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이순신 전적지 답사

옥포해전 당시 이순신 함대 이동경로 답사

거제도 남단 송미포에서 출발하여 도슬포, 조라포, 지시포, 양암 경유 옥포로 진출

사진=코스미안뉴스 / 송미포(다대리)
사진=코스미안뉴스 / 도슬포(도장포)
사진=코스미안뉴스 / 조라포(구조라)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싸워 최초로 승리한 옥포해전 당시 조선수군의 이동경로를 알아보려면,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보고한 옥포파왜병장 기록과, 안방준(1573~1654)의 '은봉전서' 기록을 살펴보아야 한다.

옥포파왜병장이 현장 지휘관이 임금에게 보고한 공문서라면, 은봉전서는 개인 문집이다. 두 기록을 비교해 보면, 당시의 상황이 유사하게 묘사된 측면도 있지만, 날짜는 일치하지 않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옥포해전이 1592년 5월 7일인데, 은봉전서에는 5월 8일로 기록했다.

은봉전서의 '임진기사'는 1592년 4월 왜란이 시작된 이래 1개월간 조야의 정황을 간략하게 기술한 것이며 부산기사, 노량기사, 진주기사 등도 임진왜란에 관계되는 기사이다. 이 중에서 옥포해전 당시 이동경로는 부산기사에 기록되어 있다.

먼저 옥포파왜병장에 나오는 조선수군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자. "거제도 송미포 앞바다에 이르자 날이 저물어 밤을 지냈습니다. 7일 새벽에 일제히 배를 출발시켜 적선이 정박하고 있다는 천성 가덕으로 함께 가다가 정오경 옥포 앞바다에 이르렀습니다. 우척후장 사도첨사 김완과 여도권관 김인영 등이 신기전을 쏘아 급변을 보고하므로, 적선이 있음을 알았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은봉전서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初三日。與元均至唐浦。留一日。初六日。過閒山島北。次于巨濟之島瑟浦。初八日。過知時浦。至助羅浦。望間諜船。揮魔黃旗。自東而馳來。舜臣以爲賊必近在玉浦之間。卽建招搖旗。諸將皆來聽命。舜臣令曰。去丁亥損竹之戰。沈巖違戾顚倒。使李大源獨戰而死。爲世所笑。今將臨戰。公等須審軍幾。進退無失。一乃心力。各奏爾功。諸將皆應曰。諾。然後進船。出于梁巖之峽。倭船五十餘艘。果屯于玉浦。望我軍至。遽擧帆而出。逶迤而東。將避走于加德島。

1592년 5월 3일(음력) 원균과 함께 당포에 이르러 하루를 지냈다. 5월 6일에 한산도 북쪽을 지나 거제도 도슬포를 지났다. 8일에는 지시포를 지나 조라포에 이르렀다. (이때) 마황기를 휘두르며 동쪽에서 달려오는 간첩선을 보고, 이순신은 적이 반드시 옥포 근처에 있다고 생각했다.

초요기를 세우는 즉시, 모든 장수들이 명령을 듣기 위해 달려왔다. 이순신이 명령하기를 '과거 정해년 손죽도 전투에서 심암이 위법을 저지르면서 이대원을 전장으로 내몰아 죽게 하였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비웃는 바다. (오늘) 장수들에게 전쟁에 임할 것을 명령한다. 너희들은 오직 군기를 살펴야 한다. 진퇴에 어긋남이 없게 하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 각자 공을 세워라.'라고 하자, 모든 장수들이 "예"라고 대답하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런 연후에 함선을 진군시켜 양암의 좁은 해협을 빠져나오니 왜선 50여 척이 옥포에 주둔하고 있었다. 아군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적들은 급히 돛을 올리고 나와 구불구불 줄을 지어 동쪽 가덕도로 도망치고자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 기록을 비교해 보면 전체적인 이동 경로는 거제도 남쪽에서 가덕도 방향으로 북상하는 것이 일치한다. 옥포파왜병장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 함대는 송미포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가덕도 방향으로 북상하다가 정오 경 옥포에 도착했다.

은봉전서의 기록은 이동경로가 옥포파왜병장 기록보다 더 자세하다. 이순신 함대는 한산도 북쪽을 경유하여 순차적으로, 거제 도슬포, 지시포, 조라포, 양암, 옥포로 진출했다. 여기서 도슬포는 현재의 도장포로 추정되며, 조라포는 구조라, 지시포는 지세포로, 양암은 양지암으로 추정된다. 지세포가 구조라보다 북쪽에 있는데, 은봉전서의 이 부분 기록은 불분명한 기억을 바탕으로 한 오류로 보인다. 

옥포파왜병장과 은봉전서를 종합해서 볼 때, 이순신 함대는 1592년 5월 7일 새벽 거제도 남단의 송미포(거제시 남부면 다대리)를 출발하여, 순차적으로 도슬포(도장포), 조라포(구조라), 지시포(지세포), 양암(양지암)을 지나 옥포로 진출한 것을 알 수 있다.

간혹 이순신 함대가 견내량을 통과하여 거제도 북단의 송진포를 경유하여 옥포 방향으로 남하했다는 '북로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있는데, 이는 사료에 근거가 없는 일방적 주장이다.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장

 

작성 2022.11.17 10:44 수정 2022.11.1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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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