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2024년 8월경 '『난중일기』에 나타난 소금가마'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충무공 이순신이 한산도에서 소금가마를 주조한 이유를 추정해보았다. 해당 글을 작성한 이후 여러 사료를 살펴보다가, 충무공이 소금가마를 주조한 이유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는 자료를 찾게 되어 다시 비슷한 주제로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이전 글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으므로 글을 읽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역사적 사실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히 살펴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다시 이를 다루는 것이니 많은 양해를 부탁드린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소금가마를 주조하여 만들었다는 언급이 3차례 등장한다. 그 3차례의 언급은 1595년 5월 『난중일기』에 나타나는데, 이때는 조선의 삼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수군이 한산도에 주둔하던 시기이다. 아래는 그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5년 5월 17일
이날 소금가마 하나를 주조하여 만들었다.
[원문] 是日 塩釜一坐鑄成.
『난중일기』, 1595년 5월 19일
저녁에 소금가마 하나를 주조하여 만들었다.
[원문] 夕 塩釜一坐鑄成.
『난중일기』, 1595년 5월 24일
소금가마를 주조하여 만들었다.
[원문] 塩釜鑄成.
위 『난중일기』에 언급된 용어 '塩釜(염부)'는 소금가마를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을 살펴보면 소금가마는 ‘塩釜’ 이외에 ‘鹽盆(염분)’으로도 표기되었다(한자 塩은 鹽의 속자이다). 소금가마는 흙가마(土釜)와 철가마(鐵釜)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난중일기』에 나타난 소금가마는 ‘주조(鑄成)’라는 표현으로 보아 철가마일 것이다. 그런데 충무공은 어떠한 목적으로 소금가마를 주조한 것일까?

소금은 사람의 생존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물자이다. 몸 안의 소금이 부족해지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기능장애를 초래한다고 한다. 조선은 이러한 중요 물자인 소금의 생산을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였다. 조선 초기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를 살펴보면, 소금 생산을 위한 도구인 소금가마를 관리할 목적으로 각 지방에 있는 소금가마의 위치와 수량을 조사하여 기록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경상도속찬지리지』에 수록된 각 지방의 기록에 나타난 「염분(塩盆-소금가마)」이라는 항목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시대의 소금 생산은 주로 바닷물을 소금가마에 부어 끓여서 만드는 '자염(煮鹽)'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생산 방식은 지역과 자연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사실 조선시대 소금 생산은 상당히 복잡한 주제로서 이 주제만을 전문적으로 다룬 연구서도 발간되어 있다. 필자 또한 해당 책의 내용을 참고하여 이글을 작성하고 있다. 조선시대 소금 생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이글 제일 아래 [참고자료]에서 소개한 책 『조선시대 소금생산방식』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충무공은 소금가마를 이용하여 우선 한산도에 주둔한 조선 수군이 필요한 소금의 수요를 충족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선조실록』의 1594년 기사(권55, 선조27년 9월 21일 병신 2번째/3번째 기사)에서도 선조가 선전관을 한산도로 보내어 수군을 위로하는 교서를 내리면서 면포와 함께 소금을 지급한 사실이 확인된다. 많은 군사가 오랜 시기 한산도에 주둔해 있었으니, 그들의 생존을 위한 소금의 충분한 공급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였을 것이다.
임진왜란 시기 충분한 소금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은 1593년에도 조정에서 논의된 적이 있었다. 아래는 이를 말해주는 『선조실록』의 해당 기사이다.
『선조실록』 권46, 선조26년-1593년 12월 18일 정묘 9번째 기사
비변사가 답하여 아뢰기를 "경기·황해·충청·전라도 등의 해변은 모두 소금을 구울 수 있는 곳으로 소출 또한 많습니다. <<중략>> 중신(重臣) 한 사람에게 그 일을 전적으로 관장하게 하고 관리를 파견하여 해변을 순시하게 한 다음 염호(鹽戶: 소금 생산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민호)를 불러 모아 염분(鹽盆)을 설치하고 소금을 끓이게(煮鹽) 하소서."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충무공이 소금가마를 이용해 한산도에서 생산한 소금은 그곳에서만 소비되었을까? 『난중일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한산도에서 생산된 소금 중 일부는 군량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 아래는 그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6년 2월 11일
보성의 계향유사 임찬이 소금 50섬을 싣고 갔다.
