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산다

이순영

그래, 나도 산다. 산다는 건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다. 아무리 거지 같은 세상이라도 다 산다. 우리의 운명은 그렇게 세팅되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는 것에 진심인 사람도 살고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도 산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최악의 나라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는 사람도 있고 자본주의의 꽃 미국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살아 있음에 대한 인간 근원에 대한 성찰을 노래한 ‘다니카와 순타로’의 ‘산다’는 우리에게 ‘넌 꼭 살아야 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산다’라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유다.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짖는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

지금 어딘가에서 병사가 상처 입는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는 것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새는 날갯짓 한다는 것

바다는 일렁인다는 것

달팽이는 기어간다는 것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

당신 손의 온기

생명이라는 것

 

살아있다는 걸 이렇게 감각적인 이미지로 풀어낸 시는 드물다. 지구가 돌고 있는 한 우리는 산다. 살아있다는 건 새처럼 날갯짓하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건 바다처럼 일렁이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건 달팽이처럼 기어간다는 것이다. 맞다. 살아있다는 건 기적이다. 살아있으니까, 투정도 부리고 질투도 하고 화도 낸다. 이처럼 지극히 평범한 일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이 되고 만다. 태어난 김에 신나게 살면 더할 나위 없는 인생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살거나 죽지 못해 산다고 푸념한들 달라질 게 없다. 

 

다니카와 순타로의 시는 명료하다. 단순하고 쉽다. 초등학생도 알아먹고 대학교수도 알아먹는다. 단순한 언어가 주는 깊은 철학은 다니카와 순타로 시의 매력이다. 평범한 속에 들어있는 경이로움을 품고 있는 ‘산다’는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살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존재라는 건 무엇이든 간에 충분한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저 무심하게 말한다. 씹선비처럼 잘난체하며 근엄하게 훈계하지 않아서 좋다. 그의 시의 맛은 12첩 밥상이 아니라 꽁보리밥에 된장국 같은 소박함에 있다. 

 

‘우주소년 아톰’, ‘하울의 움직이성’은 누구나 좋아했던 만화다. 그 만화에 나오는 노래를 작사한 사람이 다니카와 순타로다. 그래서 그런지 더 친근하고 정감이 간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OST ‘세계의 약속’의 가사는 지금 들어도 참 좋다. ‘시간의 시작에서부터 존재하던 세계의 약속, 지금은 혼자라도 두 사람의 어제로부터 생겨나서 반짝이네. 처음 만났던 날처럼 당신은 추억 속에 없어 산들바람이 되어서 뺨에 스치네’ 이토록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시를 쓴, 다니카와 순타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시는 메마른 우리의 영혼에 물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우주의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삶의 온기와 찬란함을 공유하는 것이다. 엄마와 자식처럼, 아내와 남편처럼, 친구와 친구처럼 연결되어 우주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 사는 것이다. ‘나’라는 개체가 생명을 인식하는 것이다. 존재의 의미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찾아가는 것이다. 생명이 숨 쉬는 것이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무심하게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산다’

 

다니카와 순타로는 일본의 유명한 철학자 다니카와 테츠초의 외아들로 1931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철학, 문학, 음악 등 예술 분야에 두루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21살에 첫 시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을 펴낸다. 그 후 일본 국민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은 국민시인이다. 다니카와 순타로는 어둡던 시절에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활기차고 희망적인 메시지의 시를 써서 사람들의 감성을 흔들어 깨웠다. 그의 시는 교과서에 실리고 노래 가사로도 널리 알려졌다. 유명한 CF의 CM으로도 사랑을 받았다. 그는 ‘산다’고 우리에게 여전히 말하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

.

.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

당신 손의 온기

생명이라는 것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5.08.21 09:33 수정 2025.08.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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