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미녀와 야수

이태상

1991년 개봉되어 당시 디즈니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는 절찬을 받은 영화 ‘미녀와 야수’가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작은 마을, 밝고 아름다운 소녀 벨은 발명가 아버지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다.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촌스러운 마을 청년 개스톤은 벨의 미모에 반해 끈질기게 구애를 하지만, 벨은 책 읽기만 즐기며 평범한 시골 생활에서 벗어나기를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흉측한 야수의 성(城)에 갇히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벨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 대신 자신이 성에 남기로 한다.

 

마법에 걸린 야수의 성에서 촛대 루미에, 괘종시계 콕스워즈, 주전자 폿트부인과 친구가 된 벨, 그녀를 경계하던 야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벨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고, 벨 또한 흉측한 외모에 가려진 야수의 따뜻한 영혼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벨에게 거절당하고 질투심에 눈이 먼 개스톤은 야수를 없애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야수의 성으로 향하는데, 마법에 걸린 성에서 마법 같은 사랑에 빠진 미녀와 야수의 로맨스가 펼쳐진다. 여기서 우리 누가 야수고 누가 천사인지 생각 좀 해보리라.

 

내가 청소년 시절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를 읽다가 그 작품 속의 주인공 오셀로가 그의 부인 데스데모나를 의심, 증오와 질투심에 불타 목 졸라 죽이면서 그가 부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란 말에 나는 펄쩍 뛰었다. ‘사랑이라고? 사랑은 무슨 사랑? 사랑과 정반대를 한 것이지. 사랑이란 말 자체를 모독하고 사랑이란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진실을 더할 수 없이 모욕한 어불성설이다!’ 격분해서 나는 씩씩거렸다. (아직도 좀 그렇지만) 

 

오셀로가 진정으로 그의 부인 데스데모나를 사랑했었다면 첫 번째로 경솔하게 아내를 의심한 것부터가 잘못이고, 둘째로 설혹 아내가 정부와 정을 통하고 있는 현장을 직접 제 눈으로 목격했다 하더라도 그가 사랑하는 아내의 행복을 위해 자기가 물러나 사랑하는 남자에게 아내를 보내주었어야 했으며, 셋째로 그가 자신의 경솔했던 잘못을 깨닫고 자살이라는 간편한 방법으로 쉽게 책임을 회피, 현실도피 하고 말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아내가 못다 살고 간 몫까지 합해서 몸은 비록 죽고 없는 혼이라도 그 혼과 함께 그야말로 한 몸, 한마음, 한 영혼으로 한데 뭉쳐 아무리 괴롭더라도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곱빼기’로 살았어야 했으리라고. 

 

그 후로 미국 음악영화 ‘로즈 마리(1936)’를 보고 그 끝 장면에 무릎을 치면서 그 스토리의 결말이 좋아 나는 쾌재를 불렀다. 나의 기억으로는 백인 기마대가 어느 아메리칸 인디언 부락을 습격,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죄다 학살했는데 어떻게 한 어린 소녀가 살아 남은 것을 이 기마대 상사가 거두어 친자식 같이 키웠다. 그러나 이 아이가 커서 아름다운 처녀가 되자 상사는 이 처녀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는 뜻밖에 어떤 젊은 사냥꾼을 만나 둘이 서로 사랑하게 된다. 상사 아저씨를 저버리고 젊은 사냥꾼을 따라갈 수 없어 고민하는 처녀를 상사 아저씨가 제일 좋은 말에 올려 태우고 말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탁쳐서 처녀를 기다리고 있는 사냥꾼에게로 보내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내 나름대로 추리를 해보았다. 

 

만약 상사 아저씨가 제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인디언 아가씨를 잡아두고 결혼까지 했었더라면 결국 아가씨도 사냥꾼도 불행하게 만들고, 불행한 아가씨와 사는 자기 자신도 결코 행복할 수 없었을 텐데, 사랑하는 아가씨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사랑하는 남자에게 아가씨를 보내줌으로써, 한 쌍의 젊은이들이 행복했을 것은 물론이고, 자기가 사랑한 아가씨가 행복하리라는 확신에서 또 아가씨의 행복을 계속 빌어주는 마음으로 가슴이 늘 아리고 저리도록 흐믓 짜릿하게 그 자신 또한 더할 수 없이 행복하였을 거라고.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어라. 

 

몇 년 전 ‘여성의 날’을 전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이 한동안 화제에 올랐었다. ‘남자’와 ‘설명하다’을 결합한 것으로 2014년 호주에서 ‘올해의 단어’로 뽑혔었고 2010년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그해의 단어 목록에도 올랐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린 정의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식으로 풀어보자면 ‘여자인 네가 알면 얼마나 알아. 오빠가 설명해 주지’라고 할 수 있으리라.

 

최근에 중국에선 ‘지난 아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단다. 이 ‘지난 아이’를 직역하면 ‘암덩어리 같은 남성 이성애자’가 된다. 중국의 온라인에 만연한 여성 차별에 대한 반감에서 고리타분한 남성우월주의를 비꼬는 신조어가 생긴 것이다. ‘지난 아이’란 시대착오적이고 편협한 남성 중심 사고를 보이는 사람들을 통칭하는데, 중국 포털사이트 소후에는 ‘지난 아이’의 특징으로 가부장적 광신적 애국주의, 항상 가득 차 있는 불만, 동성애 혐오증, 우쭐대는 성질 등이 열거돼 있다. 

 

‘지난 아이’는 2015년에 처음 등장해 계속 확산되고 있는데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중국의 유명한 철학자 저우궈핑(周國平)이 “남성은 천 개의 야망을, 여성은 하나의 야망을 가져야 한다. 여성은 가사노동과 육아를 할 때 아름답다”는 성차별 발언을 한 뒤 ‘지난 아이’란 비판과 조롱을 받아왔다고 한다.

 

2015년 여성의 날에는 중국 대표 검색포털 바이두가 기념 로고 디자인으로 여성을 주체적 존재가 아닌 그저 예쁜 장난감 핑크색 옷을 입고 오르골 상자 속에 들어있는 공주 인형으로 표현했다가 ‘지난 아이’란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한편 ‘지난 아이’란 표현을 즐겨 쓰는 여성 네티즌들은 양성평등을 지향하는데 여성 작가 에쒸에마오마오(葉雪猫猫)는 중국 여성들에게 “애인이 ‘지난 아이’인지 잘 살펴보고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헤어지라. 그래야 그런 남성들은 유전자 풀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보도다. 

 

자, 그렇다면 이제 때는 바야흐로 ‘지난 아이’의 씨를 어서 완전히 제거해 전쟁과 폭력을 일삼는 남성인류(mankind)를 사랑과 평화를 가져오는 여성인류(womankind)로 개조할 때가 왔어라. 그래서 우리 모두 남녀 불문하고 ‘여성인류’ 만세를 불러 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6.01.17 10:33 수정 2026.01.1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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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