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무더위 기세가 주춤거리기 시작한 이번 주말 저녁, 집 근처 횟집을 찾았더니 많은 사람들이 요즘 제철인 전어회를 즐기고 있다. 부드러운 듯 고소한 전어회는 막장에 싸먹으면 그 고소함이 더해진다. 집 된장으로 만든 막장에 전어살 두어 점과 풋고추, 마늘, 양파 등을 얹어 상추나 깻잎에 싸 먹는다. 막장은 초장 등 자극적인 양념이 아니어서 전어 특유의 깊은 맛을 더욱 느낄 수 있다. 비릿함이 꺼려진다면 레몬즙, 다진 마늘, 사과즙, 식초, 설탕, 고추장 등을 함께 섞어 만든 초고추장을 곁들여 먹으면 좋다.

필자의 최애(最愛)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생선회′다. 양념 없이 그냥 먹어도 혀 위에서 복잡한 결의 감칠맛이 폭발한다. 굳이 간을 더하려면 회의 끝부분만 회 간장에 살짝 적신 뒤 생고추냉이를 곁들이면 된다. 부위에 따라 식감이 다른 것도 묘미다. 그리고 계절마다 맛있는 회 또한 따로 있다. 봄엔 도다리, 여름엔 농어, 가을엔 전어, 겨울엔 방어가 맛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서 무게 대비 가격이 비싼 음식을 들라면 생선회와 한우다. 어종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생선회는 한우보다도 비싼 고급 음식에 속한다. 이렇게 비싸고 고급진 생선회는 제대로 즐기면서 먹어야 비싼 돈을 낸 만큼의 가치를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이번 기사에서는 생선회를 먹는다는 표현보다 즐긴다는 관점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 생선회는 단순한 술안주가 아닌 고가의 식문화다.
생선회를 먹을 때는 보통 술을 곁들이는데, 한국인들은 주로 소주, 일본인들은 정종을 많이 마신다. 그런데 과음하면서 회를 먹다 보면 고가인 생선회가 중․저가인 안주거리로 변하여 진정한 회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회의 맛과 향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적당하게 술을 곁들여야 회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미식가가 되고 다음 날 숙취로 고생하는 일도 없게 된다.

- -생선회는 먹는 순서가 있다.
횟집에서 생선을 모듬회를 주문하거나, 어종별로 주문해서 회로 먹을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담백한 맛의 흰살생선을 먼저 먹은 후 진한 맛의 붉은살생선을 먹는 것이 좋다. 붉은살생선의 진한 맛을 먼저 느끼고 나면 흰살생선의 담백한 맛이 진한 맛의 여운에 가려져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류가 다른 생선회나 초밥을 먹을 때는 생강 초절이를 씹어서 맛을 씻어낸 후 다음 생선회나 초밥을 먹는 것이 좋다.
- 생선회는 맛있는 온도대가 있다.
어류는 5~10℃일 때가 육질의 단단함이 가장 좋고, 맛을 좋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횟집의 수조 온도는 보통 15℃로 유지하는데, 여름철에는 이 온도대를 유지하기 위해 보통 냉각기를 가동한다. 흰살생선인 넙치나 조피볼락은 치사 후 0℃에서 5~10시간 정도 보관한 뒤 먹으면 씹힘성이 20%, 미각이 5~10배 정도 증가한다. 붉은살생선인 전어, 고등어, 전갱이 등은 선도가 떨어지면 식중독 유발 성분인 히스타민이 생기므로 활어를 바로 조리해서 먹는 것이 안전하다.
- 생선회는 어육의 특성에 맞는 두께로 썰어야 맛이 좋다.
복어회는 콜라겐 함량이 많아 질기므로 최대한 얇게 썰어야 한다. 넙치, 조피볼락, 돔 등의 흰살생선은 보통 두께로 썬다. 참치, 방어 등 붉은살생선은 지방질 함량이 많으므로 두껍게 썰어야 혀로 느끼는 미각과 씹힘성이 어우려져 회 맛이 좋다.
- 생선회는 동결시키면 쫄깃함이 떨어져 맛이 없어진다.
생선회를 동결시키면 빙결정에 의해 조직이 파괴되므로 육질이 퍼석 퍼석해져 식감이 떨어진다. 해동하면 맛 성분이 드립(육즙)으로 빠져나와 회 맛이 없어진다. 원양에서 잡히는 참치의 경우는 육지까지 운송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60℃ 이하로 급속동결한다.
- 생선회에 제일 잘 어울리는 소스는 생고추냉이다.
고추냉이는 특유의 매운맛과 향기로 미각과 후각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켜 생선 비린내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식욕 촉진, 항산화 활성, 항균 활성 등이 있어 건강식품으로도 인기가 많다. 고추냉이의 맵고 쌉쌀한 성분인 시니그린은 강판에 직접 갈아서 잘게 부수어야 많이 생성된다. 직접 갈아서 먹는 생고추냉이는 튜브나 비닐에 든 갈아진 고추냉이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신선하고 맛과 향이 더 좋다.

