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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길을 덮었다.
푸른 안개가 계절에 옷을 입히면
숲이 열리는 소리에
내려와 잠든 별들이 달아나 버린다.
빈 가방 속에 숨어 나를 따라온
슬픔의 언어들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숲 속에 숨는다.
가지마다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에
인연의 옷이 하나하나 벗겨지고
몸 속 감옥 담장이 허물어진다.
하얀 마음을 손수건처럼 펼쳐 논 산기슭에
그의 눈물이 이슬처럼 내리고
산과 산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의 미명에 나는 묻혀버리고 만다.
낡은 세상에 이름만 남겨두고
먼지 쌓인 세월을 털어내며 걸어온 길
계곡은 깊어 삶을 잊기에 알맞다.
낯선 울음소리에 깨어난 숲이
먼 산의 어깨를 흔들면
마지막 아침이 오늘이라 해도 좋겠다.
아파할 사랑 없는 생애가 부끄러울 뿐
시들시들 말라가는 시간의 저편을 떠나보내고
남루함 덮어줄 그리움마저 묻어 버린다.
이제 불타는 숲의 산문을 걸어 잠그고
은비령의 그가 부르는 바람의 노래를
마저 부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