여행이더라도 갑사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아 내 즐거운 추억을 새록새록 되밟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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