- 부요리(쯔게다시)에 관심을 줄이고 주요리에 올인한다.
주요리 나오기 전에 부요리부터 집어 먹게 되면 배가 불러 나중에 정작 맛있게 먹어야 할 주요리는 다 먹지도 못하고 남기는 경우가 많다. 부요리는 2~3가지만 가볍게 먹고, 비싼 주요리에 치중해야 실속을 차릴 수 있다.
- 생선은 회로 먹는 것이 영양학적으로 가장 좋다.
생선의 조리 방법에는 회, 조림, 탕, 구이 등이 있으며, 조리 방법에 따라 영양 성분의 변화가 다르다. 생선의 주요 성분인 단백질은 열을 가하는 조리를 하면 변성을 일으켜 날것으로 먹는 것보다 소화 흡수율이 떨어진다. 구이는 지방질과 수용성 성분의 25% 정도가 유출되는데, 이 속에는 기능성 성분인 DHA, EPA, 타우린, 비타민, 무기질 등이 있다. 튀김과 탕의 조리에서도 이들 성분 중 많은 양이 튀김유와 국물 쪽으로 빠져나온다. 가능하다면 생선은 회로 먹는 것이 영양분과 기능성 성분을 많이 섭취할 수 있고, 회의 오묘한 맛도 즐길 수 있다.
- 생선회를 쌈으로 먹으면 더 맛있다?
비싼 생선회를 자극성이 강한 마늘, 양념 된장을 넣은 쌈으로 먹으면 생선회 특유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없다. 생선은 산성 식품이므로 ′생선회 따로, 야채 따로′ 형태로 먹는 것이 좋다. 회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양념장이 있는데 대부분 생선회는 고추냉이가 들어간 간장, 맛이 강한 지방질 함량이 많은 전어, 고등어 등은 된장, 굴, 우렁쉥이, 오징어 등의 패류와 연체류는 초장에 찍어 먹는 것이 좋다.
- 생선회에는 반드시 레몬즙을 짜야 한다?
생선회에 레몬즙을 뿌리면 비린내가 없어진다는 오해에서 생선회에 레몬을 뿌려 먹는데, 레몬즙은 강한 산성이므로 생선회에 레몬즙을 짜면 생선회의 색택이 변하고, 생선회 특유의 향과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 비 오고 흐린 날은 생선회를 먹으면 안된다?
비 오고 흐린 날은 습도가 높아 식중독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이런 날은 회를 잘 먹지 않은데, 습도 차이가 식중독균의 증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리고 과거와는 달리 횟집마다 냉장시스템이 갖추어져 항상 일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흐리거나 비 오는 날에 횟집에 가면 더 대접을 받는다.
서울대 의과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생선을 일주일에 4번 이상 먹는 사람은 한번 미만인 사람보다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48%나 낮다는 보고가 있었다. 생선에 함유된 오메가3 지방산과 양질의 단백질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높이는 트립토판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이 함유된 비타민, 미네랄 등도 이런 작용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미국의 정신과 병원에는 ′Eat fish, Be happy!′라는 표식까지 붙어 있는데,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우리 모두 수산물 섭취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前 한국생선회협회 이사
이메일 : yeogb@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