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국내에서는 욕을 해도

김태식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1983년 여름 내가 근무하던 선박이 브라질 산토스항에 도착했다. 한국 선원들이 근무하는 선박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어느 교포댁에서 고급 사관과 감독을 초대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업무를 마치고 그 집에 도착했을 때 그 교포가 살고 있는 호화 주택에 적잖이 주눅이 들었다.

 

그 당시의 우리나라 상류층 수준을 넘어서는 듯 보였고 브라질에서도 상류층에 들어갈 정도였다. 먼저 저녁식사로 내어놓는 요리는 고급 호텔의 일류급에 해당할 만큼 손색이 없었다. 

 

좋은 분위기에서 식사를 맛있게 마치고 후식과 함께 술잔을 몇 순배 기울일 때 우리를 초대한 40대 초반의 교포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않은 방향으로 대화를 끌어가고 있었다. 

 

그의 출신 대학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명문 대학이고 한국의 유명 모 일간지 상파울루 특파원으로 있다가 반국가 인사로 분류되어 귀국을 못 하고 브라질에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분은 준수한 외모를 갖추고 있었고 그의 부인도 미스코리아를 연상케 할 정도의 미인이었다. 

 

1983년 그 시절 한국의 정치 상황은 시끄러웠다. 군부를 등에 업고 정권을 잡은 정부는 정통성이 결여되어 국민 대다수의 민주화 요구에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침묵을 강요하고 있었다. 이른바 군부독재와 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주화 세력 간의 첨예한 대결로 대학생들의 시위가 끊일 날이 없었다.

 

그는 한술 더 떴다. 군부 독재자의 치하에서 고생하는 한국에서 오신 여러분들이 불쌍합니다. 파시스트 정권에서 신음하는 여러분들이 애처로울 뿐입니다. 북한은 훌륭한 지도자의 영도 하에 얼마나 일사불란합니까? 

 

이쯤 되니 그 집에 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각자의 숙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는 길에 생각에 잠겼다. ‘내 나라 안에서는 나랏님이 잘못하면 욕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 재외 한국인이 내 나라와 나랏님은 욕을 하니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최근 우리나라의 제1야당에서 탈당하여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있는 의원 한 분이 일본 내에 있는 친북 성향 단체의 모임에 참석하여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는 듣기 거북한 발언을 듣고 있었던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 북한 당국에서도 잘 쓰지 않는 용어를 썼는데도 아무런 여과 없이 끝까지 앉아서 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진보냐 보수냐의 편 가르기 문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나라인 대한민국의 선량으로써는 적절치 못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 성향을 자유롭게 표방하는 것은 자유이고 자신이 속해 있는 정당이 어떠한 이념을 가지든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이것은 국내에서만 싸우고 헐뜯을 일이다. 외국에서 나의 조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끝까지 듣기 위해 가만히 있었다는 것은 그분에게 또 다른 조국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wavekts@hanmail.net

 

작성 2023.09.12 11:08 수정 2023.09.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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