[원문] 寶城繼餉有司林瓚 盐五十石載去.
위 기록에 언급된 '계향(繼餉)'은 '군량 지원/조달'이라는 의미를 지녔으며, '유사(有司)'는 ‘향교, 서원 등의 단체에서 특정 사무를 맡은 직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계향유사'는 '군량 조달 임무를 맡은 담당자'라는 뜻이다. 군량 조달 임무를 맡은 계향유사가 한산도에서 소금을 50섬이나 싣고 나간 목적은 당연히 군량 마련이었을 것이다.
『선조실록』의 1595~1596년 기사(권70, 선조28년-1595년 12월18일 병진 1번째 기사 / 권76, 선조29년-1596년 6월14일 경술 1번째 기사)에도 군량이나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에서 소금을 생산하여 파는 정책이 실행된 사실이 확인된다. 또한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쓴 충무공의 유사 「고통제사이공유사」에도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이항복, 『백사집』 권4, 「고통제사이공유사」
공(충무공)은 6년 동안 군중에 있으면서 본도(전라도)의 양식이 부족하여 공급할 수 없음을 알고, 어염(魚鹽)을 크게 열고 둔전(屯田)을 널리 설치하였으며 <<중략>> 군량이 여유가 있어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위 기록에서 '어염을 크게 열었다'라는 말은 어장(魚場)과 염전(鹽田)을 크게 운용했다는 의미이다. 충무공이 한산도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둔전을 운용하여 군량을 마련한 일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위 기록은 충무공이 어장과 둔전 이외에 염전도 운용했던 사실을 말해준다. 이항복이 임진왜란 시기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점과 「고통제사이공유사」가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경에 작성된 점을 고려하면, 염전 운용에 대한 언급은 신빙성이 높다.
흥미롭게도 정유재란 시기 조선 수군이 고하도 주둔했던 시기에도 소금가마가 운용된 사실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시기 옥포만호, 웅천현감, 경사좌수사를 역임한 이운룡(李雲龍, 1562~1610)은 1605~1607년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냈는데, 이 시기에 작성한 장계 사본인 『계본등록』에는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이운룡, 『계본등록』, 1606년 2월 18일 계본
통영 설립 초부터 나주의 보화도·비금도 등에 소금가마를 배치하여 감독하는 인원을 정하고, 유민을 모집하여 잡역을 면제해주어 소금을 끓이고 물고기를 잡는 일을 도맡아 보도록 함으로써 군량을 보조했다고 하므로 <<후략>>
[원문] 自綂营設立之初 羅州寶花島飛禽島等處 塩釜排置 別定監員 募集流民 蠲免雜役 専委煮塩捉魚以 補軍餉爲百如乎
위 기록에 언급된 나주 보화도는 지금의 전남 목포시 달동 고하도(高下島)로서, 정유재란 시기 조선 수군이 1597년 10월부터 1598년 2월까지 주둔했던 곳이다. 『난중일기』 1597년 10월 29일 기록에는 이날 조선 수군이 목포에 이르러 보화도에 정박한 일이 언급되어 있다. 비금도는 지금의 전남 신안군 비금면 비금도로서 고하도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섬이며, 『난중일기』 1597년 10월 11일 기록에 등장한다.
정유재란 시기 조선 수군이 고하도(보화도)에 주둔하는 동안 군사력을 증강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이운룡의 『계본등록』에 나타난 보화도·비금도의 소금가마 이야기는 조선 수군의 보화도 주둔 시기 일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계본등록』은 소금을 생산하는 일을 ‘소금을 끓이다(煮塩)’라는 용어로 표현함으로써 당시 소금 생산이 ‘바닷물을 소금가마에 부어 끓여서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을 명시하였다. 또한 생산된 소금이 군량을 보조하기 위해 사용된 점도 서술하였다.
『계본등록』에 기록된 정유재란 시기 나주 보화도·비금도의 소금 생산 방식과 목적은, 임진왜란 시기 한산도의 소금 생산 방식과 목적을 이어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계본등록(啓本謄錄)』
고광민·김의환·김일기·최성기·홍금수, 2006, 『조선시대 소금생산방식』, 신서원
한국고전종합DB, 이항복(李恒福), 『백사집(白沙集)』 권4, 「고통제사이공유사(故統制使李公遺事)」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